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1 스토리콜렉터 114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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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선악이란 이미 오래전부터 기본법이나 형법과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 제 행위를 변명하거나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싶지도 않고, 유혹에 빠져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제 도덕률이 보편적이라는 제 믿음을 강화했을 뿐입니다. 누군가 괴물 같은 제 행위를 멈추게 하지 않는 한 저는 죄를 짓고도 자신의 범죄를 후회하지 않는 사람들을 죽일 것입니다. 그럴 사람이 아무도 없어 보여서 오늘 저 스스로 하려고 합니다. (P.316) 

 

 

『몬스터』가 어떤 내용을 담은 소설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몬스터』를 한참이나 떨쳐내지 못했다. 선과 악, 절대적으로 취급되지만, 결코 절대적이지 않은 기준을 놓고 세상의 씁쓸한 맛을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반대로 『몬스터』가 던지는 메시지를 소화 시기키에 나는 여전히 세상에는 선과 악의 절대적 기준이 있다고 믿는 바보이기 때문일까. 

 

넬레 노이하우스의 신작, 『몬스터』는 사회의 여러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가장 짙게 드러나는 것은 사적 제재. 법의 한계로 인해, 혹은 법을 악용하는 무리로 인해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을 만큼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거론되곤 하는 사적 제재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했다. 종종 유튜버들이 가해자들을 파헤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정의일까, 아닐까 고민하곤 했는데 이번 소설 『몬스터』를 읽으면서도 사적 제재는 어디까지 정의인지 고민했다. 누가 고민인지로 절규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읽으면서는 소중한 가족을 잃고 괴물이 되어가는 이들이 괴물이라고 비난받는 세상이 과연 옳은지, 또 한편으로는 그들 스스로 다시 가해하는 것이 정말 정당한 것인지 혼란스럽더라. 그렇게 『몬스터』는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며칠간 나를 마구 흔들어버릴 만큼 몰입감 높은 소설이었다. 

 

『몬스터』를 통해 고민하게 된 사회적 문제들은 사적 제재가 다가 아니다. 난민수용에 대한 문제나 변호인 혹은 “높으신 분들”의 윤리성 등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보게 하기도 했고, 집단 여론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했다. 특히나 요즘 우리나라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수사의 중립” 등의 문제도 다루고 있어, 이것이 그저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 내 주변 누군가도 겪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집중하게 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난민을 통해 이미 형성된 집단에 스며드는 '새 사람'들의 어려움, 일부의 문제로 전체가 오인하는 세상, 혼자로는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익명성과 집단성에 숨어 행동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분명 소설을 읽었는데, 너무 현실적이고 몰입감 있어 마치 뉴스를 본 듯 마음이 먹먹해졌다. 

 

사실 『몬스터』는 책 자체도 두꺼울 뿐 아니라, 텍스트 크기도 작고, 다른 책보다 위아래 여백도 적은 “진짜 긴 소설”이었다. 책을 오래 읽어 나름 빠르게 읽는 편이지만, 이틀 밤을 꼬박 소진했다. 긴장감에 내내 책을 들고 읽느라 팔목이 아프기도 했지만, 잠시도 책을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집중하여 읽었고, 읽고 난 후의 여운도 길어 한참이나 생각하고 고민하게 했던 책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책, 오히려 한 권 분량 정도 더 길었어도 읽었을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전작에서도 완성도가 높다고 느꼈지만, 개인적으로는 『몬스터』가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보다 훨씬 몰입감 있고, 짜임새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점점 밤이 길어지는 계절이다. 그 긴긴밤을 싹둑 잘라낼 만큼 흥미진진한 책, 『몬스터』를 추천해 드린다. 다만 일요일 밤에는 시작하지 말 것. 월요일 아침 빨간 눈으로 출근하는 자신을 마주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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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좋은느낌이면 좋겠어 - 삶은 수많은 좋은느낌들로 매일 조금씩 더 견고해진다
김민철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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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의 최선은 이것이다. ⁣
우연히 나의 환경이된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들을 배우는 것. 내가 좋아하는것들을 모아 나에게 좋은 순간을 구축한 것처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장점을 모아서 나를 구축하려고 애쓰는 것.⁣
물론 100퍼센트 닮고 싶은 누군가를 따라가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그 사람의 장점이 나의 장점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 누군가의 크나큰 장점도 나에게 맞아야 나의 일부로 이식된다. 장식이 아니라 이식.⁣
남들의 좋아 보이는 점을 억지로 가져다가 나를 꾸며봤자 남의 깃털로 덕지덕지 장식한 우스꽝스러운 새가 될 뿐이니까. (p.29)⁣



