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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는 '뭐 이런 성의없는 제목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자꾸 접하다보니, 그리고 내용을 알고보니 참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제목이다. 솔직히 가끔은 나도 내 등짝을 발로 차주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내 등짝을 내가 발로 차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손바닥을 등쪽으로 뻗어 등짝을 한 대 내리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속 시원한 그런 느낌은 없다.
아시다시피 이 책은 2004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작가는 1984년 생으로 역대 최연소 수상자라고 한다. 실제로 작가인 와타야 리사의 사진을 보았는데, 참 어여쁘게 생겼다. 이렇게 어여쁘게 생겨서 이렇게 깔끔하게 글도 잘 쓴다니 문득 질투심이 일었다. 그만큼 깔끔하게 10대의 심리를 잘 그려냈다. 작가가 갓 10대를 벗어난 나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
주인공 하츠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아니 정확히는 속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일부러 웃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의 의지로 그 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중학교 시절 단짝친구였던 키누요가 다른 친구들의 무리에 들어가면서 혼자 남게 된 것이 못내 서운하고, 점심시간이면 혼자 밥먹는 일이 싫고, 혼자 무료히 보낼 긴긴 여름방학이 불안하기만 하다.
겉으로는 애써 강한 척 태연한 척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는 "인정받고 싶다. 용서받고 싶다. 빗살 사이에 낀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걷어내듯, 내 마음에 끼어 있는 검은 실오라기들을 누군가 손가락으로 집어내 쓰레기통에 버려주었으면 좋겠다. ...남에게 바랄 뿐이다. 남에게 해주고 싶은 것 따위는, 뭐 하나 떠올리지도 못하는 주제에." 라고 말한다.
그런 그녀 옆에 그녀와 비슷한, 또 하나의 나머지 니나가와가 등장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니나가와는 올리짱이라는 모델에게 빠져 있다는 것. 하지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의식적으로 피하는 하츠나, 상처받을 일 없는 '올리짱'에게 집중하는 니나가와는 또 어찌보면 다르지 않다. 하츠는 올리짱에 대한 니나가와의 광적인 집착에 실망하는 한편 안타까워 한다. 어쩌면 그런 니나가와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정받고 싶은, 용서받고 싶은, 누군가 집어내 주면 좋을' 자신의 마음을 또 하나의 자신인 니나가와를 향해 열어둔다.
"니나가와의 상처받은 얼굴을 보고 싶다. 절망적인 얼굴을 보고 싶다. (중략)오싹했다. 좋아한다는 말과 지금 내가 니나가와에게 품고 있는 감정의 그 차이에."
하츠에게 니나가와는 남들 앞에서 웅크리고 숨기만 했던 자기 자신인 동시에, 또 인정받고 용서받고 싶은 대상이기도 하다. 니나가와의 등짝을 발로 차는 일은 그래서 자신을 용서하는 일인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 맺기의 시도다.
어느덧 서른 해 가까이 살아왔지만 아직도 나는 관계 맺는 일에 서투르다. 평생을 살아도 결코 쉬워지거나 만만해질 것 같지 않다. 자꾸만 자꾸만 안으로 움추려드는 나를 위해 누군가 나의 등짝을 차주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