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언니 - 권정생 소년소설, 개정판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 창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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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언니. 나 대신 아파달라는 작가의 권면.

 

 

줄거리 - 해방 전에 태어나 남과 북이 갈라져서 싸움이 점점 격화되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전쟁과 그 이후에 있었던 극심한 보릿고개를 살아낸 몽실 언니의 성장 이야기다. 1984년에 완성 되어서 30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아 온 국민 소설, 소년 소설, 성장기 소설이다. 몽실이는 일곱 살의 나이에 가난하고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피해 도망가는 어머니를 따라 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이별을 경험한다. 너무나 어린 나이여서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가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어리둥절했던 몽실이, 새로운 아버지에게 쉼 없이 구박받고, 구타당한다. 결국 다리가 부러지고, 절름발이 되고야 말았다. 이후에도 친아버지가 나타나 생모에게서 떼어내고 데리고 온다. 몽실은 친 아버지와 다시 그와 살게 된 것을 나름 기뻐했지만, 지독한 가난과 아버지의 폭행으로 여전히 힘든 삶을 이어간다. 그러다 몸이 약한 새어머니를 맞았지만 그녀는 난리 통에 몽실이의 여동생 난남이를 낳고 죽는다. 어머니와 생이별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몽실이가, 겨우 정들어 어머니가 되고 있던 북촌댁과 또 다시 이별해야 했다. 몽실이가 겪은 고난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친어머니를 잃고, 친아버지와도 전쟁 통에 다시 헤어진다. 몇 년 후, 다시 만나지만 아버지는 전쟁에서 입은 상처와 질병으로 병원 앞에서 열흘을 넘게 기다리다 비참하게 객사한다. 이 모든 일들이 몽실 언니가 14, 15세가 되기까지 겪은 일들이다. 7-80평생을 살면서 겨우(?) 겪을 수 있는 모든 모진풍파를 짧은 시간에 겪으면서 몽실이는 모두의 언니가 되어간다. 성장하는 가운데 몽실 언니는 인생사가 쉽지 않고, 다 나름의 고통과 이유를 갖고 산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간다.

  

짧은 평 어느 문학 작품이 그러하듯, 몽실 언니는 작가와 시대를 보여준다. 20대의 젊은 시절부터 결핵으로 고생하며 원고지 한 페이지 쓸 때마다 피를 토해야 할 만큼 몸이 아팠던 분이 권정생 선생님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 내 대신 아파해달라고 말하셨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정말 대신 아파달라는 의미보다는 이 시대에 또 다른 약자들을 품고 함께 아파해달라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평생을 버림받고, 절름발이로 살아도 자신보다 연약한 동생들과 이웃들을 돌보려 한 몽실이는 평생을 아픈 몸으로 살아야 했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사람을 사랑하려 했던 작가의 삶과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몽실 언니가 겪은 수많은 일들, 특히 고통의 순간들은 몽실 언니 뿐 아니라 우리의 부모님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겪은 우리의 실제 역사이기도 하다. 소설에 보면 전쟁으로 패가 나뉘어 죽어라 싸우는 사람들이 나오고, 너무나 배고파서 동냥하는 거지들도 참 많고, 그렇게 너무 없어서 야박해진 사람들도 많았고, 동시에 그러한 환경에서도 넉넉하게 베풀며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무수한 아픔들도, 그 사이에 함께 있던 삶의 행복도 몽실 언니는 담고 있다. 참 감동적인 것은 몽실 언니가 이렇게 비참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에 대해서 비관적이 되거나, 사람을 배척하는 아이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싸우는 군인들, 동냥을 하는 거지들, 몸을 파는 화냥년들까지 이해하고 품어주는 사람으로 자라가는 모습이었다. 많은 구절들이 있지만, 아래의 구절들이 그런 몽실이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렇지 않아요 빨갱이라도 아버지와 아들은 원수가 될 수 없어요. 나도 아버지가 빨갱이가 되어 집을 나갔다면 역시 떡 해드리고 닭을 잡아 드릴 거여요

 

엄마 원망 안해. 사람은 각자가 자기의 인생이 있다고 했어

 

아버지, 아니어요. 아버지도 엄마도 모두 나쁘지 않아요. 나쁜 건 따로 있어요.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쁘게 만들고 있어요. 죄 없는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건 그 누구 때문이어요...”

 

작가는 이런 몽실이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몽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착한 것과 나쁜 것을 좀 다르게 이야기합니다...몽실은 아주 조그만 불행도, 그 뒤에 아주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그만 이야기이지만, 우리 모두 몽실 언니한테서 그 조그마한 것이라도 배웠으면 합니다.”

