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 현대인의 뒤틀린 결혼의 실타래를 풀다
팀 켈러 & 캐시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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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딱 맞는 짝 같은 것은 애당초 없다.”


지나치게 로맨틱하거나 이상적인 결혼관을 가졌다면, 인생에 미치는 죄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반면 너무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라면 결혼의 거룩한 기원을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두 가지가 한꺼번에 뒤섞여 나타난다면 뒤틀린 시작 탓에 곱절의 부담을 지고 있는 꼴이다. 그러나 문제는 결혼 제도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휴전 상태로 아슬아슬하게 지내는 결혼 생활을 피할 방도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이기심에 있음을 인정하고 배우자보다 자신의 상태를 더 심각하게 여기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길뿐이다.”


뜨거운 열정은 결혼을 약속하게 했지만 잔잔한 애정은 세월이 갈수록 그 약속이 더 풍성하고 깊어지도록 해준다.”


사랑을 정의할 때...애틋한 감정에 비중을 두면, 사랑하는 관계를 든든히 지키고 성장시키는 동력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반면에 느낌보다 행동 쪽에 방점을 찍으면 외려 감정이 솟아나고 더 깊어지게 된다....삶 전체에 생기를 찾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서로의 문제점이 눈에 들어올 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아니

면 힘을 모아 해결하려는 소망을 가지게 되는가?”


결국 복음은 그리스도인들끼리 견고하게 묶어 주며 교회를 궁극적인 가정이자 동족으로 삼게 한다.”


“C. S. 루이스는 결혼 관계를 벗어난 성관계에 대해서 삼키고 소화할 뜻이 없이 음식의 맛만 보는 행위에 빗댔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딱 들어맞는 비유다.”


성관계의 주목적이 즐거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주는 데 있다면, 신체적으로 성적인 욕구가 적은 쪽은 상대방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선물을 기꺼이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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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목사님에 대한 명성이야 진작 듣고 있었지만, 지난번에 나왔던 일과 영성이 처음으로 내가 접했던 그의 책이었다. 팀 켈러는 평범한 주제이면서, 또한 너무나도 우리의 삶과 밀착되어 있기에 중요한 주제였던 에 대하여 무릎을 칠만한 통찰을 주었고, ‘을 통하여 주님을 섬기는 비전을 뜨겁게 전했다. 이 책 역시 우리의 인생 중에 만큼이나 중요한 주제이고, 뗄 수 없는 주제인 결혼에 대해서 다룬다. 때문에, 이 주제를 다룬 수많은 책들이 언급한 것들을 반복하게 쉽게 지루해 질 수 있었지만, 그는 이 번 책에서도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한 기독교적 통찰을 제시할 뿐 아니라 결혼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뜨겁게 전달했다.

 


특별히 결혼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관점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상대방을 통해 나의 유익을 채우려하는지를 붙들고 늘어진다. 저자는 이어서 죄로 인하여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의 속성을 다루는 것에서 이러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를 위하여 구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도록 이끈다. 이 부분에서 그의 탁월함이 나오는데, 현실적인 결혼관이 얼마나 우리를 망가지게 하고, 복음이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회복시켜주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한다는 것이다.

 


서른 중반이라는 나이를 지나고 있고, 결혼 6년 차라는 시기를 보내면서 결혼생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 생활도 그렇고, 주변에 있는 많은 부부들을 보면서 부부가 서로에게 헌신하지 않고 잠시라도 자신만을 위하려 한다면 얼마든지 틈이 생길 수 있고, 그 틈이 순식간에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점점 절감하고 있다. 상대방을 먼저 위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하지만 그것을 살면서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다. 나와 내 아내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은혜가 절실하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은혜가 우리에게 임했을 때, 우리 부부는 각자의 유익을 누리기보다는 상대방의 기분을 맞혀주거나 기쁨을 주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노력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 중에 사랑의 감정은 커지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더욱 힘차게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점점 배워가고 있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한 죄인들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바로 이점을 강력하게 어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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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 기독교 생사학의 의미와 과제 기독교 인문 시리즈 6
곽혜원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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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새물결플러스. 곽혜원 지음.

