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물건 - 물건들 사이로 엄마와 떠난 시간 여행
심혜진 지음, 이입분 구술 / 한빛비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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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장갑을 사는 게 왜 엄마를 위해 돈을 쓰는 거냐고, 고무장갑은 일할 때 쓰는 도구 아니냐고, 왜 엉뚱한 생각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느냐고 엄마에게 괜히 목소리를 높일 뻔했다. (p.135) 

 

'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어떤 물건이 떠오르는가. 나는 하얀 수건이 떠오른다. 깔끔한 성격의 엄마는 뽀얀 수건을 매번 삶았다. 삶다 보니 수건은 포근함 대신 까슬함에 가까운 질감이었으나, 그래도 우리 집 수건은 새하얀색이었다. 늘. 작가는 때 수건, 김 솔, 냉장고, 김치냉장고, 전기밥솥 등의 단어에서 엄마와의 추억을 꺼낸다. 뻔한 이야기일 것 같다고? 만약 추억여행만으로 끝났다면 감동은 있어도 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의 끝에는 신문의 갈무리가 첨가되고 적정거리가 유지되어 '작가 엄마'의 추억에서 '세상 모든 엄마'들의 삶으로 이야기가 확대한다. 

 

일단 소재 자체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집에는 때밀이 수건으로 피부가 발갛게 되도록 목욕을 했던 기억이나, 김 솔로 들기름을 바른 김을 구울 때 온 집에 퍼지던 고소함 같은 것들에 대한 향수가 있지 않나. 그런데 그런 기억들을 그저 작가의 관점에서 펼치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의 대화를 옮겨주어 '엄마의 감정'을 '딸'이 아닌 관찰자의 시각에서 전달하고, 자신의 감상과 엄마의 감상을 분리한다. 그래서 독자에게 화자와의 거리를 유지해주고, 작가의 일기장 같은 느낌이 아닌 '민간근현대사' 같은 느낌이 드는 구조감을 준다. 뒤쪽에 신문기사를 스크랩한 것 역시 그런 효과를 극대화해주어 개인의 서사를 넘어 그 시대의 서사를 만나는 독특한 느낌을 만들어준다. 마치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나 '검정 고무신'등에서 느끼는 시대적 향수를 만나는 것 같달까. 

 

우리 엄마보다 10살 정도 많으신 엄마(50년생 전쟁둥이)를,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딸(90년에 중학생이 되셨다는 것으로 유추)이 바라보며 써 내려간 추억에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고, 그땐 그랬구나~싶은 내용도 있었다. 집에 놀러와 내 책을 뒤적이던 엄마도 김 솔 등의 물건에서 자신의 엄마를 추억했다.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 때문인지, 그 시절을 겪은 모든 이들의 추억이기 때문인지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이 책은 찡한 무엇인가를 남긴다. 

 

소소하다면 소소할 물건들의 역사가 엄마의 삶에, 또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들여다보며 당시를 겪은 이들에게는 격변의 세월이었을 시간을 곱씹어본다. 어머니의 희생이 공공연히 강조되는 세상이기에 더 짠한 마음이 드는 물건도 있고, 지금보다 못살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추억인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는 단순히 물건을 넘어 엄마의 사랑과 희생, 우리 사회가 지나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쓰는 물건이라도, 쉽게 바꾸고 버려지는 지금과는 다른 의미였음을 깨닫는다.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편리한 세상인지는 모르지만, 물건 하나하나의 귀함은, 추억은 훨씬 얕아진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강산도 1년 단위로 변한다고 하는데, 나의 딸은 훗날 나의 추억들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싶어진다. 나는 엄마가 없을 먼 훗날, 어떤 물건으로 엄마를 추억하게 될까. 그것을 미리 알 수는 없지만, 사소한 추억도 소중한 이와 만들면 이토록 귀한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작가님 덕분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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