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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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편이나 되는 이 책의 리뷰, 그리고 자자한 명성은 마치 '이래도 이 책을 안 읽을래?'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강압에도 나는 굳건하게 버텼다. 그 이유는 우선 나는 도통 야구라는 것을 모르고 관심도 없었으며, 다른 분들의 리뷰를 통해 너무 많은 기대를 키워왔던 터라 실망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바구니에 담아뒀다가 삭제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 끝에 결국 소장함에 담게 되었다. 호기심의 승리였다.


이 책 무진장 웃긴다. 하지만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고, 뒷맛은 약간 씁쓸하다. 하여간 무진장 웃겨서 어느 분의 경험담처럼 나도 지하철에서 혼자 웃다가 실성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키득거리기도 했다. 중반부까지는 그렇게 한 장 한 장 빠르게 읽어가다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이렇게 빨리 읽어버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에 속도 조절을 하기 시작했다. 페이지 넘어가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첫 시즌 승률 1할8푼8리. 그 외에도 16연패와 18연패의 기록. 삼미 슈퍼스타즈는 정말 기록적인 팀이다. 과연 야구를 몰랐던 나는, 그리고 이제는 역사 속에 묻혀버린 이 팀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정말로 삼미 슈퍼스타즈란 팀이 있었느냐고, 정말로 이렇게 지질이도 못했느냐고. 그 사람들 말이 정말로 그랬단다.


1할8푼8리의 승률로 살아가기는 삼미 슈퍼스타즈나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나, 그리고 나나 다를 바 없다. 다른 게 있다면 난 내 승률이 왜 1할8푼8리밖에 안 될까, 격분한다는 정도일까? 이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왜 난 여기까지밖에 못 오는 걸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저기까지만 가자, 그렇게 내 승률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정도일까? 그렇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래서 지금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받기 힘든 공은 받지 않는다’. 그렇게 야구를 해왔다. 그런데 다른 ‘프로’ 팀들은 치기 힘든 공도 쳐야 하고, 받기 힘든 공도 모두 기를 쓰고 받아야 한다. 그들은 ‘프로’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모든 공을 쳐야 하고 모든 공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반드시 정상에 올라야만 산을 오른 것은 아니겠지만, 이젠 그 당연한 것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여기는 프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책 한 권을 읽고 깨달음을 얻은 양 1할8푼8리의 현실을 인정하고 삼미의 인생을 살 수는 없다. 언제부턴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프로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은 책 한 권에 인생이 바뀔 만큼 단순하지 않다. 또한 무엇보다 나는 산업자본주의의 부산물들의 유혹을 이겨낼 만큼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방망이를 휘둘러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면 괜히 자학하거나 자신을 탓하지는 말아야겠다. 난 삼미 슈퍼스타즈고, 삼미 슈퍼스타즈가 아무리 기고 날라봐야 OB 베어스나 삼성 라이온스가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가끔은 치기 싫은 공은 피할 줄 아는, 적어도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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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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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는 '뭐 이런 성의없는 제목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자꾸 접하다보니, 그리고 내용을 알고보니 참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제목이다. 솔직히 가끔은 나도 내 등짝을 발로 차주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내 등짝을 내가 발로 차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손바닥을 등쪽으로 뻗어 등짝을 한 대 내리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속 시원한 그런 느낌은 없다.

아시다시피 이 책은 2004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작가는 1984년 생으로 역대 최연소 수상자라고 한다. 실제로 작가인 와타야 리사의 사진을 보았는데, 참 어여쁘게 생겼다. 이렇게 어여쁘게 생겨서 이렇게 깔끔하게 글도 잘 쓴다니 문득 질투심이 일었다. 그만큼 깔끔하게 10대의 심리를 잘 그려냈다. 작가가 갓 10대를 벗어난 나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

주인공 하츠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아니 정확히는 속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일부러 웃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의 의지로 그 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중학교 시절 단짝친구였던 키누요가 다른 친구들의 무리에 들어가면서 혼자 남게 된 것이 못내 서운하고, 점심시간이면 혼자 밥먹는 일이 싫고, 혼자 무료히 보낼 긴긴 여름방학이 불안하기만 하다.