 


언제쯤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이가 태어날 때면, 태어날 아이의 아빠도 분만실에 들어가서 분만을 돕는다.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여러 유익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나도 역시 두 아이가 이 세상으로 나올 때, 가족분만실에 들어가 아내의 손을 붙잡아 주었고, 격려의 말들을 해주며 그 시간을 아내와 함께 했었다. 첫째가 세상에 나왔을 때, 아내는 무려 만 하루를 넘기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엄청난 산통 이후에 우리 첫째가 세상을 향하여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 바로 경이로움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는 지인의 죽음을 경험할 때면, 이러한 경이감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크게 슬퍼할 수도 없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채 갑자기떠나보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의학이 그 어느 시대보다 발달한 시대이지만, 저자가 말한 것처럼 역사상 최초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오히려 우리는 점점 죽음의 순간을 마치 빠르게, 정신없이 해치워야 하는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는 한국에 존재해 왔던 여러 종교들의 생사관을 살피면서 그 이유를 제시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있는 현세 중심적인 사고들이 여전히 우리가 죽음을 터부시하는데 큰 이유가 되었다. 기독교인들이라고 이러한 현실에서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저자는 오히려 믿음’, ‘기적이란 말을 하지만,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현세 중심적인 사고맹목적인 신앙을 더하여 안 그래도 최악인 한국 사람들의 죽음의 질을 더욱 낮추는데 일조하고 있을 뿐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죽음에 대한 준비로서 죽음학, 혹은 생사학에 대해서 가르쳐야 할 것을 주장한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이슈로 논란이 되고 있는 뇌사 판정, 안락사와 존엄사, 그리고 완화치료에 대한 논의들을 폭넓게 제시한다. 워낙 다양한 주제들이고, 전문적인 분야이기에, 해당 논의들을 심도 있게 이어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호스피스와 완화치료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말기 암 환자들이나,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 지나치게 방어적인 의료진들의 대처에 대해서는 날 선 비판을 가한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다양하고도 중요한 여러 의견들을 말하지만, 그중에서도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한다는 것, 환자와 함께 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 말기 암환자들에게 적극적인 항암 치료를 자제하고, 진통제 투여에 좀 더 관대해 질 것을 주문한 부분은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부분으로 생각한다.


 

이 외에도 고독사, 무연사, 급증하는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방안으로 처음 언급했던 죽음에 대한 교육이 차근차근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고, 동시에 삶의 질이 지나치게 양극화 되어 가고 있는 상황을 타개해야 이 문제들이 근본적인 해결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해서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준다. 특히나 죽음을 터부시하는 한국적 정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준비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크게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동시에 죽음이라는 중요하면서도 거대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내용이 산만한 면이 없지 않고,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깊은 논의를 살펴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쉽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대부분의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6인실 병실에서 혹은 중환자실에서 고통스럽게 맞이해야 하는 현실에 사는 우리에게, 적어도 지금보다는 우리와 우리 가족들이 맞이해야 하는 죽움의 순간을 훨씬 경이롭게적어도 존엄한순간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도전하기에, 우리에게 유익하고, 적실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목회라는 현장에서 성도들의 죽음을 준비해야 하고, 함께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언제부턴가 인류는 젊음에 대한 집착에 깊이 빠져 있다.....더욱이 인간은 인생에 정해진 한계점이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모든 즐거움과 성취감과 함께 고통과 좌절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인생의 틀이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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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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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 조세희 지음. 이성과 힘.

수년 전, 이 책이 100만권이 팔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무려 30년에 걸쳐서 그만큼 팔렸다는 사실이었다. 그 시간동안 꾸준히 팔렸다는 얘기인데 ‘도대체 어떤 책일까...’하는 궁금증이 밀려왔다. 그래서 나름 학교 다닐 때 역사, 철학 좀 읽은 선배에게 이 책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이 책 어떤 책이냐고.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도 그 책을 안 읽었어?” 고민할 이유가 없이 바로 그 책을 샀다.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신념에 책장을 넘기기에 바빴고, 기억에 정말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정말 읽기만 했다. 그게 벌써 5년도 넘은 일이다.

