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애의 경제학
가가와 도요히코 지음,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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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의 경제학 #가가와도요히코

 

이 책의 저자는 철저한 복음주의자로서 기도의 사람이었고, 일본 근대 사회운동의 씨앗을 뿌린 기독교 사회주의자이며 목사였던 가가와 도요히코. 5년에 걸친 빈민가 생활을 한 저자는 미국에서 유학 후, 일본으로 돌아와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했고, 농민 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경제구조의 변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빈민가를 변화시키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만 명이 넘는 시위를 일으켜 보기도 하고, 그로 인하여 감옥에도 수차례 다녀왔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던 이유는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사회 구원을 이루는 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이들이 저자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기독교의 진정한 실천은 경제생활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종교개혁자들은 개인의 믿음의 영역에 대해서 많이 강조했는데, 저자는 바로 이점의 지나친 강조 때문에 경제적인 공동체성을 크게 잃어버린 역사가 있다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신교회들의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오며 더욱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많은 기독교 운동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그러한 모습이지만, 그 영향력은 신자 한 사람의 개인적인 영역이나 개 교회에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종교 밖의 사람들이 자본주의와 종교적 신념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교회 안에서 조차 이것이 마치 건널 수 없는 강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 큰 오류라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 한다. 이어서 말하기를 심지어 교회 조직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부당 이득 사회의 특권 계급에 의존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음을 말한다. 저자는 이렇게 기독교가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 교회들이 자본주의 구조에 기대어 있는 모습에 대해서 크게 안타까워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러한 일들에 관심이 없고 행동하지 않는 이들의 신앙은 미신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기 까지 한다.

 

교회들이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을 이 사회 가운데 이루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저자는 바로 인간 의식의 변혁에서 답을 찾는다. 신앙을 개인의 영역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의 미신을 변혁하여 신앙이란 개인을 넘어 이웃과 함께 누리는 것임을 깨닫게 하고 실천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과 실천을 점점 사회화 할 때 기독교적인 경제혁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개인의식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형재애’, ‘우애. 교회의 역사 가운데, 심지어 교회의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 시대에도 멈추지 않고 존재했던 형재애를 바탕으로 한 운동들이 있어왔다. 안타깝게도 개신교 역사 이후 자유가 강조되면서 형제애가 점점 약해졌는데, 이러한 상황 중에 유럽과 일본에서 일어난 협동조합 운동은 개인의 자유와 형재애가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시너지를 일으키며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저자가 반복해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협동조합은 로치데일 생협 운동과 독일의 프리드리히 폰 라이파이젠운동이다. 물론 이러한 협동조합 운동들과 이후에 나타난 현대의 협동조합에도 특정 지역이나 사람들의 복지만 강조하는 폐단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저자는 사회 전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개인의 의식각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협동조합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이것을 기반으로 한 사회, 국가, 이를 바탕으로 한 세계 평화까지 자신의 논의를 밀고 나간다는 점이다. 협동조합들이 연맹을 맺고, 이들에게서 대표를 뽑아 의회를 조직하고, 이들만의 대표는 이들만의 이익을 반영하기 십상이므로 이들 외에서 대표를 뽑아 사회 의회를 따로 조직하고, 이 두 가지 의회에서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국가들이 세계에 확산되면 평화도 함께 확산 될 것이라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저자가 이렇게 각 나라들이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사회를 조직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빈곤으로 몰아가는 것은 다름 아닌 경제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먹거리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인구과잉 때문에 위협받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다. 저자는 이 탐욕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속죄뿐이고, 이렇게 치유 된 사람들이 힘을 모아 형재애에 바탕을 둔 새로운 경제를 만들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회 안에서 고립된 교회. 아니 고립을 자처한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고민한다. 기존의 교회의 틀은 이제 더 이상 순기능을 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존의 교회들이 이러한 평가를 받는 큰 이유가 신앙을 개인의 영역으로 국한 시키며 사회 안에 작은 자들, 즉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주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책은 80여 년 전의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를, 그것도 아주 러프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은 꾀나 지겨울 수도 있을 것 같다.(솔직히 나도 좀 그랬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는 교회의 모습, 즉 신앙을 개인의 영역에만 축소시켜 사회에 대하여 무관심한 모습은 내가 속한 지금의 한국의 많은 교회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이러한 점만으로도 읽는 내내 마음에 지적당하는 것 같은 불편함도 있었지만,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도 같은 것을 발견한 희열? 같은 감정도 있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이 책에 대한 논평이 너무나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협동조합이 대안인가? 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우애의 정신에 기초한 연대와 협력의 사회가 도래하지 않는다면 대다수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이 자본주의 사회가 타인의 눈물과 고통 위에 일부의 풍요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의 현실이 극복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자유롭고 해방된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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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의 동성애 논쟁 - 동성간의 결혼도 가능한가? 아고라 시리즈 1
존 스토트 지음, 양혜원 옮김 / 홍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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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의 동성애 논쟁. 존스토트. 홍성사.