 

작가의 말을 따라서 다시 한 번 겸손한 마음으로 몽실이 한테서 좀 배워야겠다...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금새 몽실이는 내 자녀 같았고, 몽실이가 슬플 때마다 내 아이가 아픈 것 같았고, 심지어 내가 아픈 것 같았다. .........어떡하지...하면서 나도 모르게 많은 순간 눈물이 맺혔다. 비록 어리고, 장애를 가졌지만 쉬지 않고 닥치는 시련에 무릎 꿇지 않는 몽실이 때문에, 그러면서 여러 동생들을 키워내고 동시에 다른 이웃들까지도 이해하고 품으려는 몽실이의 모습 때문에 읽는 내내 슬펐고, 미안했고, 고마웠다. 그중에서도 검둥이 아기부분을 우연치 않게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 주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어서 다 읽을 수 없었다.

 

에잇 더러운 것!” 어떤 남자가 침을 뱉으며 발길로 찼다...

안 되어요!” 몽실은 저도 모르게 몸을 아기 쪽으로 가리고 섰다.

화냥년의 새끼!”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침을 뱉고 발로 찼다.

몽실은 다급하게 아기를 덥석 보듬어 안았다.

웬 계집애가, 정신 있냐?” .....

그러지 말아요. 누구라도 누구라도 배고프면 화냥년도 되고 양공주도 되는 거여요.”....

그러나 가엾은 검둥이 아기는 얼음처럼 싸늘하게 식은 채 죽어 있었다. 몽실은 바들바들 떨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몽실은 몸에 높은 열이 나면서 앓아누웠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이 장면을 읽는데 몽실에게서 마치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았다. 사랑은 놀랍구나....

 

평생 아프기만 하고, 고난당하며 살 것 같은 몽실이었지만, 놀랍게도 마지막 장면에는 몽실이로 인하여 아름다운 가정이 꾸려지고, 몽실이 키웠던 동생들이 몽실 언니에게 고마워 하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 있다. 아마도 아픈 인생, 가난한 인생을 살았지만 사랑의 힘을 믿었던 작가의 경험과 소망이 담긴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은 전쟁이란 것을 상상하기도 힘든 그런 시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때와는 또 다른 고난을 끼고 살아가고 있다. 감히 말하자면 이 글에는 그렇게 아픔을 끼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잠시라도 여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한 걸음 나아가 더 말하자면, 이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너도 몽실이를 읽어봐...라고 말하기보다, 몽실이가 되기 위하여 애를 쓰게 된다면 작가가 마지막 챕터에 제시한 희망을 맛보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추천하지 않으련다. 먼저 내가 또 다른 몽실 언니가 되어 보기 위해 힘써 봐야겠다. 작가가 믿는 사랑의 힘을 경험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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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09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으니 몽실언니 다시 읽고 싶네요. 저도 읽을 때 무척 감동적으로 읽은 소설입니다.
명작의 모든 조건을 두루둘 갖춘 소설이라고나 할까요.

좋음 2016-08-09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고, 또 읽어도 가치있는 책 같아요. 읽고나니 참 감사하더라고요..
 
2030년 학력 붕괴 시대의 내 아이가 살아갈 힘 - 인생을 개척하는 강인함을 기르기 위한 인간주의 교육의 제시
텐게시로 지음, 장현주 옮김 / 오리진하우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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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힘

 

이 책의 저자 텐게시로는 소니에서 40년간 근무하며 첨단 기술을 접목한 전자 기기, 로봇 개발을 담당했고, 이후 기업 내의 교육이나 네트워크 관련하여 기업 경영자들에게 강연을 해오고 있다. 저자는 오랜 시간 일하면서 그저 스펙을 위한 고학력을 쌓은 직원들이 실제 업무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무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근무하던 회사 뿐 아니라, 많은 현대인들이 더 많이 배우지만, 점점 살아갈 힘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들은 늘어만 가고, 은둔형 외톨이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연간 3만 명이 넘는 자살자가 나오지만, 그 무엇도 이런 상황을 바꾸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가, 그동안 실행되어 왔던 주는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전부터 몇몇 사람들(루소, 몬테소리, 프뢰벨 등..)에게 주목을 받았지만 크게 알려지지 않고, 적용되지 못한 끌어내는 교육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힘을 키워줄 수 있는 끌어내는 교육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총 21개의 챕터로 나누어 크게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무조건적인 수용

전신을 사용한 운동

몰입을 체험하게 하는 것

대 자연과 마주하게 하는 것

 

무조건적인 수용.