최근 21세기 자본, 솔로 계급의 경제학을 읽었고, 불평등의 대가를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책장에 있는 이 책이 눈에 다시 들어왔다. 그 책들 모두 가난한 사람들, 그래서 불평등을 당하면서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 우리 중에 있다는 사실들을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여주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그러다보니 그 책들 모두 비장한 면이 좀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설교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책도 그렇다. 세상의 부조리들을 적나라케 보여주고, 이런 세상을 만드는 기득권층을 고발하고, 침묵하는 다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문학작품, 소설이다. 그러다보니 위의 책들처럼 딱딱하게 말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난장이’, ‘꼽추’, ‘앉은뱅이’로 비유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곳에서 당하는 불평등, 소외, 폭력 등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물론 시점이 자주 바뀌고, 시제가 어느 순간 바뀌어 있는 등,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복잡하게 책을 이끌어 나가기는 하지만, 이러한 기법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당시, 1970년대가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괴로운 시대였는지를 분간하기에는 전혀 방해물이 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겪은 아픔들이 모양을 바꾸었을 뿐,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모두가 부조리하다. 하지만 사람은 분명 소중하다.....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부조리하다. 문학이 하는 역할 중에 세상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것이라 그러하겠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세상, 그리고 사람들은 특히 그러하다. 심지어 가난해서 약자인 사람들마저도 부자들과 관리자들이 자신들을 다루는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납치를 해서 린치를 가하고, 칼을 꺼내어 휘두르고, 고문(하는 척)하고, 결국 끝내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물론 작가는 난장이, 꼽추, 앉은뱅이로 비유되는 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구구절절 보여준다.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인 ‘뫼비우스의 띠’에 보면 수학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굴뚝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마치 가난한 자들의 복수를 인정해주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세상은 굴뚝처럼 때를 묻힐 수밖에 없는 곳이다. 더럽혀지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얘기다. 돈이 많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고 온갖 꾀를 낸다. 그런데 그 꾀라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그들의 ‘근육’을 최대한 값싸게 이용하여 수많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고, 그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작가는 등장인물을 통하여 이렇게 말한다. ‘모두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은강에서는 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는 연작 소설 내내 갈등의 구조를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 혹은 경영자들과 근로자들의 구도로 끌고 가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라고 모두가 악하고, 가난하다고 해서 의롭지 않다. 책의 시종일관 우리 삶의 현장이 너무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내부와 외부를 경계지을 수 없는 입체, 즉 뫼비우스의 입체를 상상해보라....여기에는 많은 진리가 숨어있다.” - 뫼비우스의 띠

“이것이 클라인씨의 병이야. 안팎이 없는데, 닫힌 공간이 있어....보이는 것도 단순하고 설명도 간단한데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 클라인씨의 병

이러한 인식은 결국 연작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 절정을 드러낸다. 난장이의 큰 아들은 자신과 가족들이 일하는 공장이 속한 그룹의 사장을 찾아가 죽이려고 한다. 세상에 그들이 당한 부당한 대우, 회사가 저지른 만행들을 폭로하고, 복수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소 황당하다. 사장을 죽이려 했지만, 사장이 아니라 사장의 형이 대신 그의 칼에 살해당한다. 그리고 독자를 더욱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이 사건의 재판이 진행이 되면서 살해된 사람의 아들이 난장이의 큰 아들을 이해하고, 심지어 옹호하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다양하고, 한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복잡한 세상,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누가 악하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은 소중하다는 것이고, 그들이 꿈꾸는 사랑은 가치가 있다는 것 아닐까? 아래 구절은 짧은 구절이지만, 작가가 고민하고, 고민하고,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장이)아버지의 몸이 작았다고 생명의 양까지 작았을 리는 없다.”

가난하고, 지식도 없고, 가진 기술도 세상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소중한 존재이다. 그래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선 안 되고, 소외되어서는 안 되고, 기계 취급을 당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소설에 나타난 세상의 모습은 이렇다.

“우리 시대의 특징 그대로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난 몰랐어” 경애가 말했다.
“그게 너의 죄야.” 윤호가 말했다. “그게 모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죄야.”
.....윤호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은희 하나뿐이었다. 은희는 윤호를 원했다.....

작가는 마치 윤호를 통해 자기가 느끼는 괴로움을 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많은 사람들이 직무유기를 한다고 지적하고 싶지만, 정작 자기도 별 수 없고, 다른 사람들처럼 한 사람, 그것도 자신을 좋아하는 한 여자를 도와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괴로웠던 것 아닐까?

그러한 그의 고뇌는 작가의 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말이 아닌 ‘비언어’로 우리를 괴롭히고 모독하는 철저한 제삼 세계형 파괴자들을 ‘언어’로 상대하겠다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며칠 밤을 새우고도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못 써 절망에 빠졌던 것도 바로 나였다.”