처음 «내가 너의 좋은 느낌이면 좋겠어»의 설명을 듣고 의아했다. 좋은 느낌? 한 20년가량 한달에 한번은 만나온 그 친구? 여기서 책을 만든다고?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랑? 그런 의아함으로 받아든 «내가 너의 좋은 느낌이면 좋겠어»는 몹시 조그맣고 얇아 가방에 쏙 넣기 좋은 책이었다. 얇고 부피작아 주머니에 쏙 넣기 좋은 "좋은느낌"처럼.⁣

«내가 너의 좋은 느낌이면 좋겠어»의 들어가는 말을 읽으며 비로소 좋은느낌이 순한글말이며, 오래도록 여성들의 필수품으로서 여성의 일상을 지원하고, 여성작가들의 글로 한글날을 함께 하고자 이 책을 만들었음을 알게되었다. (내가 거의 초창기부터 친구였다는 사실도 함께)⁣

이렇게 좋은 의미로 만들어진 «내가 너의 좋은 느낌이면 좋겠어»에 동참한 작가들은 "하루의 취향"의 김민철작가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김하나작가님, "아무튼, 잠수"의 하미나작가님, "고르고 고른 말"의 루나(홍인혜 작가님), "멋있으면 다 언니"의 황선우 작가님까지 이름난 다섯 작가. 신기하게도 다섯분의 글을 다 읽은 적이 있어 더욱 술술 읽히는 기분이었다.⁣

실제 «내가 너의 좋은 느낌이면 좋겠어»는 어느 글 하나 빠짐없이 술술 읽혔다. 흡입력도 장난아니고, 일상에서 만날 이야기들이라 더욱 마음에 닿고 좋았다. "좋은 느낌을 쓰고 좋은 느낌을 읽는다"는 카피처럼, 문장 하나하나에서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 소소한 행복, 소소한 배움, 소소한 깨달음 등 여러 "좋은 순간" 등을 고루 만날 수 있었다.⁣

전세사기나 회사의 어려움 등 힘든 순간들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분명 무엇인가 배우고 느끼지않나. 그런 일상을 꼭꼭 눌러적은 기분이라 «내가 너의 좋은 느낌이면 좋겠어»는 나의 이야기이자 친구의 이야기였다. 책의 ⁣
제목이 완벽히 어울리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

150페이지가 채되지않는, «내가 너의 좋은 느낌이면 좋겠어»는 사실 금방 읽었다. 그런데 혼자 가을공원에 앉아읽는 여유로움이 너무 좋아서 일부러 오래오래 아껴읽으며ㅡ 진짜 좋은 것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너의 좋은 느낌이면 좋겠어»는 나에게 오래오래 가을의 호젓함으로 남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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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열 단어 한국사 라면 1 - 고조선·부여·삼한·고구려 보글보글 열 단어 한국사 라면 1
양화당 지음, 김령언 그림,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웅진주니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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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하이, 스토리 한국사'를 읽으며 “너무 재밌다”고 연발하자, 아이가 묻는다. “엄마, 어린이용 재미있는 역사책은 없어?” 훗, 없긴 왜 없겠어! 『열단어 한국사라면』이 있지. 재미가 가득한 일러스트와 재치 넘치는 내용까지! 열단어로 만나는 한국사, 『열단어 한국사라면』!

 

『열단어 한국사라면』은 고조선, 부여와 삼한, 고구려 등의 역사를 키워드로 만나보게 만든 책으로, 각각의 나라마다 10가지의 키워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고조선에서는 환웅, 첫 나라, 단군왕검, 8조 법 등으로 신화와 교과서에 등장하는 단골손님들을 재미있게 만나볼 수 있고, 부여와 삼한에서는 윷놀이, 솟대, 저수지 등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고대의 풍습들을 만날 수 있어 역사가 더욱 가깝게 느껴지게 만든다. 이어진 고구려에서는 주몽이나 장수왕, 온달장군, 살수대첩 등 엄마와 공부했던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있어 아이의 호기심을 끌었다. 

 