제목만 보아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어른들의 생각에 아이들을 맞추기 위하여 훈육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실수나 표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나 교사가 아이를 시종일관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인내하면서 아이가 왜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

 

전신을 사용한 운동.

조기 영어교육,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을 위해서 1, 2세부터의 조기 교육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한다. 온 나라가 경쟁체제 안에 갇혀 있는 상황 중에 자녀들을 책상에서 떨어뜨려 놓는 것은 정신 나간 사람이나 하는 짓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들이 현재의 아이들을 망쳐놓은 주범으로 보고, ‘공부로는 건전한 지능이 발달되지 않는다.’, ‘가르치면 발달이 멈춘다!’와 같이 도발적인 문구를 사용하며 기존의 주는(주입식)교육을 매섭게 비판한다. 대신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전신을 움직여 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몰입.

무아지경으로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몰입의 상태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은 강요가 없는 상태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간섭받지 않고 실컷 놀 수만 있다면 생각지 못했던 학습 의욕들이 높아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지 않을까 싶다. 쉬지 않고 주입되는 정보들은 오히려 아이들의 발달을 가로막고, ‘살아갈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한다.

 

대자연과 마주하기.

사람은 자라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자연 앞에 서 본 사람은 모든 사람의 시선을 집어삼킬만한 엄청난 또 다른 힘을 마주할 수 있다. 저자는 살아갈 터전을 잃어버린 인디언들의 예를 들면서 자연을 마주하지 못하는 인간이 잃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말한다. 동시에 스마트폰, 텔레비전, 인터넷을 접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과 마주쳤을 때 깨어날 수 있는 야성을 경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특히 콘크리트로 만든 정글과 같은 어린이집이나 학교는 아이들이 살아갈 힘을 끌어내기에 절망적이다.”


감상평 

안타깝게도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들이 빈약한 편이고, 주장이 논리적으로 전개되진 않는다.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에 대한 근거나 논리가 부족하다면 독자들이 그 주장을 따라서 모험하며 따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저자가 수십 년간 기업 내에서 겪으며 가져왔던 문제의식들, 저자가 제시하는 끌어내는 교육이 보여준 놀라운 변화들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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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의 경제학
가가와 도요히코 지음,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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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의 경제학 #가가와도요히코

 

이 책의 저자는 철저한 복음주의자로서 기도의 사람이었고, 일본 근대 사회운동의 씨앗을 뿌린 기독교 사회주의자이며 목사였던 가가와 도요히코. 5년에 걸친 빈민가 생활을 한 저자는 미국에서 유학 후, 일본으로 돌아와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했고, 농민 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경제구조의 변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빈민가를 변화시키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만 명이 넘는 시위를 일으켜 보기도 하고, 그로 인하여 감옥에도 수차례 다녀왔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던 이유는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사회 구원을 이루는 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이들이 저자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기독교의 진정한 실천은 경제생활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종교개혁자들은 개인의 믿음의 영역에 대해서 많이 강조했는데, 저자는 바로 이점의 지나친 강조 때문에 경제적인 공동체성을 크게 잃어버린 역사가 있다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신교회들의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오며 더욱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많은 기독교 운동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그러한 모습이지만, 그 영향력은 신자 한 사람의 개인적인 영역이나 개 교회에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종교 밖의 사람들이 자본주의와 종교적 신념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교회 안에서 조차 이것이 마치 건널 수 없는 강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 큰 오류라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 한다. 이어서 말하기를 심지어 교회 조직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부당 이득 사회의 특권 계급에 의존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음을 말한다. 저자는 이렇게 기독교가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 교회들이 자본주의 구조에 기대어 있는 모습에 대해서 크게 안타까워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러한 일들에 관심이 없고 행동하지 않는 이들의 신앙은 미신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기 까지 한다.

 

