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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 - 일본의 실천적 지식인이 발견한 작은 경제 이야기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장은주 옮김 / 가나출판사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일본에서의 원제목: 소상인의 권유). 히라카와 가쓰미. 가나출판사.
태어나서 30년은 성장이라는 얘기를 쉬지 않고 들었던 것 같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구체적인 년간 성장 퍼센테이지를 언급하며 임기 말이면 선진국 어디쯤에 있을 거라는 공약을 얘기했었다. 지난 대선 때에야 성장보단 복지에 초점이 옮겨가면서 성장 담론은 그나마 적어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정부에서 내세우는 정책들이나 말들을 보면 여전히 개발의 시대, 성장의 시대를 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고성장 시대를 살아왔다. 나도 그랬고, 우리 부모님 세대도 그랬다. 이 좁은 나라에서 인구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그 늘어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전보다 잘 살게 되어 (살고 있는 집다운)집에 자동차도 있고,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들여 놓을 수 있고, 더 많은 욕구들을 채우며 더 성장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꾀나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이 가능했다. (우리 집에만 하더라도 멀쩡한 집, 자동차, 평면 티비, 입식 냉장고. 다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자본주의가 점점 발달? 할수록 수많은 사람들이 더욱 가난해지고 있고, 세계화를 말할수록 세계에서 많은 나라와 사람들이 문명화된 나라를 떠받치는 역할로 전락하고 있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계속해서 성장하던 시대는 갔고, 더 이상 성장하기 힘든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직면해 있다고 말하는 것조차 힘들다. 정치하는 사람에게만 힘든 것이 아니라 정말 모두에게 이런 사실을 직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경제 발전의 모습에 있어서 우리보다 20년 정도를 앞서가고 있는 일본에 있어서는 더욱 그리할 것이다. 작가는 글을 시작하면서 이것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말한다.
“멈춰 서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나 더 성장하거나 더 의욕적이거나 더 활기차기를 부르짖는 시대에 멈춰 선다는 것은 대세에 반하는 뒤처지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이야말로 멈춰 서서 생각해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차분하게 과거와 미래를 헤아리는 시간을 갖는다는 뜻이다. 일본은 어른이 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 정말로 그렇다. 대세를 거스르는 일을 하거나, 하다못해 말이라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하고, 그것이 틀렸다고,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되는 것이기에 결코 쉬운 행동이 아니다. 결단이 필요하고, 확실한 신념과 더불어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대세의 모습이란 어떤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 이미 언급한 것처럼 성장이라는 신화, 신앙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다. 이것을 위하여 세계화가 필요했다. 값싼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팔수만 있다면 국민 경제가 균형을 잃는 것은 크게 고민할 것이 되지 못했다. (사실 세계화를 들먹이면서까지 성장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국민경제는 고려할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그런 생각할 사람들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성장하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다국적기업이라는 것들이 점점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고, 한 나라에서 조금이라도 큰 기업들은 그들을 뒤 따르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덩치가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전에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서로간의 신뢰라는 가치에 기반을 두고 관계를 맺었던 것이 이제는 그러한 가치에 기반을 둔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절대적인 비대칭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소수의 거대 기업을 위하여 더욱 가속화 되었고, 소비자는 기업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기업들은 영원한 성장이라는 거짓말을 온 세상에 그럴듯하게 뿌려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믿음인가? 저자는 경제 성장의 모습을 한 사람의 성장과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끝없이 계속 성장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난 병으로 여기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영원히 성장하는 꿈에 매달려 있다”
저자는 이러한 경제성장의 병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전에 가난했던 일본이 가지고 있던 ‘정신’, 즉 소상인의 정신을 회복할 것을 주장한다. 소상공인이란 “그야말로 작은 문제를 생각할 때 취할 수 있는 위치에서 비즈니스나 사회에 관여하는” 사람을 말하고 “작은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떠안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어른” 즉 자신의 사업과 소비자들과의 관계에서 책임질 수 있는 사업을 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 책임성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태어난 토지에서 벗어나 이윤을 획득하고자 경쟁한다면 그곳에서 통용되는 공통 언어는 화폐밖에 없다. 화폐가 갖는 무연성이 공통 언어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화폐만이 글로벌한 세계에서 상품 교환을 중개하는 언어가 된다. 한편 로컬 세계에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토지의 관계가 우선되어 화폐는 그것들을 중개하는 한정적인 기능밖에 없다. 로컬 토지의 기반을 정비하거나 궁핍하여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에게 노잣돈을 주거나 할 때는 안습이나 관계성과는 무연한 화폐가 중요한 역할을 다할 수 있었다. 경제의 본래 역할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경제란 부자의 것이 아니다. 하물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도 아니다.....그래도 나는 책임이 없는 지금 여기에 책임을 지고 싶다. 나의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내가 나의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데서 생겨난다.”
성장이라는 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곳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무책임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끔찍한 폐해들이 생겨났다. 저자는 바로 지금(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의 피해의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이 그러한 상태를 정직하게 진단하고, 용감하게 다시 작아지기 위하여 개개인의 결단과 시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결단과 시도란 다름 아닌 책임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일을 하는 것이고, 사람들을 더 이상 돈벌이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 보면서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아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를 주름잡는 경제전문가는 아니지만, 개인 사업을 오랫동안 하면서 이 분야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고,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일터를 축소하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로 돌아오는 등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노동의 기쁨이 살아있고 인간적인 가치관이 바탕이 되는 일터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수고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저자의 경력은 책 가운데 고스란히 묻어난다. 책이 논리적이거나 정확한 수치를 제공하면서 독자들을 설득하진 않는다. 이것이 경제학 관련 서적이라 저자의 글쓰기가 그리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느끼고 있는 자본주의의 폐해와 지금은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다는 지적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하면서 사람들과 책임 있는 관계를 맺자고 말하는 저자의 주장은 마음에 울림을 주기까지 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인데, 나조차도 대세에 속해서 성장을 기본으로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 왔다는 것을 들킨 기분도 들었다. 가진 것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방식, 사고방식이 결코 ‘대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괜찮은 대안 자본주의 책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는데, 이 책은 정말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우리가 지금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확인하고, 우리가 결단하고 용기를 가져야 할 소상인의 정신이 무엇인지 배우고자 한다면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