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처형당한 그리스도의 ‘공허함’?세상의 측면에서?입니다. 성육신과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차이
를 확증합니다. 그리스도를 최고의 표지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의미와 능력의 공허함입니다. 그가 세상적으로는 ‘침묵’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발언이신 것입니다. 그는 향유될 수 없는 것이며, 그 안에서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이를 사용할 수 있을 뿐입니다(우리가 이와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있다면 말이지요)?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자기-충족적 만족감으로부터, 이미지와 기대로부터 떠나게끔 허용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반-표상’
anti-representation
곧 십자가를 통해 영원한 사물과 이 땅의 모든 표상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격이 드러났습니다. 선물에 대한 이해 내지 계시에 대한 이해는 이 간격에 대한 인식 속에 묻힙니다. 여기에 그 자체로 또한 오랜 기간 교회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통해 죄 용서 또는 재창조에 대해, 은총에 대해 말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건은 대상이나 사건을 ‘소유’하려는 태도에 도전하고 세상을 ‘향유’하려는 충동에 도전하고 의미의 문제를 종결하려는 충동에도 도전하면서, 우리를 교만이라는 정체 상태로부터 구출합니다. 『고백록』에 오도되고 오인된 욕망의 열매로 생생히 묘사된 자기-마비라는 상태로부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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