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를 복기하다 -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11가지
이정희 지음, 박홍규 그림 / 들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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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복기하다. 이정희. 들녘

 

2014년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정당이 강제로 해산 됐다. 7-80년대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남과 북이 분단이 되어 있는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설마 했던 일이 정말로 일어났었다. 벌써 16개월이나 지났다. 안 그래도 요즘 그 사람- 이정희 대표는 뭐하며 사나....하고 궁금증이 들었는데, 정당 해산이후 분을 삼키며 조용히 이 책을 쓰고 있었나보다.

 

진보를 복기하다이 책의 저자는 이정희다. 변호사이면서 18대 국회위원을 지냈고,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의 대표를 역임했던 그 이정희다. 그녀는 정당 해산 이후 자책감으로도, 타인의 질책 때문이라도 참 많이 힘들고 아픈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 자신이, 그리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뿌려 놓은 씨앗들이 언젠가는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정성스럽게 쓴 것 같다.

 

이 책은 전체 11개의 챕터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과거 진보 정당에서 발의한 열한 가지 법안들과, 그 법안들이 만들어진 이유, 그리고 그 법안들이 지금도 필요한 이유, 그대로 폐기시키기에 안타까운 그녀의 마음이 이 안에 잘 담겨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서 나는 무엇보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법안들이 발의 된 이유를 살피면서 정부와 재벌 기업들이라는 강자들이 얼마나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는지, 그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과 가족들의 생계를 위협 받으며 고통 받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1개의 법안들을 통해 법이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고, 법을 통해서라도 강제하지 않으면 안 될 무소불위의 권력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인상적인 몇몇 부분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아래의 인용은 구의역에서 일어난 사고와 기가 막히게 연관이 되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산업재해의 특징은, 그 발생 원인이 사용자의 한 번의 실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더 큰 수익을 낼 목적으로 만들어놓은 생산현장의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산업재해는 불운한 노동자에게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끊임없이 반복된다.”

 

5-8호선에서는 정규직으로 스크린 도어 정비팀이 운영이 되는데, 1-4호선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특히 2호선에서만 반복해서 사망사고가 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위의 인용구가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떠올랐다. 산업재해가 아니라 기업살인. 말만 바꿔도 왜 이 법이 필요한지 절감하게 된다.

 

이 외에도 새롭게 배운 개념이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영역들의 문제들, 필요한 법안들을 보면서 사람이 사랍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현장도 알아야 하고, 이런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더욱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정말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너무 모르고,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도 너무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정치인이 무시 또는 비난을 감수하고 이런 정책을 낼 동기는 사랑 말고는 없다. 아픈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만 그들을 위해 사회 구성원들을 설득할 용기를 낼 수 있다. 사랑하기에 진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갖고,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러나 너무 모르거나 막연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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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사색 믿음의 글들
C. S.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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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편사색. C. S. 루이스. 홍성사

루이스를 선생님 삼아서 그의 모든 글들을 찾아 읽고, 반복해서 읽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1세기 전 영문학자였으며 기독교 변증가이기도 한 그의 글들은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신앙에 대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시편 사색’,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이 성경의 시편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니라 학생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가 성경 신학에 대해서 (혹시) 비전문가일 수 있어도, 시에 대해서는 영문학자로서 뛰어난 전문가다. 어쨌든, 이 책에서도 보면 그거 시편을 통해 하나님과 신앙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많은 통찰을 제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저자는 사람들이 시편을 읽으면서 어려움을 겪는 ‘심판’, ‘저주’, ‘죽음’ 등에 대해서 먼저 말해준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시편에 등장하는 심판은 주로 형사 재판의 모습이 아니라 민사 재판과 가깝다는 지적이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시인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원고 측에서 심판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고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별 것 아닌 사실 같지만, 이러한 그림은 나에게 상당히 신선했다. 왜냐하면 저자의 지적처럼, 나 역시 성경을 읽으면서 나타나는 심판을 생각할 때면 너무나 쉽게 나 혹은 모든 사람들을 피고석에 앉히는 형사 재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가 보여준 통찰 중에서 나에게 좋았던 부분은 과격한 언사를 통해 그들은 적어도 분노할 줄 알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아예 분노에 대한 유혹조차 받지 않으며, 그런 일을 지극히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끔찍한 도덕적 불감증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교회 내에서, 아니 성도로서 분내는 것 자체를 금기시 하는 분위기를 한 번 쯤을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나, (저자가 말하는)도덕적 불감증이 우리의 기도나 노래를 죽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성경과 시편이 갖는 두 번째 의미에 대해서 추적한다. 많은 이들이 알레고리적인 해석에 대해서 과도하게 비판하기만 하는데, 저자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성경, 특히 시에서 두 번째 의미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고대 문학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진리에 대한 유사성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구약, 특히 여러 시들에서 두 번째 의미를 인정하셨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것은 저자가 서문에서 시편을 두고 ‘작은 성육신’이라고 말한 것과 연결이 되는 것 같다.

