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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
모리 준이치 지음, 한유희 옮김 / 지원북클럽(하얀풍차) / 2003년 12월
평점 :
잔잔한 소설이다. 한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불타는 사랑 이야기도 아니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사랑이랑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할머니의 세탁소에서 세탁물이 도난당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을 하는 테루는 어릴 적 머리를 다쳐 모자를 쓰고 다닌다. 모자를 벗으면 경기를 일으킨다고 한다. 이 세탁소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며느리가 빨래를 해주지 않아 손수 세탁물을 들고오는 할아버지부터 사진찍는 것이 취미인 아줌마, 그리고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권투선수까지.. 어쩌면 세탁소는 더러워진 옷가지만 깨끗하게 해주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더러워진 옷가지들이 세탁기에 들어가 세제를 잔뜩 뿌려 세탁기 속에서 빙빙 돌아가는 동안 마음 속의 온갖 상처들과 얼룩들도 함께 제거되고 살아갈 이유가 생겨나는 것 같다.
어느날 이 세탁소로 어떤 여인이 찾아온다. 그녀는 옷가지를 하나 두고 가고 테루가 여인에게 이 옷을 찾아주면서 이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미즈에의 아버지는 바람이 났다. 엄마와 자식들을 버리고 여자를 쫒아간 아빠를 엄마는 평생 원망하며 산다. 스무 살이 넘은 어느날 미즈에는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그 남자는 부인이 아이를 낳았다, 는 이유로 언젠가부터 미즈에를 멀리한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아빠의 그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그 충격으로 도벽을 하게 되고, 자살도 시도한다. 결국 경찰에 잡히고 다시 고향의 가족에게 돌아오지만 그곳에도 이미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 그녀는 엄마에게 특별한 아이였고 동생에게는 자신의 방을 차지한 손님일 뿐이었다.
한편 테루는 그녀가 놓고간 자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옷을 세제 한 통을 다부어 빤다. 자살의 흔적과 함께 고난하고 지루하고 힘든 시간들도 그렇게 씼겨 내려갈 수 있을까마는.. 그는 그 옷을 들고 물어물어 미즈에에게로 오고,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할머니도 돌아가셔서 갈 곳이 없는 테루와, 마찬가지로 돌아갈 곳이 없는 미즈에, 그리고 이들을 돕는 샐리.. 샐리가 사랑을 찾아 떠나면서 테루와 미즈에, 둘만이 남겨지게 되고 이 둘의 불완전하지만 힘겨운, 서로를 채워주는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이란 완벽한 남자와 완벽한 여자가 만나 이루는 또 하나의 완벽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불완전한 너와 내가 만나 역시 불완전할지라도 다독여가며 사는 것. 상대의 불완전한 모습까지 감싸안는 것이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세상에는 완벽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자신이 부족한 것 없이 완벽하다고 느낀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부족함이다. 내 결점과 내 상처와 아픔들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고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잔잔하게 이야기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