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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멜리아 싸롱
고수리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넌 어떤 시간을 살아왔던 걸까. 얘길 들어볼 시간이 있다면, 헤아릴 시간이 있다면 좋을 텐데. 안지호.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네가 떠나지 않으면 좋겠어.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저무는 시간과 서투른 마음이 속상하고 미안해서 핑그르르 눈물이 돌았다. 머지않아 혼자 남겨질 나는 두고두고 후회하겠지. 널 아프게 했던 이 순간을. (p.290)
이 이야기들을 도깨비에서 이동욱의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들어야 할까. 호텔 델루나에서 커피를 마시며 들을 이야기일까. 인생극장의 작가, 고수리 작가님의 『까멜리아싸롱』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은 이곳저곳을 맴돌며 그들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기 바빴다. 이승과 저승 사이, '중천'이라 불리는 곳에서 49일 동안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곳. 이곳이 바로 『까멜리아싸롱』이다. 이곳에 오면 자신의 “인생 책”을 받게 되는데, 저마다의 사연은 아프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슬프고 아름답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 고개를 들 수 없더라. 만약 내가 나의 인생 책을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지, 어떤 이야기가 적혀있을지 한참 고민하게 되기도 했고.
『까멜리아싸롱』은 첫눈이 내릴 때 문을 열고, 동백꽃이 피기 시작하면 문을 닫는다. 이 이상한 곳에는 객실장도 있고, 매니저도 있고, 사서도 있다. 이 이상한 다방, 『까멜리아싸롱』에서의 49일은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시간이 된다. 인간극장 특유의 “사람 냄새”가 이 책에서도 가득하게 느껴지고, 타인의 사연에서 나의 이야기들을 덧대어 보며 감동과 위로를 동시에 느끼게 되는 책이었다.
『까멜리아싸롱』은 분명 판타지 소설이지만, 휴먼다큐 같기도 하고 돟화같기도 하다. 또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느낌도 든다. 그만큼 읽기 쉽고, 편안한 문장인데 마음에 남기는 따뜻함은 다큐멘터리만큼 묵직하다.
오늘 퇴근길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미처 겨울옷을 채 꺼내지 못하고 움츠린 사람들이 가득한 길이었다. 나 역시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기에 움츠리고 집으로 돌아와 『까멜리아싸롱』을 마저 읽으려 앉았는데, 문장에서 온기를- 위로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는 사람이었다(p.322)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착하지 않아도 괜찮다(p.262)는 문장들을 읽으며, “그래, 나도 사랑받는 사람이다.”, “뭐든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더라. 『까멜리아싸롱』을 읽는 내내 온전히 위로받는 시간을 보냈다.
다른 분들께도 『까멜리아싸롱』의 온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 어떤 문장을 남기는 게 좋을지 고민하다가 한 구절을 꺼냈다.
“ 세상에 쓸모없는 일은 없습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도 없고요. 당장 쓸모없다 여겨지는 것들도 훗날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를 일입니다. (p.280)”
오늘, 스스로의 쓸모를 고민한 사람이 있다면- 부디 스스로를 좀 더 믿어주는 밤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