교회들이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을 이 사회 가운데 이루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저자는 바로 인간 의식의 변혁에서 답을 찾는다. 신앙을 개인의 영역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의 미신을 변혁하여 신앙이란 개인을 넘어 이웃과 함께 누리는 것임을 깨닫게 하고 실천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과 실천을 점점 사회화 할 때 기독교적인 경제혁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개인의식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형재애’, ‘우애. 교회의 역사 가운데, 심지어 교회의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 시대에도 멈추지 않고 존재했던 형재애를 바탕으로 한 운동들이 있어왔다. 안타깝게도 개신교 역사 이후 자유가 강조되면서 형제애가 점점 약해졌는데, 이러한 상황 중에 유럽과 일본에서 일어난 협동조합 운동은 개인의 자유와 형재애가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시너지를 일으키며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저자가 반복해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협동조합은 로치데일 생협 운동과 독일의 프리드리히 폰 라이파이젠운동이다. 물론 이러한 협동조합 운동들과 이후에 나타난 현대의 협동조합에도 특정 지역이나 사람들의 복지만 강조하는 폐단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저자는 사회 전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개인의 의식각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협동조합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이것을 기반으로 한 사회, 국가, 이를 바탕으로 한 세계 평화까지 자신의 논의를 밀고 나간다는 점이다. 협동조합들이 연맹을 맺고, 이들에게서 대표를 뽑아 의회를 조직하고, 이들만의 대표는 이들만의 이익을 반영하기 십상이므로 이들 외에서 대표를 뽑아 사회 의회를 따로 조직하고, 이 두 가지 의회에서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국가들이 세계에 확산되면 평화도 함께 확산 될 것이라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저자가 이렇게 각 나라들이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사회를 조직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빈곤으로 몰아가는 것은 다름 아닌 경제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먹거리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인구과잉 때문에 위협받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다. 저자는 이 탐욕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속죄뿐이고, 이렇게 치유 된 사람들이 힘을 모아 형재애에 바탕을 둔 새로운 경제를 만들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회 안에서 고립된 교회. 아니 고립을 자처한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고민한다. 기존의 교회의 틀은 이제 더 이상 순기능을 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존의 교회들이 이러한 평가를 받는 큰 이유가 신앙을 개인의 영역으로 국한 시키며 사회 안에 작은 자들, 즉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주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책은 80여 년 전의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를, 그것도 아주 러프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은 꾀나 지겨울 수도 있을 것 같다.(솔직히 나도 좀 그랬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는 교회의 모습, 즉 신앙을 개인의 영역에만 축소시켜 사회에 대하여 무관심한 모습은 내가 속한 지금의 한국의 많은 교회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이러한 점만으로도 읽는 내내 마음에 지적당하는 것 같은 불편함도 있었지만,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도 같은 것을 발견한 희열? 같은 감정도 있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이 책에 대한 논평이 너무나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협동조합이 대안인가? 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우애의 정신에 기초한 연대와 협력의 사회가 도래하지 않는다면 대다수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이 자본주의 사회가 타인의 눈물과 고통 위에 일부의 풍요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의 현실이 극복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자유롭고 해방된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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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의 동성애 논쟁 - 동성간의 결혼도 가능한가? 아고라 시리즈 1
존 스토트 지음, 양혜원 옮김 / 홍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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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의 동성애 논쟁. 존스토트. 홍성사.


이 분 책은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책이 워낙 얇고, 논지도 분명하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1.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네 가지 전제
-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 우리는 모두 성적인 존재다.
-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2.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기 위하여 논의의 주제는 ‘동성애를 기반으로 하는 사랑을 과연 그리스도인이 인정할 수 있는가?’로 한정한다.


3. 동성애를 언급하는 주요 성경 본문들은 모두 동성애행위를 죄로 말한다.
- 창세기 19장의 소돔 이야기, 사시기 19장의 기브아 이야기
- 레위기 본문들(레 18:22, 20:13)
- 사도 바울의 언급 중에서도 이 주제를 강조하는 로마서 1:18-32
- 다른 바울 서신(고전6:9-10, 딤전 1:8-11)


4. 성경이 말하는 성과 결혼에 대한 긍정적 가르침
- 창세기 1장과 2장, 예수님의 이야기는 남자와 여자의 결혼 관계 밖에서의 성행위에 대한 그 어떤 정당화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줌.


5. 오늘 날의 논쟁점
- 성경의 저자들은 자신의 상황과 연관된 질문을 다루고 있고, 그것은 우리의 질문과는 매우 다르다.
- 성경의 저자들은 우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는다.
- 하나님이 나를(혹은 그들을) 동성애자로 만드셨다.
- 중요한 것은 진실한 사랑이다.


6. 동성애 긍정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존 스토트의 반박
- 그들의 주장은 신화에 가까울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 게이들의 일반적인 성행위에 따른 피해가 분명 일반적인 결혼을 유지하는 이성애자들이 경험하는 육체적인 질병으로 인한 피해가 더욱 크다.
- 사랑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의 테두리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다.


7. 에이즈
- 대중(특히 기독교회들)에게 알려진 바와 많이 다르다. 함부로 하나님의 심판이라 말하지 말 것.


8.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성애 행위와 관계 중단을 요청해야 한다면?
- 믿음을 가지라.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이라.
- 하나님의 규범에서 벗어나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회복 될 수 있다는 것을 소망할 수 있다.
- 제 3의 길은 가능하다. 사랑, 이해, 용납이라고 불리는 것. 이중의 회개.