이 분 책은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책이 워낙 얇고, 논지도 분명하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1.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네 가지 전제
-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 우리는 모두 성적인 존재다.
-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2.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기 위하여 논의의 주제는 ‘동성애를 기반으로 하는 사랑을 과연 그리스도인이 인정할 수 있는가?’로 한정한다.


3. 동성애를 언급하는 주요 성경 본문들은 모두 동성애행위를 죄로 말한다.
- 창세기 19장의 소돔 이야기, 사시기 19장의 기브아 이야기
- 레위기 본문들(레 18:22, 20:13)
- 사도 바울의 언급 중에서도 이 주제를 강조하는 로마서 1:18-32
- 다른 바울 서신(고전6:9-10, 딤전 1:8-11)


4. 성경이 말하는 성과 결혼에 대한 긍정적 가르침
- 창세기 1장과 2장, 예수님의 이야기는 남자와 여자의 결혼 관계 밖에서의 성행위에 대한 그 어떤 정당화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줌.


5. 오늘 날의 논쟁점
- 성경의 저자들은 자신의 상황과 연관된 질문을 다루고 있고, 그것은 우리의 질문과는 매우 다르다.
- 성경의 저자들은 우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는다.
- 하나님이 나를(혹은 그들을) 동성애자로 만드셨다.
- 중요한 것은 진실한 사랑이다.


6. 동성애 긍정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존 스토트의 반박
- 그들의 주장은 신화에 가까울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 게이들의 일반적인 성행위에 따른 피해가 분명 일반적인 결혼을 유지하는 이성애자들이 경험하는 육체적인 질병으로 인한 피해가 더욱 크다.
- 사랑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의 테두리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다.


7. 에이즈
- 대중(특히 기독교회들)에게 알려진 바와 많이 다르다. 함부로 하나님의 심판이라 말하지 말 것.


8.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성애 행위와 관계 중단을 요청해야 한다면?
- 믿음을 가지라.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이라.
- 하나님의 규범에서 벗어나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회복 될 수 있다는 것을 소망할 수 있다.
- 제 3의 길은 가능하다. 사랑, 이해, 용납이라고 불리는 것. 이중의 회개.


생각했던 범위를 거의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내 생각이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았지만. 존 스토트의 책은 역시 깔끔하고, 명쾌하다.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언제나 분명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의문이 드는 것은 제 3의 길이라는 것이 가능할지....다시 말해서 동성애자들과 행위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동성애 행위를 정죄하는 가운데 동성애자를 용납한다는 일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


그래도 많은 이들이 이런 고민을 할 것이고, 이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이들의 생각이 구체화 되고 여러 실천적 모범이라 불릴 만한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전망해본다. 나름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기존 교회에 속하는 많은 이들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훅~ 하고 찾아 왔기 때문이고, 특히 목회자들이 이런 고민을 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잘 아는 청년 둘이 지난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한 명은 퍼레이드에 한 명은 반대기도 집회에. 사실 전에는 교회라면 가난을 비롯한 여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는 교회가 동성애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목회의 자리에서 직접 해당 주제를 마주치니 많이 당혹스러웠다.


