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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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세계의절반은굶주리는가? #장지글러

 

태어나서 단 하루도 밥이 없어서 굶어본 적이 없다. 내 아이들도 그랬다. 생각지도 못한 병이나 사고로 아파본 적은 있지만, 굶주려서 괴롭다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알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부터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세계 인구가 201170억명을 돌파했는데, 그중 절반 3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과 인도의 전체 인구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얘기인데....사실 짐작이 가질 않는다.

 

 

저자는 전 세계에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학자, 그리고 활동가로서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경험한 사실들을 토대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냥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 현실이 일어나고, 이러한 현실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종합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세계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굶주리게 되었는가?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가난한 나라들의 부패한 관료들과 소수의 탐욕을 좇아 무한대로 확장하는 다국적 기업,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선진국들 때문이라고. 소말리아, 칠레, 러시아 등의 부패한 권력자들은 수백만, 수천만의 국민들을 인질로 삼아 굶겨 죽이고 있다. 심지어 그러한 재앙의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난 상카라(부르키나파소의 젊은 개혁자), 아옌데(칠레에서 무상 급유를 추진하다 살해당한 대통령)와 같은 개혁자들은 마치 예언자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 사살 당했다. 특히 아옌데의 비극은 네슬레라는 다국적 기업, 그 기업을 비호하는 미국, 그들에게 사주를 받아 행동하는 반대 세력에 의해 일어났다.

이러한 사실은 한 기업이나 국가의 금전적 이익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앞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화이트칼라 강도들로 불리는 식량 투기꾼들, 본국의 농민 보호를 위해서 가난한 나라들에게 덤핑으로 농산물을 넘기는 유럽의 선진국들, 좀 더 큰 틀에서 보자면 신자유주의를 이끌고 있는 세계의 금융자본가들은 구조적으로 기아를 만들어내는 원인 제공자들이고, 작금의 비극을 악화시키는 범죄자들인 것이다.

 

 

저자의 구체적인 상황 설명과, 비극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기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상황 인식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기아의 상황이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눈물 찔끔 흘리고, 마음에 약간의 불편을 느끼고, 일정 금액 기부하는 것을 넘어 문제 해결을 위하여 기아에 대응하는 우리의 반응이 달라져야 함을 인정하게 한다. 그것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언론과 권력자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이러한 상황을 내버려 두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들이 주체적으로 현재의 상황들을 개혁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위해서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이 각성하고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아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책을 썼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아에 대하여 어린아이 수준의 상황 인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에둘러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몰라도 자신이 경험한 내용들을 차근차근 가르치려 하는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한 희망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서문을 비롯한 책 곳곳을 보면 비참한 현실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사람이라는 희망을 비춘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31p.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37p.

"구호단체는 극단적인 조건에서 활동하고, 갖가지 모순들과 싸워야 해....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되는 것이지." 107p.

 

 

얇은 책이지만, 수많은 사례들과, 저자의 가볍지 않은 분석들, 우석훈씨의 해제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설은 이 책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몇몇 청년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고등학교 시절에 읽어봤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들에 비하면 무려 20년이나 늦게 읽은 셈이다. 혹시 아직도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는 이 상황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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