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문을 지나면 마음똑똑 (책콩 그림책) 64
메리엠 에르메이단 지음, 메르베 아틸간 그림, 김인경 옮김 / 책과콩나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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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아이에게 유치원에 가면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게 무엇인지 물은 적이 있다. 낙엽이나 개미 등을 생각하고 물은 것이었는데, 아이의 대답은 “쓰레기”였다. 그랬다. 아침을 맞은 길에는 쓰레기가 어찌나 많은지. 담배꽁초, 과자봉지 등등. 멀리 갈 것도 없이 집에서만 생각해보아도 며칠만 분리수거를 게을리하면 베란다가 쓰레기장처럼 변해버린다. '지구수비대'로 살아가는 아이와 쓰레기를 주우며, 아이와 분리수거를 하며- 버려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곤 한다..

 

'마법의 문을 지나면'은 이런 '쓰레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책이다. 그뿐 아니라 '업사이클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책이다. 햇살처럼 노랗고 강물처럼 맑았던 '식용유' 아이크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가정집을 좋아하지만, 어느 날 프라이팬에 부어지며 '폐식용유'로 변하고 만다. 이 폐식용유는 플라스틱병에 갇혀 환경미화원 아저씨에게도, 강물에도, 흙에도 거부를 당하게 되고 '지속 가능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많은 마음고생을 한다. 이 내용만으로도 아이들은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세상에 넘쳐나는 쓰레기들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게 된다. 

 

또 매우 분명한 독후활동도 가능하다. 책에서는 '마법의 문'에 들어가 정화된 모습의 아이크즈를 만날 수 있는데, 우리 집에서는 이 책을 읽으며 각각의 '버려진 것들'을 살릴 수 있는 '마법'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기 위해 우리가 직접 '마법의 문'이 되기로 했다. 최근 업사이클에 대해 체험하고 온 덕분인지, 아이는 곧바로 폐식용유는 비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렸고, 깨진 그릇, 종이상자 등이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될 수 있음을 기억해냈다. 

 

아이들에게 “쓰레기를 버리면 안 돼.” 혹은 “물건을 아껴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교육이겠지만, 아이가 직접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책 한 권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책처럼 아이와, 책을 읽은 뒤, 직접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 진짜 교육이 아닐까? 

 

자연과 물자를 더럽히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것을 '지속가능한 세상'에 살게 하는 마법도 우리가 부릴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이 책을 아이와 읽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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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물건 - 물건들 사이로 엄마와 떠난 시간 여행
심혜진 지음, 이입분 구술 / 한빛비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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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장갑을 사는 게 왜 엄마를 위해 돈을 쓰는 거냐고, 고무장갑은 일할 때 쓰는 도구 아니냐고, 왜 엉뚱한 생각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느냐고 엄마에게 괜히 목소리를 높일 뻔했다. (p.135) 

 

'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어떤 물건이 떠오르는가. 나는 하얀 수건이 떠오른다. 깔끔한 성격의 엄마는 뽀얀 수건을 매번 삶았다. 삶다 보니 수건은 포근함 대신 까슬함에 가까운 질감이었으나, 그래도 우리 집 수건은 새하얀색이었다. 늘. 작가는 때 수건, 김 솔, 냉장고, 김치냉장고, 전기밥솥 등의 단어에서 엄마와의 추억을 꺼낸다. 뻔한 이야기일 것 같다고? 만약 추억여행만으로 끝났다면 감동은 있어도 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의 끝에는 신문의 갈무리가 첨가되고 적정거리가 유지되어 '작가 엄마'의 추억에서 '세상 모든 엄마'들의 삶으로 이야기가 확대한다. 

