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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평점 :

그렇게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3년이라고 생각하니 매일매일 '오늘은 뭘 하며 지낼까?'를 고심하게 되었다. (p.36)
사실 나는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엄연히 이야기하면 대하소설이나 장편소설 등 꽤 이름난 소설은 거의 읽었으나, 요즘의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 소설을 덜 읽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책이 읽고 싶지 않을까봐. 계속 소설만 읽고 싶을까봐.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친구와 수정떡볶이를 먹거나, 편지를 주고 받거나, 소설을 읽은 것만 떠오른다. (그 시절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 등을 다 읽었다.) 그런데 어쩌나. 이 책을 읽어버렸고, 소설이 얼마나 재미있는 분야인지 떠올려버렸다.
“어느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는 죽고 싶어하는 소녀 이치노세 쓰키미와 자신의 목숨을 팔아 시간을 되돌리는 은시계를 얻은 아이바 준 사이의 시공초월 로맨스다. 이치노세 쓰키미는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하지만 자살을 방해받고, 아이바 준은 그녀의 자살을 막고 싶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한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그녀의 몇 번이고 자살을 막겠지만, 아이바 준은 자신의 목숨을 댓가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받았기에 시한부다. 결국 삶의 목적이 없어 삶을 팔아넘긴 아이바 준과 삶의 목적이 없이 자살을 기도하는 이치노세 쓰키미는 비슷하고 영혼인 것.
솔직히 처음에는 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주인공이 겨우 살만한 마음이 들면 남자 주인공은 죽겠구나, 라는 내 나름의 결론까지 냈다고 할까? 소재도 그랬다. 왕따, 학교 폭력, 가족 간의 갈등, 죽음 등 다소 무겁고 예민하지만, 이미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 내용아닌가. 전형적인 일본소설 같은 느낌이 다소 들었으나 책을 읽다보니 심취하게 되더라.
문장력도 좋고 스토리도 너무 탄탄해 심취해서 읽었다. 잘 만들어진 일본 영화 한편을 보는 느낌이랄까. 어느새 나도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여 이치노세 쓰키미가 죽으면 어떡하나, 아이바 준의 3년이 그냥 끝나버리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며 이 책을 읽었다.
내용이 많으면 스포일러하게 될까 조심스럽지만, 이 책은 가볍게 휘리릭 읽히지만 결코 그렇게 가볍게 남지는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지닌 아픔을 드러내고 아파해야만 나아질 수 있단 것을 깨닫게 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이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