이 외에도 인용하고 싶은 많은 구절들이 있지만, 줄이기로 한다. 오랜만에 읽은 루이스의 책이었는데, 다시 그를 가까이해야 할 것 같다. 20대 초반에 멋모르고 집어 읽었던 그의 책들의 재미와 가치들을 덮어 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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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위대한 기도 - 월터 브루그만이 탐사한 구약의 감동 기도 12편
월터 브루그만 지음, 전의우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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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위대한 기도. 월터브루그만. 성서유니온선교회

 

저자인 월터 브루그만은 유명한 구약학자로서 예언자적 상상력이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고, ‘안식일은 저항이다’,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등과 같은 책들이 수 년 사이에 인기를 얻었던 책이다. 그의 책들에는 반제국주의적인 정서가 가득하고, 독자들에게 용기를 가지고 제국적인 모습에 저항하며 선지자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이 책, ‘구약의 위대한 기도는 구약에 나오는 열두 명의 인물들이 했던 대표적인 기도들을 다룬다. 대략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다. 이렇게 적은 분량이다 보니 우리는 이 책에서 그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통찰력 있는 주해 실력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보기 어렵다. 대신 저자는 대표기도 12선을 통해 이들의 기도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어떤 공통점들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제시한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다니엘과 욥에 이르기까지, 총 열 두 명이 했던 기도들에는 대략 이런 특징들이 있다.

 

- 뻔뻔할 정도로 담대하다.

- 대부분의 인물들은 (기도자 혹은 타자가 느끼기에)하나님의 부재가 있다고 여겨지는 어떤 상황들 중에 기도했다.

- 이들의 기도는 개인의 기도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 그들의 기도에는 말씀(약속)을 기반으로 하는 기억과 소망이 가득하다.

 

자연스레 이러한 특징들은 나와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게 한다. 짧게 이야기하자면 나(우리)의 기도는 이들의 기도에 비해 너무나 점잖다. 이런 모습은 저자의 지적대로 어설픈 우리의 신학이 기도를 집어 삼킨 것때문일 수 있다. 또한 생명력을 잃은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거나,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을 향하여 지나치게 가식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불의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들 때문에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도 너무나 많다. 전능하시고, 사랑과 공의가 완전하신 하나님께 구할 것이 넘쳐나는데, 나는 지나치게 격식을 갖추고 기도하고 있고, 여유를 넘치도록 갖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재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 앞에 솔직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눈을 더욱 떠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자가 제시하는 위대한 기도들, 너무나 인간적인 기도들을 절대로 경험해보지 못할 것이다.

 

그저 소개만 하다 끝난 느낌이 들 정도로 짧아서 아쉽다. 그래도 저자의 통찰은 짧은 분량 안에서 그들의 기도를 소개하면서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게 하고, 우리가 다시 한 번 구하는 기도를 진지하게 할 수 있도록 자극한다. 이 책의 아이디어를 따라 기도에 관해서 시리즈 설교를 해보아도 괜찮을 것 같고, 한동안 자신의 기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읽어볼만한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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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목자 (새번역판) - 리처드 백스터 세계기독교고전 19
리처드 백스터 지음, 고성대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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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목자. 리차드 백스터. 크리스찬다이제스트

 

목회자를 위한 고전. 300년도 훨씬 넘은 책이지만 목사 스스로가 냉철하게 점검하고, 반성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성도들을 위하여 개인별 교리 교육을 하라는 내용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몇 가지 주장을 펼치는데, 그중에 절반이 목회자의 자기 점검에 관한 것들이다. 시대와 당시 문화적 배경이 지금과는 너무 다른 점들이 많지만, 성도에게 말씀을 전하고, 양육하는 위치에 있는 목사직의 핵심은 여전히 동일하기에 새겨듣고, 반복해서 기억하고 적용해야 하는 저자의 권면들이 많다. 두 번째 읽은 책이지만, 마음을 새롭게 하기에 여전히 큰 도움이 되었고, 적잖은 자극을 받았다. 네 가지 정도로 요약 하자면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나에게 먼저 적용하고 있는가? 특별히 죄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내용들을 나에게 먼저 적용하고 있는지?