겉으로는 애써 강한 척 태연한 척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는 "인정받고 싶다. 용서받고 싶다. 빗살 사이에 낀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걷어내듯, 내 마음에 끼어 있는 검은 실오라기들을 누군가 손가락으로 집어내 쓰레기통에 버려주었으면 좋겠다. ...남에게 바랄 뿐이다. 남에게 해주고 싶은 것 따위는, 뭐 하나 떠올리지도 못하는 주제에."  라고 말한다.

그런 그녀 옆에 그녀와 비슷한, 또 하나의 나머지 니나가와가 등장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니나가와는 올리짱이라는 모델에게 빠져 있다는 것. 하지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의식적으로 피하는 하츠나, 상처받을 일 없는 '올리짱'에게 집중하는 니나가와는 또 어찌보면 다르지 않다. 하츠는 올리짱에 대한 니나가와의 광적인 집착에 실망하는 한편 안타까워 한다. 어쩌면 그런 니나가와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정받고 싶은, 용서받고 싶은, 누군가 집어내 주면 좋을' 자신의 마음을 또 하나의 자신인 니나가와를 향해 열어둔다.

"니나가와의 상처받은 얼굴을 보고 싶다. 절망적인 얼굴을 보고 싶다. (중략)오싹했다. 좋아한다는 말과 지금 내가 니나가와에게 품고 있는 감정의 그 차이에."

하츠에게 니나가와는 남들 앞에서 웅크리고 숨기만 했던 자기 자신인 동시에, 또 인정받고 용서받고 싶은 대상이기도 하다. 니나가와의 등짝을 발로 차는 일은 그래서 자신을 용서하는 일인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 맺기의 시도다.

어느덧 서른 해 가까이 살아왔지만 아직도 나는 관계 맺는 일에 서투르다. 평생을 살아도 결코 쉬워지거나 만만해질 것 같지 않다. 자꾸만 자꾸만 안으로 움추려드는 나를 위해 누군가 나의 등짝을 차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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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
모리 준이치 지음, 한유희 옮김 / 지원북클럽(하얀풍차)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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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소설이다. 한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불타는 사랑 이야기도 아니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사랑이랑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할머니의 세탁소에서 세탁물이 도난당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을 하는 테루는 어릴 적 머리를 다쳐 모자를 쓰고 다닌다. 모자를 벗으면 경기를 일으킨다고 한다. 이 세탁소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며느리가 빨래를 해주지 않아 손수 세탁물을 들고오는 할아버지부터 사진찍는 것이 취미인 아줌마, 그리고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권투선수까지.. 어쩌면 세탁소는 더러워진 옷가지만 깨끗하게 해주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더러워진 옷가지들이 세탁기에 들어가 세제를 잔뜩 뿌려 세탁기 속에서 빙빙 돌아가는 동안 마음 속의 온갖 상처들과 얼룩들도 함께 제거되고 살아갈 이유가 생겨나는 것 같다.

어느날 이 세탁소로 어떤 여인이 찾아온다. 그녀는 옷가지를 하나 두고 가고 테루가 여인에게 이 옷을 찾아주면서 이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미즈에의 아버지는 바람이 났다. 엄마와 자식들을 버리고 여자를 쫒아간 아빠를 엄마는 평생 원망하며 산다. 스무 살이 넘은 어느날 미즈에는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그 남자는 부인이 아이를 낳았다, 는 이유로 언젠가부터 미즈에를 멀리한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아빠의 그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그 충격으로 도벽을 하게 되고, 자살도 시도한다. 결국 경찰에 잡히고 다시 고향의 가족에게 돌아오지만 그곳에도 이미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 그녀는 엄마에게 특별한 아이였고 동생에게는 자신의 방을 차지한 손님일 뿐이었다.