이런 차원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보다 더 자주 생각하게 될 것이고, 지역 교회 혹은 우리 삶의 자리에서 더 많이 해당 주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다보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부끄럽지만 이제 시작하는 고민을 좀 더 날카롭게 하고, 폭을 넓혀야겠다. 다른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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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kkary 2016-06-24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는 두꺼운 책에서 한 챕터를 발췌해 놓은 책자죠.
동성애가 다른 죄와 구별되는 특별한 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에 보면 여자앞에서 발기가 되지 않아 상실감을 느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런 동성애자의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후에는 여자와 관계하여 애를 갖는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좋음 2016-06-2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유독 동성애에 반대하는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아요. 책 소개도 감사합니다. ^^
 
인생의 사계절 (각양장)
폴 투르니에 지음, 박명준 옮김 / 아바서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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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투르니에를 검색해보면 기독교인이 사랑한 심리학자...라는 소개의 글들이 많이 나온다. 학창시절 그의 책들에 대해서 소개도 많이 받았고, 친구나, 선배들이 읽는 걸 본 기억이 있지만, 나는 이번에 읽은 인생의 사계절이 처음이다. 이 책에 대해서 알아보니 처음 나온 것도 벌써 50년이 지났고, 한국에서도 인생의 네 계절 또는 인새으이 계절들이란 제목으로 나왔던 것 같다. 2년 전쯤 아바서원에서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인생의 사계절이란 제목으로 제번역해서 나왔다고 한다.

 

우선 제목, ‘인생의 사계절을 보면 인생을 단계 별로 나누는 것보다 계절로 비유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새 청년이 되고, 조금 지나고 보니 중년이 되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노년이 되어 버리고....언제 이렇게 더워졌지? 날이 금세 쌀쌀해졌네....우리가 계절이 변하는 것을 눈치 채는 것이 어렵듯이 인생도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여태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연적인 인간, 초자연적인 인간에 구분이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프로이트와 부버를 인용하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면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과 변화를 계절로 비유한다. 그리고 봄에서 여름으로’, ‘기독교, 자유인가 구속인가’, ‘인생의 성취’, ‘여름에서 가을로’, ‘’인생의 의미라는 순서로 책을 이끌어나간다.

특히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이 유아기에서 청년의 시기로 성장할 때에 수동적인 순종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는 것을 보여주고, 성취에 대한 주제를 통해서는 청년기에 속한 사람들이 많은 선택지들 가운데 선택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을 통해 인생이 무르익는 것임을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겨울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년의 단계를 겨울이라 말하지 않고 인생의 의미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는데, 저자는 노년의 시기를 인생의 의미를 찾는 시기로 보기 때문이고, 인생이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로 이어지는 시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인생에 있어 겨울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가운데 참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부활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인생의 모든 시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강연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 내용이 짧다. 그래서 좀 더 깊은 설명이나 예를 들어 이야기해주면 어떨까 싶은 부분들이 있지만 노년에 이른 인생 선배가 주는 굵직한 조언들에 일일이 주석을 달아가면서 책을 냈다면 책이 지루해졌거나, 재미를 반감시켰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몇 번에 걸쳐 새롭게 나온 책이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설교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 정도로 번역이 자연스럽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인생이 벌써 이쯤에 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직도 봄이거나, 봄에서 여름으로 한창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인지...저자가 책 초반에 이런 이야기를 써놓기도 했다. 내가 보기엔 이 책에서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인간은 가을에도 봄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구분해주는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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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복기하다 -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11가지
이정희 지음, 박홍규 그림 / 들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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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복기하다. 이정희. 들녘

 

2014년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정당이 강제로 해산 됐다. 7-80년대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남과 북이 분단이 되어 있는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설마 했던 일이 정말로 일어났었다. 벌써 16개월이나 지났다. 안 그래도 요즘 그 사람- 이정희 대표는 뭐하며 사나....하고 궁금증이 들었는데, 정당 해산이후 분을 삼키며 조용히 이 책을 쓰고 있었나보다.

 

진보를 복기하다이 책의 저자는 이정희다. 변호사이면서 18대 국회위원을 지냈고,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의 대표를 역임했던 그 이정희다. 그녀는 정당 해산 이후 자책감으로도, 타인의 질책 때문이라도 참 많이 힘들고 아픈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 자신이, 그리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뿌려 놓은 씨앗들이 언젠가는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정성스럽게 쓴 것 같다.

