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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으로 살다 - 짧지만 강렬하게 살다 간 위대한 예술가 30인의 삶과 작품 이야기
케이트 브라이언 지음, 김성환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2년 6월
평점 :

현재 내 삶은 아주 오래된 커피잔 바닥에 가라앉은 침전물과도 같아. 나는 내 사진 작품과 너와 나눈 우정, 약간의 사진 필름 같은 다양한 성과물을 온전히 남겨 둔 채 일찍 죽는 것이, 이 모든 섬세한 것들을 허둥지둥 지우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 (p.94 프렌체스카 우드먼)
언제인가 리뷰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탐미한다는 말을 적은 적이 있다. 나는 미술을 배운 적도 없고, 잘 모르지만 늘 예술을 탐미해왔다고. 그 시작은 오로지 역사서였다. 역사서를 읽다 보니 역사의 순간마다 음악이, 그림이 있었고 예술가들 역시 역사의 한 폭에 있었던 것이다. 미술사를 만나고 역사서가 더 풍성해졌고, 음악사를 만나며 역사서에는 생기가 불더라. 그래서 언제인가부터 예술사를 더불어 읽어왔는데, 최근 나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은 책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불꽃으로 살다'라는 에곤 샬레, 빈센트 반 고흐, 키스 해링 등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산 30명의 예술가를 인생부터 작품소개까지 찬찬히 읊는다. 작가는 '진정한 예술가는 죽지 않는다'라며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데, 나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30명의 요절한 예술가들의 삶, 아름다움에 대한 탐미, 꿈에 대한 마음, 그리고 그들의 작품세계까지를 만날 수 있었다.
30권에 만날 예술가들을 1권으로 만난다는 생각에 그리 깊은 내용은 없지 않을까 우려의 마음도 약간 있었으나, 이 책은 오히려 미술사 전반에 대한 이해까지를 가지고 가게 해준 듯하다. 내용도 방대하고 폰트도 작아 어려운 책이라는 편견도 생길 수 있으나 절대 어렵지 않다. 삽입된 그림이나 사진이 계속 흥미를 불어넣어 주고 매끄러운 번역 덕분에 술술 읽힌다. 또 받아적고 싶은 명언들이 많았는데, 그 문장들을 통해 나도 다시 꿈꾸고, 내 꿈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도 했다. 그만큼 이 책은 강한 자극제가 되어준다.
예술가들이 요절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했다. 예술을 해서 요절하는지 요절해서 예술이 되는지 헷갈릴 만큼 때로는 그들의 불안정한 비극들이 '잘 팔리는', '극적인' 요소로 표현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작가가 던지는 새로운 시각이 더욱 흥미로웠다. 자극적인 스토리를 벗어나 근본적인 시각에서 그들의 인생과 예술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에 몰두한 이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무엇인가 하나에 그 정도로 몰두한다는 것. 아픔도 잊고 작품에 집중한다는 것. 책 제목처럼 불꽃으로 살다 반짝이며 떠나는 이들인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죽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들의 작품이 이토록 길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영감을 준다는 자체가 그들의 불꽃 같은 삶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 포장지를 벗어도 이들의 삶은 이토록 이야기할 것이 많았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포장지에 가려진 시선들이 얼마나 힘겨웠으려나 싶어진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도 있고, 작품 제목을 줄줄 꿸 수 있는 작가도 있었다. 그러나 기존에 알았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 30명의 작가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들의 예술을 사랑하거나, 이용해야 했던 이들이 씌워놓은 프레임을 벗은 30명의 불꽃을 이제야 제대로 만나게 된 것이다.
아마 한동안 나는 이 책의 주인공들을 쫓아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것 같다. 작가 케이트 브라이언처럼 정확한 시각을 가지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의 스토리나 역사 속 스토리가 아닌, 그들의 작품에서 역으로 그들의 삶과 시대를 만나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스토리에 치중되어 있던 나의 읽기에 큰 자극제가 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