한편 테루는 그녀가 놓고간 자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옷을 세제 한 통을 다부어 빤다. 자살의 흔적과 함께 고난하고 지루하고 힘든 시간들도 그렇게 씼겨 내려갈 수 있을까마는.. 그는 그 옷을 들고 물어물어 미즈에에게로 오고,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할머니도 돌아가셔서 갈 곳이 없는 테루와, 마찬가지로 돌아갈 곳이 없는 미즈에, 그리고 이들을 돕는 샐리.. 샐리가 사랑을 찾아 떠나면서 테루와 미즈에, 둘만이 남겨지게 되고 이 둘의 불완전하지만 힘겨운, 서로를 채워주는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이란 완벽한 남자와 완벽한 여자가 만나 이루는 또 하나의 완벽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불완전한 너와 내가 만나 역시 불완전할지라도 다독여가며 사는 것. 상대의 불완전한 모습까지 감싸안는 것이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세상에는 완벽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자신이 부족한 것 없이 완벽하다고 느낀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부족함이다. 내 결점과 내 상처와 아픔들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고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잔잔하게 이야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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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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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정과 열정 사이, 를 읽었다. 오랜 베스트셀러로서 그 명성은 익히 들어왔지만, 그래서 그 명성 때문에 오히려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 최근 동명의 영화를 보게 되었고, 마침 책도 빌려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스무 살에 만난 아오이와 준세이는 서로 마치 잃어버린 쌍둥이 형제를 만난 듯 그렇게 서로에게 빠지고 가까워지고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된 그들. 서른 살 여자의 생일에 피렌체의 두오모에 같이 오르자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던 그들은 그 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방황한다는...

책은 두 권으로 나눠져 있다. 남자 작가가 쓴 준세이의 이야기, 블루와,, 여자 작가가 쓴 아오이의 이야기, 로즈.. 사실 사람을 만나다보면 내 입장이나 내 생각, 감정이 아닌 상대방의 그것이 궁금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아주 신선한 기획이었다. 물론 한 권으로 있어도 서로의 감정이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하지만, 분권으로 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니 남녀의 각각의 감정에 훨씬 더 잘 이입할 수 있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로즈가 더 와 닿는다. 내가 여자라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더 최근에 읽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오이는 준세이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그 이유로 준세이와 헤어지게 될까 봐  두려워 혼자 낙태를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버린 준세이는 불같이 화를 내고, 결국 "영원히 너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헤어지게 된다. 그 상처는 여자의 가슴에 깊이 깊이 남는다. 그래서 다른 꽤 괜찮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지만 그 사람에게도 모든 것을 주지 못하고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게 만든다.그리고 자신이 용서받고 있다는 것에 늘 안도하게 한다. 어쨌든 그녀는 꽤 안정적이었다. 꽤 괜찮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 나름대로 화려하고 부족함 없이 살아간다. 그것이 서른 살, 그녀의 다른 사랑의 모습은 아닐까. 사랑받고 있고 용서받고 있다는 느낌. 서른 살 그녀의 다른 사랑의 모습..  하지만 난데없이 일본에서 날아온 준세이의 편지로 그녀의 안정은 박살이 난다.

남자에게는 늘, 시시때때로 그리움이던 그녀. 그녀에게는 꼭꼭 눌러둬야만 했던 그, 준세이. 결국 상처를 준 것도 두 사람 모두이고 받은 사람도 두 사람 모두였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그리움, 오랜만에 만난 사랑의 모습 앞에서 상처는 눈녹는 사라지고 만다. 두 사람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열정이, 냉정 안에 갇혀 있는 열정이 그 모습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아오이의 기차를 따라잡기 위해 특급열차에 몸을 실은 준세이, 그들의 사랑도 그만큼이나 빠르게 서로에 대한 오해를 벗고 자신의 열정에 솔직해지기를 바란다.

사실 사랑이란, 특히나 첫사랑이란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다반사이다. 오죽하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공공연한 진리처럼 나돌고 있겠는가. 하지만 이렇게나 오래도록 서로를 잊지 못하고 서로가 남긴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을 치유할 사람도 그 사람밖에 없을 것이고, 그 사람의 자리에는 다른 누구도 들어설 수 없을 것이다. 간혹 오래 전의 연인을 만나 기대 밖의 모습에 차라리 추억으로 간직할 것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실은 나도 그런 두려움이 있지만,, 이 둘의 사랑은 정말 가슴 저리고 아륻답다. 이제라도 정말 그들이 자신의 열정에 솔직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이들의 사랑과 함께, 부수적으로 밀라노와 피렌체, 그리고 도쿄의 거리들, 시간을 되돌리는 유일한 직업인 명화 복원사 등에 대한 읽는 즐거움도 놓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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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5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로쏘가 더 탁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