이 책이 나온 지도 벌써 40년이 흘렀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많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는다. 공장에 있는 사람들이 외국인들로 채워졌고,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배운 사람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난.쏘.공에 등장하는 ‘난장이’들이 많고 ‘꼽추’들이 많고 ‘앉은뱅이’들이 많다. 이상하게 사람들은 돈과 권력 앞에서 소중한 ‘생명’, ‘사랑’ 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살기엔 너무나 바쁘고, 걸림돌이 많은 세상이다. “세상이 정말 발전했을까?”, “사람들이 살기에 더 좋아졌는가?” 라는 질문에 그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모르겠다. 이 질문들에 답하기엔 나도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윤호의 말처럼 몰라서 죄인이 될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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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스승 - 인물로 보는 한국 기독교교육사상
김도일 외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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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스승 - 인물로 보는 한국 기독교교육사상, 새물결플러스

저는 목사입니다. 당연히 교회에 관심이 많고 신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도 참 많이 했고, 신학과 관련하여 날을 세우고 논쟁도 해보았습니다.(점점 느끼는 건, 빈 수레가 요란하다능....) 그러다보니 ‘한국 교회 비판서’들을 작년에만도 몇 권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이 쓴 교회 개혁에 대한 ‘쓴 소리들’ 혹은 한 사람이 자신의 관점에 따라 비판하고 나름의 대안을 적은 책들이라든지....나름 통찰도 있고, 정말 그 분들의 말처럼 교회가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동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책들을 읽어가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항상 무언가 대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혹은 비판에 관련한 책이다 보니 마음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말 새물결플러스에서 나온 이 책, ‘참스승’을 읽었습니다. 목차들을 보는 순간....김용기, 김교신, 안창호, 이승훈, 윤동주....막상 이름들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분들의 약력조차 모르는 분들, 주영하, 전영창, 권정생, 박대선...등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것 같은 분들도 절반 쯤 되었습니다. 정말 우리의 귀한 스승들에 대해 몰라도 너무 무식할 정도로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서 읽고 싶다는 생각에 사역으로 바쁜 와중에서 2, 30분씩 짬을 내어 하루에 한 명씩. 읽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6. 25 전쟁, 6-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시기 등, 우리 민족 어려운 시기를 살면서 ‘사람을 키우고자’했던 위대한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목사로 살아가는 저에게 ‘참스승’들이 멀지 않은 시기에,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계셨다는 사실 만으로도 희망이 생겼습니다.

물론 300페이지 밖에 안 되는 책이다 보니 이 책만으론 13명의 인물들을 자세히 알긴 무리가 있었습니다. 음식의 ‘간을 보는’ 정도라 할까요? 향수의 ‘샘플’을 손바닥에 뿌려본 정도라 할까요? 그 짧은 지면에서 이분들의 사상, 혹은 ‘공’들과 ‘과’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엔, 이 책, ‘참스승’은 수많은 교회 비판서들, 그리고 외국의 신앙 위인들, 혹은 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들보다는 훨씬 나에게 직접적이고, 도움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무엇인가 날을 세워 비판하는 것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지만, 기독교적 가치를 삶으로 살아낸 위대한 스승들의 모습만큼 작금의 교회들과 목회자들에게 구체적이고 적실한 대안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었던 큰 소득은 이분들의 삶을 샘플처럼 보았으니, ‘참스승’들의 더욱 구체적인 삶, 그리고 사상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단지 ‘무교회주의자-김교신’ ‘서시-윤동주’ 이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만, 무교회주의를 외쳤던 김교신이 말하는 무교회주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20대에 요절한 윤동주가 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들이 무엇인지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당장 서점으로 가서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을 사려고 생각 중입니다.^^

많은 젊은 목회자들, 특히 한국에도 이렇게 귀한 선생님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저처럼 거의 모르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고,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진 분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아마도 제가 경험한 즐거움, 감동들을 동일하게 경험할 것입니다.^^ 읽으며 감동적이었던 부분을 몇 개만 골라서 올려봅니다.

남강 이승훈
“모든 학생이 똥을 누기는 누되 하나도 그것을 치우려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남강 선생이 손수 도끼를 들고 그것을 까냈다고 한다. 때론 그것이 튀어 입에 들어오는 일이 있어 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는 조금도 그것을 마다 아니하고 도리어 즐거운 마음으로 했노라는 이야기를 했다.”

