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이 말씀의뜻은 직선의 대열을 그리며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곡선의 대열, 또는 원형의 대열을 생각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기 위해 달리는 대열이 아니라, 앞서고 뒤서는 개념 없이 함께 춤을 추는 대열을 생각해야 합니다. 춤추는 대열에서는 첫째와 꼴찌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함께 춤추는 대열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앞서고 뒤서는 관계에만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대열과는 전혀 다른 대열로서의 삶의 질서를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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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진실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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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두란노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직접들은 것 중에는 “내가 예수는 좋아도 교회는 안 좋아”가 제일 많았다. 납득이 가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 말고 진지하게 신앙을 추구하지만, 기독교의 교리들을 받아들일 수 없어 고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여기에는 확실하진 않아도 도움이 될만한 답들이 이미 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나 논리도 빈약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기독교의 역사는 기독교 변증의 역사라고 할 만큼 교회 역사 처음부터 논쟁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치열한 논리로, 어떤 이들은 기절할 만큼의 선행으로 예수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 책은 탁월한 지성과 더불어 오랜 시간 성공한 목회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팀 켈러의 기독교 변증서다. 30년 넘는 지적인 훈련과 목회 경험의 결실이 <센터처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 <하나님을 말하다> 역시 그의 깊은 애정이 담긴 책이라 할 만하다. 그가 좋아하는 루이스,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이나 논리가 거의 그대로 녹아 있고, 앨빈 플란팅가와 같은 기독교 철학자들의 논의를 많이 인용한다. 이러한 대가들의 글을 단순 인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목회 경험, 무엇보다 진리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과 함께 녹아 괜찮은 책이 나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여전히 마음에 염려가 생기는 건 이러한 변증도 삶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제아무리 화려한 언변과 탄탄한 논리가 있다 하더라도 별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말씀 자체에 힘이 있다는 것을 믿지만, 말씀을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이 아닌 곳에 감동이 얼마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전광훈 같은 사람들이 판을 치고, 그를 대놓고지지 하거나 심정적으로 몰래 지지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한국 기독교계에서 과연 변증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싶다. 책을 잘 읽었지만 읽자마자 답답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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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말하다 - 비극으로, 희극으로, 동화로
프레드릭 비크너 지음, 오현미 옮김 / 비아토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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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말하다>. 프레드릭 비크너. 오현미 옮김. 비아토르

“인간은 죄인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설교자가 전해야 하는 핵심들이다. 저자는 이 명제들을 비극으로서의 복음, 희극으로서의 복음, 동화로서의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한다. 내용도 저자의 글솜씨를 한껏 발휘하여 자칫 뻔할 수 있는 내용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작년 <주목할만한 일상>을 처음 읽어보면서 시리즈로 나오는 책들을 다 읽어보고 싶어서 몇 권을 더 샀는데 이제야 두 번째 책을 읽었네.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목회자들에게는 소설가의 시각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글이 딱 그와 같은 모범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말처럼 설교자들은 지극히 특별한 관점과 묘사를 통해 평범한 일상을 성도들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루이스의 글처럼 한 문장, 한 문장 그대로 베끼고 싶은 문장들이 많다. 혼자 보기 아까워 공유한다. 이 책 아직 못보신 분들 있다면 적극 추천합니다.

설교자는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이런 저런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옷 한 꺼풀만 벗기면 세상의 비극적 삶은 차치하고 자기 삶의 무게만으로도 수고하며 힘들어하는 가련한 맨발의 두 발 달린 짐승이다. 60p

태초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그러하다. 흑암과 희미함이 깊음 위에, 우리 자신의 얼굴 위에 있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81p

일어날 필요도 없고 아무리 해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은혜의 희극성이다. 99p

제일장로교회에서 있을 포트럭 만찬을 위해 음식 한 가지씩은 준비하지만,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준비하지 않는다. 117p

설교자는 터무니없는 이 만남, 원래 그대로 고상하고 자발적이며 유쾌한 이 만남의 복음을 설교해야 한다. 119p

주인공이 탐험 길에서 만나는 생물들에게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주인공 자신이 어느 순간에든 야수나 돌이나 왕으로 변한다든가 주인공의 마음이 얼음으로 변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들은 변신에 관한 이야기로 마지막에는 모든 생물이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131p

복음이라는 동화의 전체 요점은 당연히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왕이라는 사실이다. 147p

내가 생각하기에 그 숨결, 그 가슴 뜀, 그 가슴 벅참이야말로 진리에 대해 우리가 지니는 가장 심원한 직관이다. 1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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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날 필요도 없고 아무리 해도 일어날 수 없는일이라는 것이 은혜의 희극성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건 생각할 수 없고, 그 일을 삼켜 버릴 만한 어둠이 아슬아슬비껴가는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 P99

제일장로교회에서 있을 포트럭 만찬을 위해 음식 한 가지씩은준비하지만,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준비하지 않는다. 한밤중에 - P117

죄와 은혜, 부재와 임재,
비극과 희극, 이것들은 세상을 양분하며, 이것들이 정면으로만나는 곳에 복음이 등장한다. 설교자는 터무니없는 이 만남,
원래 그대로 고상하고 자발적이며 유쾌한 이 만남의 복음을설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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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자아를 그리스도께 넘겨 드리는 건 불가능하다시피 한 일이다.
하지만 다들 그 대신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일보다는 훨씬 쉽다. 우리가 애쓰고 있는 일은 스스로 자신‘이라고 부르는 데(돈이나 쾌락, 또는 야망을 중심으로 한 개인적인 행복) 계속 머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고 순결하며 겸손하게 행하기를 소망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게 그리스도가 우리더러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일이다. 내가 풀밭이면 아무리 잘라 내고 또 잘라 내도 여전히 풀이 자랄뿐 밀이 나지는 않는다. 밀을 원하면땅을 갈아엎고 씨앗을 다시뿌려야 한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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