라면이 그려진 표지와 『열단어 한국사라면』이라는 장난기 넘치는 제목에 혹시 역사적 내용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면 걱정은 접어둘 것. 퀴즈로 호기심 꽉 붙잡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푸근한 설명과 알찬 일러스트, 직관적인 도표 등으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역사상식을 딱딱 짚어준다. 군데군데 만화책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책을 읽는 내내 지겨워하지 않고 완독할 수 있다. (오히려 당장 2권 내놓으라고 닦달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우리집에서는 이미 역사 공부를 꽤 해왔던 터라, 아이가 『열단어 한국사라면』를 통해 자신이 배웠던 것들을 확인하기도 하고 자신 있게 퀴즈를 풀며 즐거워했다. 그만큼 『열단어 한국사라면』은 키워드를 명확히 제시하기 때문에 이미 배운 내용들을 정리하기에도 좋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복습하기에도 좋다. 혹 한국사 공부가 처음이라도 좋다. 『열단어 한국사라면』를 통해 앞으로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할 키워드가 무엇인지 어떤 내용들을 배우게 될지 감을 잡기에도 좋고, 역사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재미있게 역사를 설명해주니 말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역사가 재미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덮어놓고 외우라고 했기 때문.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역사는 흐름을 읽고, 역사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와 긴밀히 연결됐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열단어 한국사라면』은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구슬을 꿰듯 키워드를 꿰고,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는 역할을 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책을 만나기 전에는 왜 하필이면 『열단어 한국사라면』이라는 제목일까 생각했는데, 아이와 며칠간 『열단어 한국사라면』을 읽고 보니 이 제목은 아주 적합한 것이었다. 마치 라면을 먹듯 후루룩 쉽게 배우고, 여러 재료가 조화를 이루어 맛을 만들어내듯 여러 키워드가 역사를 이어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책, 『열단어 한국사라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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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스토리 한국사 - 시공간을 초월한 33번의 역사 여행
이기환 지음 / 김영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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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행은 유적지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인 경우가 많다. “역사는 과거의 한 지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도 연결된다”는 것을 아이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욕심에서다. 중복된 곳은 피하려 하지만, 굳이 매년 방문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동궁과 월지'다. 낮이든 밤이든 연못에 비치는 풍경이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동궁과 월지'를 방문한 날, 남편이 웬일로 으스대며(역덕 와이프 앞에서 역사로 으스댈 기회가 잘 없다.) “여기가 안압지야”라고 설명을 시작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동궁과 월지'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 

 

만약 그때 남편에게 『하이, 스토리 한국사』가 있었더라면! 남편은 “요컨대 674년에 조성된 연못(안압지)은 679년에 세운 동궁의 부속시설로 기능했으며, 그 이름이 월지일 가능성이 높다(p.66)”라고 멋지게 설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할 책, 『하이, 스토리 한국사』는 딱 그런 책이다. 교과서에 갇힌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 어딘가로 연결되는 이야기. 여행 중에, 소주를 한잔 마시다가, 댓글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선 시대에도 말이야~”할 수 있는 이야기.

 

『하이, 스토리 한국사』는 『흔적의 역사』로 유명한 히스토리텔러, 김기환 기자님의 신간으로, “임금도 눈치를 봐야 했던 현판 쓰기”, “5만 대 1의 극한 경쟁률”, “100년 전부터 시작된 꼴값 영어” 등의 주제로 역사 속 에피소드를 재미있고 흥미롭게 다룬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만을 다룬 책이었다면, 이렇게 극찬하지는 않았을 것. 기자답게 풍부한 사료와 검증된 내용으로 알차고 정확한 역사 정보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역사 칼럼”이다. 그저 재미있게 읽기만 해도 흥미진진한 역사 속으로 여행을 하도록 돕는다. 문장은 또 어찌나 맛깔난지! 한 장 한 장 줄어들 때마다 아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한 책이었다. 분명,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하이, 스토리 한국사』를 읽으면 역덕이 될지도 모를 만큼 재미있다. 

 

한가지 예로, 서민의 술 '소주'가 조선 시대를 뒤흔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하이, 스토리 한국사』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나라의 운명을 바꾼 소주 - 세종조차 '임금도 못 먹는다'고 인정하다”라는 주제로 풀어내는 이야기를 보면, “1433년 10월 28일, 세종은 술의 폐해와 훈계를 담은 글을 발표했습니다. (...)세종이 특히 개인과 나라를 망치는 술로 지목한 것은 바로 '소주'였습니다. (p.299)”라고 한다. (물론 이때의 소주가 지금의 참 00 등은 아니다) 아버지의 위화도 회군 이후, 고려의 충신으로 남기로 한 진안 대군(태조 이성계의 맏아들)은 결국 소주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이로 인해 태조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의 어린 아들 방석이 세자가 될 기회를 얻는다. 만약 진안 대군이 죽지 않았더라면 어린 이복동생이 세자가 되었을까? 또한,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켰을까? 그 외에도 소주로 인한 사만사, 소주를 독극물처럼 사용한 살인사건 등 역사 속 “소주의 난”을 무척 재미있게 풀어낸다. 이렇듯 『하이, 스토리 한국사』를 읽고 나면, 소주 한 잔에서도 역사가 보인다. 

 

이토록 재미있는 역사는 소주로 그치지 않는다. 아무리 고양이가 도도히 걸어도, 반려동물 1위 자리를 1500년째 유지하고 있는 개, 빼어난 화가 신윤복의 여성해방 운동, 실록에 기록된 방귀, 쌍욕과 음담패설이 난무한 조선의 댓글부대까지! 역사 속의 유적과 유물, 역사기록 등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고 재미있게 담아낸다. 수많은 역사서를 읽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책을 고르라면, 고민도 없이 『하이, 스토리 한국사』를 고를 것 같다. 

