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예수는 대사제가 이미 세계를 제대로 볼 줄 알고 이를이해할 범주를 가지고 있다고, 그럼에도 이 범주가 진정 의미하는 바를 전혀 모르는 듯이 이를 사용하고 있다고 되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대 위에서 드러나야 할 것은 예수의 정체뿐만이아닙니다. 종교적인 언어 체계 전체(적어도 예수를 고발하며 사람들이 쓴종교 언어 체계) 또한 심판대 위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 재판 중에 대사제의 입에서 나온 ‘하느님‘ 그리고 기름 부음 받은 사람(그리스도)‘과 같은 말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까? 그가 진실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그는 예수의 말을 듣자마자 침묵하게 되거나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본다면 "그것은 너의 말이다" 라는 예수의 대답은 실은 질문자를 향해 이렇게 되묻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는 너 자신을 알고 있느냐? 그리고 너의 역사를 알고 있느냐? 너는현란하게 이스라엘 종교의 언어를 쓰고, 그 형식을 따른다만 거기에 실제로 머무르고 있느냐, 그 언어와 형식이 가리키는 바를 진실로 따르고 있느냐?
- P73

이때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쭉 하느님을 거슬러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즉시 이를 부인하고 무시하려 합니다.  - P78

오늘날 교회는 자신을 보존하는 것만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고이를 위해서만 싸우고 있어. 그 결과 인류와 이 세계에 화해와 구원을가져오는 말씀을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렸단다.
- P82

마태오의 복음서는, 알아보는 능력 곧 지혜 안에서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그 능력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있음직하지 않은 것들과있음직하지 않은 사람들이 연결될 때임을 보여줍니다(다시 한번 1장에나오는 미혼모 마리아, 간음한 바쎄바, 그리고 평판이 좋지 않은 여인들이 어떻게연결되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이 연결은 언뜻 터무니없이 보입니다). 이에 관한 가장 분명한 예는 마태오의 복음서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에 관한 위대한 비유입니다.
- P87

신부는 자신이 걸고 있던 십자가 목걸이를 들고선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나 당신은 ‘이 유대인‘을 알지 않소?" 호프만은 신부의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 P90

그러므로 하느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 첫 번째로 할 일은 (최근 한신학자가 말한) "희생당한 이의 관점" The intelligence of the victim을 갖는 것입니다. 희생당한 이의 관점을 갖춰야 하는 이유는 희생자가 되는 것이그 자체로 선하거나 거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희생당한 이의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힘을 추구하는 체제에서 배제된 이들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모든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우리가 힘을 가져야 한다는,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희생자는 힘을 추구하는 이 세계의 질서가 자신의 할 일을 마친 후에 내팽개친 이, 버린 이를 가리킵니다. 그렇기에 희생자는 그 존재 자체로, 자기야말로 인간의 필요와 문제에 포괄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이념, 제도, 체제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희생자의 편에 섬으로써 우리 또한 그러한 주장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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