 

일단 소재 자체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집에는 때밀이 수건으로 피부가 발갛게 되도록 목욕을 했던 기억이나, 김 솔로 들기름을 바른 김을 구울 때 온 집에 퍼지던 고소함 같은 것들에 대한 향수가 있지 않나. 그런데 그런 기억들을 그저 작가의 관점에서 펼치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의 대화를 옮겨주어 '엄마의 감정'을 '딸'이 아닌 관찰자의 시각에서 전달하고, 자신의 감상과 엄마의 감상을 분리한다. 그래서 독자에게 화자와의 거리를 유지해주고, 작가의 일기장 같은 느낌이 아닌 '민간근현대사' 같은 느낌이 드는 구조감을 준다. 뒤쪽에 신문기사를 스크랩한 것 역시 그런 효과를 극대화해주어 개인의 서사를 넘어 그 시대의 서사를 만나는 독특한 느낌을 만들어준다. 마치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나 '검정 고무신'등에서 느끼는 시대적 향수를 만나는 것 같달까. 

 

우리 엄마보다 10살 정도 많으신 엄마(50년생 전쟁둥이)를,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딸(90년에 중학생이 되셨다는 것으로 유추)이 바라보며 써 내려간 추억에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고, 그땐 그랬구나~싶은 내용도 있었다. 집에 놀러와 내 책을 뒤적이던 엄마도 김 솔 등의 물건에서 자신의 엄마를 추억했다.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 때문인지, 그 시절을 겪은 모든 이들의 추억이기 때문인지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이 책은 찡한 무엇인가를 남긴다. 

 

소소하다면 소소할 물건들의 역사가 엄마의 삶에, 또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들여다보며 당시를 겪은 이들에게는 격변의 세월이었을 시간을 곱씹어본다. 어머니의 희생이 공공연히 강조되는 세상이기에 더 짠한 마음이 드는 물건도 있고, 지금보다 못살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추억인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는 단순히 물건을 넘어 엄마의 사랑과 희생, 우리 사회가 지나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쓰는 물건이라도, 쉽게 바꾸고 버려지는 지금과는 다른 의미였음을 깨닫는다.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편리한 세상인지는 모르지만, 물건 하나하나의 귀함은, 추억은 훨씬 얕아진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강산도 1년 단위로 변한다고 하는데, 나의 딸은 훗날 나의 추억들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싶어진다. 나는 엄마가 없을 먼 훗날, 어떤 물건으로 엄마를 추억하게 될까. 그것을 미리 알 수는 없지만, 사소한 추억도 소중한 이와 만들면 이토록 귀한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작가님 덕분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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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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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를 좋아하는 거 같지? 아니야. 난 여기가 싫어. 하지만 난 여기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 너 가난해지기 싫잖아. 창호야. 넌 내 밑에서 일하면서 잘 먹고 잘 벌었어. 그래서 이런저런 이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지. 당연한 일이야. 애국심은 그저 이념이야.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이념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잊게 돼.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지도자들은 그 이념에 지나치게 심취한 삶들을 이용하지. (p.362)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야기이기에 '파친코'를 모르는 이가 오히려 드물 것 같다. 책과 드라마 둘 다 흥행했다 보니 소개나 리뷰 등에서도 자주 등장했으나, 되도록 선입견이 이 책을 소화하고 싶어 타인의 리뷰를 일부러 읽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감정적으로 다소 치우치고, 내가 가지고 있던 얕은 지식에 기반했을지도 모를 글을 남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왜 제목이 파친코일까 궁금했다. 책을 읽고 난 지금은 본인에 뜻과 관계없이 '타인의 조작'에 의해 흐르는 조선인들의 애환이나 삶을 빗대어 이야기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익을 위해 핀을 조작하여 '사기도박'의 도구가 되기도 하는 게임으로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 시절 우리 민족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고 막연히 말이다. 

 

