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부정하거나 도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예수가 서 있는 곳에 서는 신앙인은 이 세상의 특정 영역에 있을 때만 그곳이 자기 집이라고 여기는, 그곳에서만 편안함을 느끼는 이가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곳을 자기 집처럼 여기는 사람, 동시에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바로 지금 여기에 헌신할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 지금 이어느 곳도 자기 집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진리 안에서살아가려 애쓰다 보면 어려움과 좌절을 감내하는 것이 삶을 끝없는 불안으로 몰고 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과 이 시대에 만족하지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야말로 우리 생각을 교정해야할 결정적인 지점입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 지금 이 순간은 우리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줄 수 없으며, 이러한 면에서 우리는 집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편안하다는 이유로 지금 이곳, 이 순간을 붙들려 해서는 안 되며, 지금 이곳, 이 순간에 제기되는 문제들에 응답하기를 꺼려서도 안 됩니다. 편안하다는 이유로 지금 이곳에 안주해서는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를 향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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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서, 곧 폭력으로만 권력을 수호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 속에서 ‘왕권‘이라는 말은 제한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불가피하게 이 말을 쓰더라도 그 말에 담긴 내용은 완전히 바뀌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가 말한 왕권은 진리가 몸을 입은 사건, 그사건으로의 부름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왕권이 행사하는 통치란, 사람들이 몸을 입은 진리에 이끌려 시선을두고 귀 기울이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다면 진리? 진리가 뭔데?‘) 더 할 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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