도산 안창호
“국민이 도덕 있는 국민이 되고 지식 있는 국민이 되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남에게 멸시를 안 받도록 하는 것....그 길은 무엇이냐? 우선 나 자신이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덕 있고, 지 있고, 애국심 있는 사람이 되면 우리나라는 그만한 힘을 더 하는 것이다.”

일가 김용기
“그러나 역사를 만든 실제 일꾼은 역사에는 흔적도 없는 백성과 졸병들인 것이...나는 내가 평범한 농사꾼임을 후회하거나 큰 인물이 못 되고 작은 인물이 된 것을 후회한 일은 단 한 번도 없다...그러나 그 작은 일도 오랜 시간을 두고 쌓아 올리면 그것이 큰일이 된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침이다...”

조아라 
“청소년의 비행이 어찌 청소년만의 책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사회가 몽땅 병들어 있으니 이를 어이할거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는 것을....”

전영찬
“나는 그들의 목자가 되기 위해서 오랜 준비를 해왔는데, 이제 막상 위험에 빠진 양을 모른 체하고 떠나버리면 목자는커녕 사악한 사기꾼이 아닌가?”

박대선
“박대선은 스스로 교사, 목사로서 실력을 갖춘 후에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원칙을 아주 엄격하게 자신이 책임 맡은 학교에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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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 증오와 배제의 논리를 넘어 포용과 화합의 마당으로 한반도평화연구원총서 10
전우택 외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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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고 통일 대박론이란 얘기까지 나오면서 한참 통일이란 이야기가 나오다 금방 잠잠해 진 것 같습니다. 비슷한 맥락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대한 저의 관심도 비슷하게 올라갔다가, 금방 식어버린 듯 합니다.

그러던 중, 지난 달 새물결 플러스에서 나온 '통일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통일 분야의 전문가들이라 할 만한 분들이 한국 전쟁과 분단 역사, 그리고 통일에 대한 현재 국민들의 관점등에 대하여 잘 정리하여 쓰신 짧은 글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루하지 않고, 쉽게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글들이 있었지만 대강 인상적인 부분을 정리하자면 '통일에 대한 관점이 경제에서 인권으로', '통일 우선보다 평화 우선으로', '잠간의 손익 계산보다 후대의 장기적인 관점으로', '간절하고 끈질긴 기도의 필요성'... 이 정도 였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좀 더 전문적이고,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으나, 이곳에 다 옮기진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통찰들과 이에 따른 권고들을 읽는데, 마음에 전혀 감흥이 생겨나질 않았습니다. 아마도 저자들의 글이 무디어서라기 보다는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이 전쟁이나, 분단에 따른 아픔과 정말 머얼리서 살아 왔던 나였기에 나도 모르게 '통일이라는 문제는 나와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반응이 나온 것이 아닌 가 싶습니다.

참 기가막힌 타이밍인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책을 읽던 중,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는 어떤 탈북민 부부의 간증 및 바이올린, 피아노 연주를 열었습니다. 워낙 연주에 있어서 탁월한 실력가들이었기에 눈물 흘리시며 북한에 남겨둔 가족들과 북한의 형편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가 묻혀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교인들의 반응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지구상 거의 유일한 분단 국가에 살고 있고, 언제 전쟁이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처해 있고, 또한 수만의 탈북민들이 우리 주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나 많은 성도들이 통일에 대한 인식이나, 그것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솔직히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에 소명을 가지고 개인적, 혹은 단체를 통해서 통일 관련한 여러 일들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제 주변에도 몇몇이 있지만, 사회는 물론이거니와, 교회만 보더라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제일 큰 문제는 저를 포함한 많은 성도들이 '물질'에 사로잡혀 너무 오랜 시간 그 편안함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생각할 때, 손해를 감당하고서라도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서 성도들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참 부인하기 힘든 상황이,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분명 우리 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와 피를 나눈 이 천만이 넘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하늘을 향해 신음하고 있는데, 그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들어도 애써 넘기려는 상황이 바로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참 가슴아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요즘 함께 읽고 있는 본회퍼 전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교회는 오늘날 세상에 가장 시급한 문제들에 대하여 가장 구체적인 답변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은 늘 오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비추어 지금 우리 교회들에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통일은 아니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통일은 정말 나와 우리 모두에게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문제란 걸 새삼 확인해 봅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니, 이러한 인식들을 어떻게 내 삶과 성도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 지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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