이 책의 표면에 드러난 이야기만 다룬다면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한 여성과 그 가족의 일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당시 우리 민족 대부분의 모습과 생각, 독립운동에 대한 마음과 종교 등의 사상이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암묵적인 사회나 가정의 분위기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까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며, 진짜 먹고살 것이 없어 하루하루를 근근이 사는 이들에게는 일본도 미국도 똑같았겠구나, 독립운동가 유가족들에게는 많았던 재산도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는 안개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 책은 시대의 암울함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분명 주저앉아 울만큼 참담한 상황이지만 혐오 어린 시선을, 전반에 깔린 차별을, 역사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다. 지독한 가난도 견디고, 세상에 혼자가 된듯한 상황에서도 견딘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인생 전체를 누군가에게 조 정당하고 침해받아도 견딘다. 언제인가 근현대사 책에서 '한국인은 약하고도 강한 존재'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는데, 파친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김수영 시인이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며,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라는 풀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그들이 김치를 담아 파는 장면을 읽으면서는 '마늘 냄새'라는 한국인에 대한 비하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렸고, 그들의 인생과 상반되는 사탕을 만들어 팔 때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수 방식의 사랑에서, 요셉의 강단과 아집에서, 양진이나 경희의 희생에서, 선자의 가슴 시림에서, 노아의 안쓰러움에서 우리네 아버지의, 어머니의, 할머니의, 친구의, 형제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묻어나는 그 시절의 잔상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 시절을 직접 겪은 이들이 점점 줄어들지만, 그들의 생활과 사상 등은 이어져 온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가슴 아프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강인함을 지닌 우리 민족 특유의 정서와, '집'이 주는 엄청난 위안과 아픈 과거를 딛고 일어서려는 단단함을 다시 깨닫게 한다. 누군가 삶을 흔들고 터전을 폭격해도, 최선을 다해 '잭폿'을 터트리고자 살아온 이 땅의 모든 '선자'들에게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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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표와 대단한 그래프 - 인포그래픽으로 만나는 수학 그림책
스튜어트 머피 지음, 테레사 벨론 그림, 정희경 옮김 / 봄나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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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수학을 척척 알려줄 수 있다면 너무나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99% 문과형인간, 수포자 엄마다. 영희와 철수가 달려와 만나는 시간을 계산하라고 하면, 사람이 어떻게 계속 같은 속도로 뛰냐고 물어 선생님의 속을 뒤짚던 애가 나란 말씀. 그러나 수학 중에서도 좋아하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그래프였다. 숫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발상도, 그 안에 숨은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좋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인간적'으로 순간의 기록을 축척하는 느낌.) 

 

그래서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반갑고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아이에게도 그래프에 숨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수학에 대한 선입견이나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기에 이렇게 예쁜 그림으로도 수학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듯 했다. 일단 첫이미지부터 성공! 알록달록 귀여운 그림들만으로도 아이는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익살스러운 표정, 다양한 컬러로 아이들의 시선을 꽉 찹고 시작하는 책은 내용도 어찌나 꽉꽉 채워져있는지 어른인 내가 봐도 유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 교과 과정에서부터 등장한다는 그림그래프, 막대그래프, 원그래프, 선그래프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하는데, 그 주제가 아이들이 몹시 좋아하는 것들이기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이는 깔깔 웃음을 터트린다. (누가 피자나 치킨, 트림 같은 걸로 그래프를 가르칠 생각을 했단 말인가!) 책 페이지마다 가득찬 예쁜 일러스트와 익살넘치는 주제로 이어지는 내용들로 쉴틈없이 즐기고 나면 어느새 아이는 그래프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는 것. 혹시 아이가 어려 그래프에 대해 완전한 이해를 가지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접하다보면 교과서에서 그래프를 만나도 '이거 그 재미있는 표잖아!'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예쁨과 재미를 꽉꽉 담아두고도 내용은 또 어찌나 알찬지! 그래프를 작성하고 내용을 분류하는 것에 대한 기준도 매우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아이와 간단한 그래프를 직접 그려본다거나, 우리가 직접 그래프를 분석해보는 등의 활동도 할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우리가 먹은 음식을 나눠보고, 우리집에 있는 신발이나 옷을 색별로 나눈 뒤, 여러 그래프로 표현해보는 등의 활동을 통해 아이는 정보에 따라 적합한 그래프가 있음을 서서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시키는 부지런한 엄마도 못되고, 나 역시 성적이 좋았던 엄마가 아니기에 '성적 좋아지는 비법'같은 것은 모른다. 다만 재미있게 경험한 기억이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생각해본다. 지금 아이에게 다양한 것들을 재미있게 경험하게 하는 것은, 아이가 살면서 그 긍정의 힘들을 야금야금 꺼내길 바라는 마음에서이기 때문이다. 이 책도 우리아이가 훗날 그래프를 배울때 그런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주기를! 또 우리아이의 '인생그래프'중 '행복'막대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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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요리의 역사 - 선사시대 불의 요리부터 오늘날 비건까지, 요리의 위대한 진화 한빛비즈 교양툰 20
브누아 시마 지음, 스테판 두에 그림, 김모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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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은 단순한 사회활동이 아니었다. 그리스인들은 식탁에서 정치를 논했다. 플라톤이 등장하기 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은 집단 연회에 참석할 의무가 있었다. 이러한 시민 참여는 초기 민주주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p.63) 

