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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ㅣ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냉정과 열정 사이, 를 읽었다. 오랜 베스트셀러로서 그 명성은 익히 들어왔지만, 그래서 그 명성 때문에 오히려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 최근 동명의 영화를 보게 되었고, 마침 책도 빌려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스무 살에 만난 아오이와 준세이는 서로 마치 잃어버린 쌍둥이 형제를 만난 듯 그렇게 서로에게 빠지고 가까워지고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된 그들. 서른 살 여자의 생일에 피렌체의 두오모에 같이 오르자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던 그들은 그 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방황한다는...
책은 두 권으로 나눠져 있다. 남자 작가가 쓴 준세이의 이야기, 블루와,, 여자 작가가 쓴 아오이의 이야기, 로즈.. 사실 사람을 만나다보면 내 입장이나 내 생각, 감정이 아닌 상대방의 그것이 궁금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아주 신선한 기획이었다. 물론 한 권으로 있어도 서로의 감정이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하지만, 분권으로 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니 남녀의 각각의 감정에 훨씬 더 잘 이입할 수 있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로즈가 더 와 닿는다. 내가 여자라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더 최근에 읽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오이는 준세이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그 이유로 준세이와 헤어지게 될까 봐 두려워 혼자 낙태를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버린 준세이는 불같이 화를 내고, 결국 "영원히 너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헤어지게 된다. 그 상처는 여자의 가슴에 깊이 깊이 남는다. 그래서 다른 꽤 괜찮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지만 그 사람에게도 모든 것을 주지 못하고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게 만든다.그리고 자신이 용서받고 있다는 것에 늘 안도하게 한다. 어쨌든 그녀는 꽤 안정적이었다. 꽤 괜찮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 나름대로 화려하고 부족함 없이 살아간다. 그것이 서른 살, 그녀의 다른 사랑의 모습은 아닐까. 사랑받고 있고 용서받고 있다는 느낌. 서른 살 그녀의 다른 사랑의 모습.. 하지만 난데없이 일본에서 날아온 준세이의 편지로 그녀의 안정은 박살이 난다.
남자에게는 늘, 시시때때로 그리움이던 그녀. 그녀에게는 꼭꼭 눌러둬야만 했던 그, 준세이. 결국 상처를 준 것도 두 사람 모두이고 받은 사람도 두 사람 모두였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그리움, 오랜만에 만난 사랑의 모습 앞에서 상처는 눈녹는 사라지고 만다. 두 사람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열정이, 냉정 안에 갇혀 있는 열정이 그 모습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아오이의 기차를 따라잡기 위해 특급열차에 몸을 실은 준세이, 그들의 사랑도 그만큼이나 빠르게 서로에 대한 오해를 벗고 자신의 열정에 솔직해지기를 바란다.
사실 사랑이란, 특히나 첫사랑이란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다반사이다. 오죽하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공공연한 진리처럼 나돌고 있겠는가. 하지만 이렇게나 오래도록 서로를 잊지 못하고 서로가 남긴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을 치유할 사람도 그 사람밖에 없을 것이고, 그 사람의 자리에는 다른 누구도 들어설 수 없을 것이다. 간혹 오래 전의 연인을 만나 기대 밖의 모습에 차라리 추억으로 간직할 것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실은 나도 그런 두려움이 있지만,, 이 둘의 사랑은 정말 가슴 저리고 아륻답다. 이제라도 정말 그들이 자신의 열정에 솔직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이들의 사랑과 함께, 부수적으로 밀라노와 피렌체, 그리고 도쿄의 거리들, 시간을 되돌리는 유일한 직업인 명화 복원사 등에 대한 읽는 즐거움도 놓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