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 조세희 지음. 이성과 힘.

수년 전, 이 책이 100만권이 팔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무려 30년에 걸쳐서 그만큼 팔렸다는 사실이었다. 그 시간동안 꾸준히 팔렸다는 얘기인데 ‘도대체 어떤 책일까...’하는 궁금증이 밀려왔다. 그래서 나름 학교 다닐 때 역사, 철학 좀 읽은 선배에게 이 책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이 책 어떤 책이냐고.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도 그 책을 안 읽었어?” 고민할 이유가 없이 바로 그 책을 샀다.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신념에 책장을 넘기기에 바빴고, 기억에 정말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정말 읽기만 했다. 그게 벌써 5년도 넘은 일이다.

최근 21세기 자본, 솔로 계급의 경제학을 읽었고, 불평등의 대가를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책장에 있는 이 책이 눈에 다시 들어왔다. 그 책들 모두 가난한 사람들, 그래서 불평등을 당하면서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 우리 중에 있다는 사실들을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여주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그러다보니 그 책들 모두 비장한 면이 좀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설교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책도 그렇다. 세상의 부조리들을 적나라케 보여주고, 이런 세상을 만드는 기득권층을 고발하고, 침묵하는 다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문학작품, 소설이다. 그러다보니 위의 책들처럼 딱딱하게 말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난장이’, ‘꼽추’, ‘앉은뱅이’로 비유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곳에서 당하는 불평등, 소외, 폭력 등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물론 시점이 자주 바뀌고, 시제가 어느 순간 바뀌어 있는 등,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복잡하게 책을 이끌어 나가기는 하지만, 이러한 기법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당시, 1970년대가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괴로운 시대였는지를 분간하기에는 전혀 방해물이 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겪은 아픔들이 모양을 바꾸었을 뿐,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모두가 부조리하다. 하지만 사람은 분명 소중하다.....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부조리하다. 문학이 하는 역할 중에 세상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것이라 그러하겠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세상, 그리고 사람들은 특히 그러하다. 심지어 가난해서 약자인 사람들마저도 부자들과 관리자들이 자신들을 다루는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납치를 해서 린치를 가하고, 칼을 꺼내어 휘두르고, 고문(하는 척)하고, 결국 끝내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물론 작가는 난장이, 꼽추, 앉은뱅이로 비유되는 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구구절절 보여준다.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인 ‘뫼비우스의 띠’에 보면 수학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굴뚝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마치 가난한 자들의 복수를 인정해주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세상은 굴뚝처럼 때를 묻힐 수밖에 없는 곳이다. 더럽혀지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얘기다. 돈이 많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려고 온갖 꾀를 낸다. 그런데 그 꾀라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그들의 ‘근육’을 최대한 값싸게 이용하여 수많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고, 그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작가는 등장인물을 통하여 이렇게 말한다. ‘모두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은강에서는 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는 연작 소설 내내 갈등의 구조를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 혹은 경영자들과 근로자들의 구도로 끌고 가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라고 모두가 악하고, 가난하다고 해서 의롭지 않다. 책의 시종일관 우리 삶의 현장이 너무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내부와 외부를 경계지을 수 없는 입체, 즉 뫼비우스의 입체를 상상해보라....여기에는 많은 진리가 숨어있다.” - 뫼비우스의 띠

“이것이 클라인씨의 병이야. 안팎이 없는데, 닫힌 공간이 있어....보이는 것도 단순하고 설명도 간단한데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 클라인씨의 병

이러한 인식은 결국 연작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 절정을 드러낸다. 난장이의 큰 아들은 자신과 가족들이 일하는 공장이 속한 그룹의 사장을 찾아가 죽이려고 한다. 세상에 그들이 당한 부당한 대우, 회사가 저지른 만행들을 폭로하고, 복수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소 황당하다. 사장을 죽이려 했지만, 사장이 아니라 사장의 형이 대신 그의 칼에 살해당한다. 그리고 독자를 더욱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이 사건의 재판이 진행이 되면서 살해된 사람의 아들이 난장이의 큰 아들을 이해하고, 심지어 옹호하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다양하고, 한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복잡한 세상,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누가 악하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은 소중하다는 것이고, 그들이 꿈꾸는 사랑은 가치가 있다는 것 아닐까? 아래 구절은 짧은 구절이지만, 작가가 고민하고, 고민하고,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장이)아버지의 몸이 작았다고 생명의 양까지 작았을 리는 없다.”

가난하고, 지식도 없고, 가진 기술도 세상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소중한 존재이다. 그래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선 안 되고, 소외되어서는 안 되고, 기계 취급을 당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소설에 나타난 세상의 모습은 이렇다.

“우리 시대의 특징 그대로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난 몰랐어” 경애가 말했다.
“그게 너의 죄야.” 윤호가 말했다. “그게 모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죄야.”
.....윤호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은희 하나뿐이었다. 은희는 윤호를 원했다.....

작가는 마치 윤호를 통해 자기가 느끼는 괴로움을 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많은 사람들이 직무유기를 한다고 지적하고 싶지만, 정작 자기도 별 수 없고, 다른 사람들처럼 한 사람, 그것도 자신을 좋아하는 한 여자를 도와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괴로웠던 것 아닐까?

그러한 그의 고뇌는 작가의 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말이 아닌 ‘비언어’로 우리를 괴롭히고 모독하는 철저한 제삼 세계형 파괴자들을 ‘언어’로 상대하겠다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며칠 밤을 새우고도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못 써 절망에 빠졌던 것도 바로 나였다.”

이 책이 나온 지도 벌써 40년이 흘렀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많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는다. 공장에 있는 사람들이 외국인들로 채워졌고,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배운 사람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난.쏘.공에 등장하는 ‘난장이’들이 많고 ‘꼽추’들이 많고 ‘앉은뱅이’들이 많다. 이상하게 사람들은 돈과 권력 앞에서 소중한 ‘생명’, ‘사랑’ 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살기엔 너무나 바쁘고, 걸림돌이 많은 세상이다. “세상이 정말 발전했을까?”, “사람들이 살기에 더 좋아졌는가?” 라는 질문에 그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모르겠다. 이 질문들에 답하기엔 나도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윤호의 말처럼 몰라서 죄인이 될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