 

내 피드를 종종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음식을 잘하기를 꿈(만)꾸는 '프로 집밥러'지망생이다. 안타깝게도 열정보다 솜씨는 미천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리에 대해 애정은 나만 가진 것은 아닌지, 레시피 영상, 먹방 프로그램은 넘쳐난다. 맞다. '의.식.주'는 단순히 생존을 넘어 즐거움과 아름다움, 안정감 등을 주는 '삶'그 자체가 아니던가. 그래서 이 책이 더욱 흥미로운 것일 터.

 

위에서도 거론했듯,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의, 식, 주가 필요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너도나도 벌거벗었던 시절에는 그저 살기 위해 아무것이나 걸치고, 비와 바람을 피할 동굴만 있어도 되었으나, 음식은 다르다. 안 먹어도 죽고, 아무거나 먹어도 죽는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는 말로 이 책을 시작한다. 선사시대의 요리부터 초기 문명의 요리 등 생존을 위한 것에서 점점 '요리'로 변하기까지를 살펴보면, 음식이 인류의 발전과 '사람답게 사는 것'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했는지 깨닫게 된다. 먹기 위해 농경과 수렵이 발달하며 도구가 발달하였고, 그것은 현재의 문병을 가져온 기반이 되었으니 말이다. 

 

책의 중반에서는 매우 다양한 지역의 요리 역사를 흥미롭게 이끌어간다. 민주주의 기반이 된 식탁문화, 노예들을 힘겹게 했던 연회, 음식에 대한 낭비를 비판하는 철학자들, 각종 향신료의 발달, 여전히 남아있는 식탁예절, 세계를 장악하기 위한 요리들까지 정말 많은 역사 속에서 음식은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하고 변화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또 현시대의 트랜드인 간편식에 대한 시각까지 아우를 수 있어, 음식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뒤편에는 20개가량의 레시피가 제공되는데, 한번 시도해볼까 싶은 레시피도 있었고, 그냥 알아만 두고 싶은 레시피도 있었다.)  

 

얼마 전 지중해 역사에 관한 책 읽으며, 지중해의 운송 역사가 발달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요거트를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또 한 번 얼마나 많은 음식을 몰랐을지 생각해보니 아찔해진다. 물론 음식의 역사도 다른 역사와 다르지 않아, 그 이면에는 희생이나 계급, 차별 등의 어두움도 깔려있지만 '요리'로 인해 발달한 수많은 것들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발전을 가져다주었는지를 배제할 수는 없겠다. 이 엄청난 역사를 일반 책으로 읽었더라면, 이렇게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단순히 먹고 즐기는 음식에서 이렇게 다양한 역사를 찾아볼 수 있음도 놀라운데, 이것을 이토록 재미있게 이어간다니! 내가 학창시절 내내 '만화책'에 가져온 선입견을 깬 것이 교양툰이었고, 만화를 통해 재미있게 읽으면 머릿속에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도 교양툰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혹시 만화에 대해 여전히 선입견을 품으신 분이 있다면, 부디 한 번만 이 책을 만나보시길. 익살스러운 그림을 통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은 재치있게 익힐 수 있고, 박스 안의 텍스트를 통해 지식전달 역시 빠짐없이 제대로 해주고 있어, 재미와 지식 어느 하나 놓치지 않게 돕는다. (나 역시 교양툰을 통해 의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영역을 만나고, 배우게 되었다.) 

 

문득 내 손에 들린 커피, 내가 입고 있는 옷, 내가 앉아있는 의자까지. 역사의 순간을 거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늘 당연한 듯 잊고 살지만,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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