 

이 책은 전체 11개의 챕터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과거 진보 정당에서 발의한 열한 가지 법안들과, 그 법안들이 만들어진 이유, 그리고 그 법안들이 지금도 필요한 이유, 그대로 폐기시키기에 안타까운 그녀의 마음이 이 안에 잘 담겨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서 나는 무엇보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법안들이 발의 된 이유를 살피면서 정부와 재벌 기업들이라는 강자들이 얼마나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는지, 그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과 가족들의 생계를 위협 받으며 고통 받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1개의 법안들을 통해 법이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고, 법을 통해서라도 강제하지 않으면 안 될 무소불위의 권력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인상적인 몇몇 부분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아래의 인용은 구의역에서 일어난 사고와 기가 막히게 연관이 되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산업재해의 특징은, 그 발생 원인이 사용자의 한 번의 실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더 큰 수익을 낼 목적으로 만들어놓은 생산현장의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산업재해는 불운한 노동자에게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끊임없이 반복된다.”

 

5-8호선에서는 정규직으로 스크린 도어 정비팀이 운영이 되는데, 1-4호선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특히 2호선에서만 반복해서 사망사고가 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위의 인용구가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떠올랐다. 산업재해가 아니라 기업살인. 말만 바꿔도 왜 이 법이 필요한지 절감하게 된다.

 

이 외에도 새롭게 배운 개념이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영역들의 문제들, 필요한 법안들을 보면서 사람이 사랍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현장도 알아야 하고, 이런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더욱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정말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너무 모르고,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도 너무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정치인이 무시 또는 비난을 감수하고 이런 정책을 낼 동기는 사랑 말고는 없다. 아픈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만 그들을 위해 사회 구성원들을 설득할 용기를 낼 수 있다. 사랑하기에 진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갖고,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러나 너무 모르거나 막연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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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사색 믿음의 글들
C. S.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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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편사색. C. S. 루이스. 홍성사

루이스를 선생님 삼아서 그의 모든 글들을 찾아 읽고, 반복해서 읽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1세기 전 영문학자였으며 기독교 변증가이기도 한 그의 글들은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신앙에 대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시편 사색’,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이 성경의 시편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니라 학생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가 성경 신학에 대해서 (혹시) 비전문가일 수 있어도, 시에 대해서는 영문학자로서 뛰어난 전문가다. 어쨌든, 이 책에서도 보면 그거 시편을 통해 하나님과 신앙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많은 통찰을 제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저자는 사람들이 시편을 읽으면서 어려움을 겪는 ‘심판’, ‘저주’, ‘죽음’ 등에 대해서 먼저 말해준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시편에 등장하는 심판은 주로 형사 재판의 모습이 아니라 민사 재판과 가깝다는 지적이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시인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원고 측에서 심판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고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별 것 아닌 사실 같지만, 이러한 그림은 나에게 상당히 신선했다. 왜냐하면 저자의 지적처럼, 나 역시 성경을 읽으면서 나타나는 심판을 생각할 때면 너무나 쉽게 나 혹은 모든 사람들을 피고석에 앉히는 형사 재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가 보여준 통찰 중에서 나에게 좋았던 부분은 과격한 언사를 통해 그들은 적어도 분노할 줄 알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아예 분노에 대한 유혹조차 받지 않으며, 그런 일을 지극히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끔찍한 도덕적 불감증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교회 내에서, 아니 성도로서 분내는 것 자체를 금기시 하는 분위기를 한 번 쯤을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나, (저자가 말하는)도덕적 불감증이 우리의 기도나 노래를 죽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성경과 시편이 갖는 두 번째 의미에 대해서 추적한다. 많은 이들이 알레고리적인 해석에 대해서 과도하게 비판하기만 하는데, 저자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성경, 특히 시에서 두 번째 의미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고대 문학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진리에 대한 유사성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구약, 특히 여러 시들에서 두 번째 의미를 인정하셨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것은 저자가 서문에서 시편을 두고 ‘작은 성육신’이라고 말한 것과 연결이 되는 것 같다.

이 외에도 인용하고 싶은 많은 구절들이 있지만, 줄이기로 한다. 오랜만에 읽은 루이스의 책이었는데, 다시 그를 가까이해야 할 것 같다. 20대 초반에 멋모르고 집어 읽었던 그의 책들의 재미와 가치들을 덮어 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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