성도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성경의 가르침들 혹은 의도적으로 어기고 있는 말씀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내가 목사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지?

이 모든 가르침의 일들을 해내기 위해서 충분히 개인 연구를 하고 있는지?

가난한 성도들 혹은 아프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성도들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

 

이 질문들 외에도 많은 질문들이 나를 부끄럽게 했지만, 우선 이 네 개의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고, 시간을 들여 반성하고, 잘못하고 있는 것을 고칠 수 있다면 책을 읽은 시간들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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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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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세계의절반은굶주리는가? #장지글러

 

태어나서 단 하루도 밥이 없어서 굶어본 적이 없다. 내 아이들도 그랬다. 생각지도 못한 병이나 사고로 아파본 적은 있지만, 굶주려서 괴롭다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알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부터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세계 인구가 201170억명을 돌파했는데, 그중 절반 3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과 인도의 전체 인구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얘기인데....사실 짐작이 가질 않는다.

 

 

저자는 전 세계에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학자, 그리고 활동가로서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경험한 사실들을 토대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냥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 현실이 일어나고, 이러한 현실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종합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세계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굶주리게 되었는가?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가난한 나라들의 부패한 관료들과 소수의 탐욕을 좇아 무한대로 확장하는 다국적 기업,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선진국들 때문이라고. 소말리아, 칠레, 러시아 등의 부패한 권력자들은 수백만, 수천만의 국민들을 인질로 삼아 굶겨 죽이고 있다. 심지어 그러한 재앙의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난 상카라(부르키나파소의 젊은 개혁자), 아옌데(칠레에서 무상 급유를 추진하다 살해당한 대통령)와 같은 개혁자들은 마치 예언자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 사살 당했다. 특히 아옌데의 비극은 네슬레라는 다국적 기업, 그 기업을 비호하는 미국, 그들에게 사주를 받아 행동하는 반대 세력에 의해 일어났다.

이러한 사실은 한 기업이나 국가의 금전적 이익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앞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화이트칼라 강도들로 불리는 식량 투기꾼들, 본국의 농민 보호를 위해서 가난한 나라들에게 덤핑으로 농산물을 넘기는 유럽의 선진국들, 좀 더 큰 틀에서 보자면 신자유주의를 이끌고 있는 세계의 금융자본가들은 구조적으로 기아를 만들어내는 원인 제공자들이고, 작금의 비극을 악화시키는 범죄자들인 것이다.

 

 

저자의 구체적인 상황 설명과, 비극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기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상황 인식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기아의 상황이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눈물 찔끔 흘리고, 마음에 약간의 불편을 느끼고, 일정 금액 기부하는 것을 넘어 문제 해결을 위하여 기아에 대응하는 우리의 반응이 달라져야 함을 인정하게 한다. 그것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언론과 권력자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이러한 상황을 내버려 두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들이 주체적으로 현재의 상황들을 개혁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위해서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이 각성하고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아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책을 썼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아에 대하여 어린아이 수준의 상황 인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에둘러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몰라도 자신이 경험한 내용들을 차근차근 가르치려 하는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한 희망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서문을 비롯한 책 곳곳을 보면 비참한 현실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사람이라는 희망을 비춘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31p.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37p.

"구호단체는 극단적인 조건에서 활동하고, 갖가지 모순들과 싸워야 해....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되는 것이지." 107p.

 

 

얇은 책이지만, 수많은 사례들과, 저자의 가볍지 않은 분석들, 우석훈씨의 해제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설은 이 책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몇몇 청년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고등학교 시절에 읽어봤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들에 비하면 무려 20년이나 늦게 읽은 셈이다. 혹시 아직도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는 이 상황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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