생각했던 범위를 거의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내 생각이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았지만. 존 스토트의 책은 역시 깔끔하고, 명쾌하다.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언제나 분명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의문이 드는 것은 제 3의 길이라는 것이 가능할지....다시 말해서 동성애자들과 행위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동성애 행위를 정죄하는 가운데 동성애자를 용납한다는 일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


그래도 많은 이들이 이런 고민을 할 것이고, 이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이들의 생각이 구체화 되고 여러 실천적 모범이라 불릴 만한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전망해본다. 나름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기존 교회에 속하는 많은 이들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훅~ 하고 찾아 왔기 때문이고, 특히 목회자들이 이런 고민을 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잘 아는 청년 둘이 지난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한 명은 퍼레이드에 한 명은 반대기도 집회에. 사실 전에는 교회라면 가난을 비롯한 여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는 교회가 동성애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목회의 자리에서 직접 해당 주제를 마주치니 많이 당혹스러웠다.


이런 차원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보다 더 자주 생각하게 될 것이고, 지역 교회 혹은 우리 삶의 자리에서 더 많이 해당 주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다보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부끄럽지만 이제 시작하는 고민을 좀 더 날카롭게 하고, 폭을 넓혀야겠다. 다른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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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kkary 2016-06-24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는 두꺼운 책에서 한 챕터를 발췌해 놓은 책자죠.
동성애가 다른 죄와 구별되는 특별한 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에 보면 여자앞에서 발기가 되지 않아 상실감을 느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런 동성애자의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후에는 여자와 관계하여 애를 갖는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좋음 2016-06-2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유독 동성애에 반대하는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아요. 책 소개도 감사합니다. ^^
 
인생의 사계절 (각양장)
폴 투르니에 지음, 박명준 옮김 / 아바서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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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폴 투르니에를 검색해보면 기독교인이 사랑한 심리학자...라는 소개의 글들이 많이 나온다. 학창시절 그의 책들에 대해서 소개도 많이 받았고, 친구나, 선배들이 읽는 걸 본 기억이 있지만, 나는 이번에 읽은 인생의 사계절이 처음이다. 이 책에 대해서 알아보니 처음 나온 것도 벌써 50년이 지났고, 한국에서도 인생의 네 계절 또는 인새으이 계절들이란 제목으로 나왔던 것 같다. 2년 전쯤 아바서원에서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인생의 사계절이란 제목으로 제번역해서 나왔다고 한다.

 

우선 제목, ‘인생의 사계절을 보면 인생을 단계 별로 나누는 것보다 계절로 비유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새 청년이 되고, 조금 지나고 보니 중년이 되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노년이 되어 버리고....언제 이렇게 더워졌지? 날이 금세 쌀쌀해졌네....우리가 계절이 변하는 것을 눈치 채는 것이 어렵듯이 인생도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여태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연적인 인간, 초자연적인 인간에 구분이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프로이트와 부버를 인용하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면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과 변화를 계절로 비유한다. 그리고 봄에서 여름으로’, ‘기독교, 자유인가 구속인가’, ‘인생의 성취’, ‘여름에서 가을로’, ‘’인생의 의미라는 순서로 책을 이끌어나간다.

특히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이 유아기에서 청년의 시기로 성장할 때에 수동적인 순종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는 것을 보여주고, 성취에 대한 주제를 통해서는 청년기에 속한 사람들이 많은 선택지들 가운데 선택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을 통해 인생이 무르익는 것임을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겨울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년의 단계를 겨울이라 말하지 않고 인생의 의미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는데, 저자는 노년의 시기를 인생의 의미를 찾는 시기로 보기 때문이고, 인생이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로 이어지는 시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인생에 있어 겨울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가운데 참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부활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인생의 모든 시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강연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 내용이 짧다. 그래서 좀 더 깊은 설명이나 예를 들어 이야기해주면 어떨까 싶은 부분들이 있지만 노년에 이른 인생 선배가 주는 굵직한 조언들에 일일이 주석을 달아가면서 책을 냈다면 책이 지루해졌거나, 재미를 반감시켰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몇 번에 걸쳐 새롭게 나온 책이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설교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 정도로 번역이 자연스럽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인생이 벌써 이쯤에 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직도 봄이거나, 봄에서 여름으로 한창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인지...저자가 책 초반에 이런 이야기를 써놓기도 했다. 내가 보기엔 이 책에서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인간은 가을에도 봄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구분해주는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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