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부정하거나 도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예수가 서 있는 곳에 서는 신앙인은 이 세상의 특정 영역에 있을 때만 그곳이 자기 집이라고 여기는, 그곳에서만 편안함을 느끼는 이가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곳을 자기 집처럼 여기는 사람, 동시에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바로 지금 여기에 헌신할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 지금 이어느 곳도 자기 집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진리 안에서살아가려 애쓰다 보면 어려움과 좌절을 감내하는 것이 삶을 끝없는 불안으로 몰고 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과 이 시대에 만족하지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야말로 우리 생각을 교정해야할 결정적인 지점입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 지금 이 순간은 우리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줄 수 없으며, 이러한 면에서 우리는 집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편안하다는 이유로 지금 이곳, 이 순간을 붙들려 해서는 안 되며, 지금 이곳, 이 순간에 제기되는 문제들에 응답하기를 꺼려서도 안 됩니다. 편안하다는 이유로 지금 이곳에 안주해서는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를 향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 P155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서, 곧 폭력으로만 권력을 수호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 속에서 ‘왕권‘이라는 말은 제한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불가피하게 이 말을 쓰더라도 그 말에 담긴 내용은 완전히 바뀌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가 말한 왕권은 진리가 몸을 입은 사건, 그사건으로의 부름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왕권이 행사하는 통치란, 사람들이 몸을 입은 진리에 이끌려 시선을두고 귀 기울이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다면 진리? 진리가 뭔데?‘) 더 할 말은 없습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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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지음, 김지영 옮김 / 앳워크 / 2019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단순 읽기만하지 말고 추상화, 구조화하여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언제든 사용할수 있는 진짜 지식을 쌓아라. 라는 주장. 다 아는 얘기일수 있으나 의외로 실천하는 이들은 많지 않음. 일단 읽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저자가 말하는대로 묶어서 읽고, 밑줄긋고, 그중에서도 추리고...어느정도 하고 있는 일들. 좀더 전투적으로 읽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약간의 자극이 되는 책. 추천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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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헤로데, 아우구스토, 리사니아는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위협을 느낍니다. 경찰은 비폭력 시위를 하고있는 무리를 향해 물대포를 쏘아댑니다. 중요 인사의 방문을 앞두고정부 당국은 노숙자들을 거리에서 몰아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교인들은 무력한 사람들을 자신의 시야에서 몰아내는 삶을 살면 안 됩니다. 그들의 존재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매우, 근본적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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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예수는 대사제가 이미 세계를 제대로 볼 줄 알고 이를이해할 범주를 가지고 있다고, 그럼에도 이 범주가 진정 의미하는 바를 전혀 모르는 듯이 이를 사용하고 있다고 되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대 위에서 드러나야 할 것은 예수의 정체뿐만이아닙니다. 종교적인 언어 체계 전체(적어도 예수를 고발하며 사람들이 쓴종교 언어 체계) 또한 심판대 위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 재판 중에 대사제의 입에서 나온 ‘하느님‘ 그리고 기름 부음 받은 사람(그리스도)‘과 같은 말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까? 그가 진실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그는 예수의 말을 듣자마자 침묵하게 되거나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본다면 "그것은 너의 말이다" 라는 예수의 대답은 실은 질문자를 향해 이렇게 되묻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는 너 자신을 알고 있느냐? 그리고 너의 역사를 알고 있느냐? 너는현란하게 이스라엘 종교의 언어를 쓰고, 그 형식을 따른다만 거기에 실제로 머무르고 있느냐, 그 언어와 형식이 가리키는 바를 진실로 따르고 있느냐?
- P73

이때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쭉 하느님을 거슬러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즉시 이를 부인하고 무시하려 합니다.  - P78

오늘날 교회는 자신을 보존하는 것만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고이를 위해서만 싸우고 있어. 그 결과 인류와 이 세계에 화해와 구원을가져오는 말씀을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렸단다.
- P82

마태오의 복음서는, 알아보는 능력 곧 지혜 안에서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그 능력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있음직하지 않은 것들과있음직하지 않은 사람들이 연결될 때임을 보여줍니다(다시 한번 1장에나오는 미혼모 마리아, 간음한 바쎄바, 그리고 평판이 좋지 않은 여인들이 어떻게연결되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이 연결은 언뜻 터무니없이 보입니다). 이에 관한 가장 분명한 예는 마태오의 복음서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에 관한 위대한 비유입니다.
- P87

신부는 자신이 걸고 있던 십자가 목걸이를 들고선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나 당신은 ‘이 유대인‘을 알지 않소?" 호프만은 신부의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 P90

그러므로 하느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 첫 번째로 할 일은 (최근 한신학자가 말한) "희생당한 이의 관점" The intelligence of the victim을 갖는 것입니다. 희생당한 이의 관점을 갖춰야 하는 이유는 희생자가 되는 것이그 자체로 선하거나 거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희생당한 이의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힘을 추구하는 체제에서 배제된 이들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모든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우리가 힘을 가져야 한다는,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희생자는 힘을 추구하는 이 세계의 질서가 자신의 할 일을 마친 후에 내팽개친 이, 버린 이를 가리킵니다. 그렇기에 희생자는 그 존재 자체로, 자기야말로 인간의 필요와 문제에 포괄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이념, 제도, 체제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희생자의 편에 섬으로써 우리 또한 그러한 주장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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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자신이 메시아임을 비밀로 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예수를여러 치유자,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에 완강하게 맞섰습니다. 예수가 이 세계에 가져온 가능성은 저런 것들과 견줄 수 없습니다. 그는 진실로 이 세계가 나아가는 길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으며 그러한 변화는 단순히 인간이 처한 상태를 개선한 정도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 P50

달리 말하면, 복음은 낯선 이야기, 낯선 소통 방식을 통해 그 안에담긴 핵심 주장이 얼마나 낯선 것인지를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며 살아 숨 쉽니다. 그 핵심 주장이란, 이 세계로 오셔서 버림받고 실패하고 끔찍한 고난을 받으며 생을 마감한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 이 세계를 다시 빚어내셨다는 말입니다.  - P51

비로소 하느님의 초월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무런 유익도 없는 이의 증인이 되어갈 때, 그의 ‘쓸모없음‘을 되새기고 그를 따라 쓸모없어질 때‘, 바로 그때 우리는 진정 예수가 누구인지 이야기할수 있습니다.
- P59

우리 자신을 어떻게든 정당화하려는 노력에서 벗어날 때, 어떻게든 안정감을 얻고자 하려는 움직임을 멈출 때,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 자신이 세운 기준을 들이대어 모든 것의 이치를 따지는 과정을 중단할때, 그리하여 온전한 의미에서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알든 모르든)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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