 

『하이, 스토리 한국사』의 작가 이기환 기자는 이 책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읽는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과거를 통해 현재를 들여다보는 유리창”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창문 너머의 세상을 보듯 선명하고 확실하게 역사를 체감하게 해준다. 당장 우리 집 너머에 있는 듯 신석기를, 백제를, 신라를, 조선을 만난다. “역사는 과거의 한 지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도 연결된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의 가치관에 “그럼 당연하지!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라고 대답해주는 듯한 살아있는 역사서, 『하이, 스토리 한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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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밖으로
바버라 레이드 지음, 나희덕 옮김 / 제이픽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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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선택하고 마음대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어른이 되어보니 할 수 없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되고, 포기가 제일 쉬운 일임을 안다. 원래 인생은 선택과 포기의 연속이라지만, 가장 포기하기 쉬운 “나의 선택”이 슬플 때가 많다. 

 

그림책, 『터널 밖으로』의 '닙' 역시 사실은 포기가 가장 쉬웠다. 만들어놓은 아늑한 집에서 그냥 살면 충분했다. 하지만 닙은 자신의 소중한 집을 사촌들에게 점령당했지만, 화를 내기보다는 이참에 『터널 밖으로』으로 나가보자고 결심한다. 닙의 집을 빼앗듯 차지하고서도 변화가 두려워 굶어 죽을 수도 있고, 위험이 도사린다는 숱한 우려에도 닙은 길을 떠난다. 마치 닙을 기다리던 것 같은 위험과 유혹들을 숱하게 지나고서야 “생각한 것보다 더 위험하지만, 꿈꾸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터널 밖”을 마침내 만나게 된다. 

 

사실 바버라 레이드의 『터널 밖으로』는 이미 읽으신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터널 밖으로』를 읽은 후 『할머니의 선물』이나 『나무는 참 좋다』 등을 찾아 읽어봤을 만큼 생생한 쥐 모습이 선명히 기억났으니까. 그럼에도 『터널 밖으로』를 또 한 번 읽은 것은, 우리 아이가 이제는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명확히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과거에는 생동감 있는 쥐의 모습만 실컷 관찰했는데, 이번에는 닙의 마음을, 닙의 도전을 무척 꼼꼼히 살피더라. 롤라가 포기하고 싶어 할 때 “조금만 더 가. 곧 무슨 소리가 들릴 테니까”라며 응원을 실어보기도 했고, 꿈꾸던 것보다 아름다운 곳을 만났을 때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잠자리에 누워 몽롱한 목소리로 “엄마, 나도 나중에 무엇인가에 도전할 수 있겠지? 혹시 그때 내가 포기하려고 하면 닙처럼 조금만 더 힘내보자고 응원해줘”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매일매일 그림책을 읽어준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책에 빠져 사느라 다른 아이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못 해보았을지 몰라도, 책이 주는 이야기들을 먹고 쑥쑥 자라고 있었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엄마만 코끝이 시렸던 『터널 밖으로』지만, 이제는 아이에게도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엄마는 더욱 깊은 메시지를 얻었고. 엄마라는 '이유'로 포기한 많은 것들이 사실은 '핑계'인 것도 있겠다 생각해보며, 내가 다시 도전해볼 터널은 무엇일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포기하는 엄마보다 노력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하고 말이다. 

 

『터널 밖으로』는 연령대가 없는 그림책이다. 어른에게도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주고, 아이에게도 응원을 건넨다. 살아가는 내내, 무엇인가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터널 밖으로』를 펼쳐 들고, 조금만 더 가면 꿈꾸던 곳을 만날 수 있게 된다고 위로받으면 좋겠다. 

 

더불어 유토가 만들어내는 질감과 입체감도 충분히 감상하면 좋겠다. 섬세한 스케치 위에 그야말로 “한땀 한땀”유토로 빚어낸 작품이라 그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포스터나 갈라진 틈, 선로까지 모두 작가의 손으로 빚어낸 것임을 알고 『터널 밖으로』를 보면, 더욱 짙은 감동과 놀라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닙의 반짝이는 눈빛, 『터널 밖으로』나와 생기있어진 표정이 담겨 더욱 깊은 느낌을 준다. 

 

수많은 생각과 감상 포인트를 가진 『터널 밖으로』. 

나는 아이를 지지하는 가족인지, 아이의 사기를 꺾는 사람인지 고민해보게 된다. 꿈에 대해서도, 선택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된다. 자, 이제 당신 차례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나간 터널은 무엇인지, 당신이 찾고자 한 꿈과 보물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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