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다시 읽는 아우구스티누스 - 유한자의 조건과 무한자의 부르심
로완 윌리엄스 지음, 이민희 외 옮김 / 도서출판100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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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유 안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이를 삼키려고 발버둥 치거나 아니면 다른 이에게 삼켜
지기
를 갈망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말이죠.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이를 가능케 합니다. 각 사람은 마침내 하나님과의 관계로 정의됩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을 정할 수 없고,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제 운명을 정할 수 없습니다—어떤 인간 존재도 다른 인간 존재를 위한 ‘목적’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에 있는 피조물로서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는 존재로, 하나님께서 형성하시고 있는 존재로 여러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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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에게 잠재적인 비극은 자신이 통치하는 도성이 패배하는 상황에 처하게 만들어야 하는 순간을 결정해야 하는 자신의 책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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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처형당한 그리스도의 ‘공허함’?세상의 측면에서?입니다. 성육신과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차이
를 확증합니다. 그리스도를 최고의 표지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의미와 능력의 공허함입니다. 그가 세상적으로는 ‘침묵’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발언이신 것입니다. 그는 향유될 수 없는 것이며, 그 안에서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이를 사용할 수 있을 뿐입니다(우리가 이와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있다면 말이지요)?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자기-충족적 만족감으로부터, 이미지와 기대로부터 떠나게끔 허용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반-표상’
anti-representation
곧 십자가를 통해 영원한 사물과 이 땅의 모든 표상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격이 드러났습니다. 선물에 대한 이해 내지 계시에 대한 이해는 이 간격에 대한 인식 속에 묻힙니다. 여기에 그 자체로 또한 오랜 기간 교회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통해 죄 용서 또는 재창조에 대해, 은총에 대해 말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건은 대상이나 사건을 ‘소유’하려는 태도에 도전하고 세상을 ‘향유’하려는 충동에 도전하고 의미의 문제를 종결하려는 충동에도 도전하면서, 우리를 교만이라는 정체 상태로부터 구출합니다. 『고백록』에 오도되고 오인된 욕망의 열매로 생생히 묘사된 자기-마비라는 상태로부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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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역할을 인정한다는 것은 ‘나’라는 게 면밀히 분석하여 드러낼 수 있는 단순한 역사가 아니며 자신을 투명하게 추론해 내는 주체도 아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시간 속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탐색하면서도 불가피하게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나는 정확한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Je est un autre
,

즉 "나는 타자입니다"라는 말이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 남긴 기나긴 성찰을 요약해 주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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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부정하거나 도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예수가 서 있는 곳에 서는 신앙인은 이 세상의 특정 영역에 있을 때만 그곳이 자기 집이라고 여기는, 그곳에서만 편안함을 느끼는 이가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곳을 자기 집처럼 여기는 사람, 동시에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바로 지금 여기에 헌신할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 지금 이어느 곳도 자기 집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진리 안에서살아가려 애쓰다 보면 어려움과 좌절을 감내하는 것이 삶을 끝없는 불안으로 몰고 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과 이 시대에 만족하지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야말로 우리 생각을 교정해야할 결정적인 지점입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 지금 이 순간은 우리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줄 수 없으며, 이러한 면에서 우리는 집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편안하다는 이유로 지금 이곳, 이 순간을 붙들려 해서는 안 되며, 지금 이곳, 이 순간에 제기되는 문제들에 응답하기를 꺼려서도 안 됩니다. 편안하다는 이유로 지금 이곳에 안주해서는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를 향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 P155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서, 곧 폭력으로만 권력을 수호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 속에서 ‘왕권‘이라는 말은 제한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불가피하게 이 말을 쓰더라도 그 말에 담긴 내용은 완전히 바뀌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가 말한 왕권은 진리가 몸을 입은 사건, 그사건으로의 부름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왕권이 행사하는 통치란, 사람들이 몸을 입은 진리에 이끌려 시선을두고 귀 기울이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다면 진리? 진리가 뭔데?‘) 더 할 말은 없습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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