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마저도 코니 윌리스 걸작선 2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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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둠즈데이북>을 읽을 때 몸을 엄청 배배 꼬았던 기억이 있어서 코니 윌리스을 다시 읽을 줄은 몰랐는데. 제목과 ˝역대 최다 휴고상과 네뷸러 상 수상자이며 SF 그랜드마스터˝라는 타이틀에 혹해서. 코니 윌리스 걸작선이 원래 한 권인데 우리나라에서 두 개로 쪼개서 출판한 거였다는 건 몰랐다. 결국 <화재감시원>도 읽어야 한다는 말인데.

<모두다 땅에 앉아 있었는데>와 <여왕마저도>는 <둠즈데이북> 때문에 좋지 않았던 작가의 인상을 확 씻어낼 정도로 훌륭했으나. <마블아치에서 부는 바람>과 <마지막 위네바고>는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역시 몸이 엄청 꼬였는데 장편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지만 <여왕마저도> 단 한 편 때문에라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다. 생각날 때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을 것 같다. 거기에 <모두가 땅에 앉았는데>는 덤. 그 때문에 별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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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패트롤 - 타임 패트롤 시리즈 1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4
폴 앤더슨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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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5년 전에 산 책. 지금에서야 읽다. 그런데 파본이다! 교환 가능하냐고 질문은 넣어놨다. 책은 유통기한이 없으니 가능하겠지.
닥터 후의 시대에 읽기에는 좀 낡은 느낌. 누구나 해봄직한 질문에 누구나 내놓을 법한 해답의 느낌. 번역은 역자인 김상훈 ˝삘˝이 너무 난다. 특히 ˝간원˝이라는 단어.
시간 보내기에 좋은 시간 여행 이야기. 하드보일드 탐정이래도 좋을 주인공 에버라드의 츤데레함.

˝결국 막판에 가서 그를 움직이는 것은 추상적인 책임감 따위가 아니라, 그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사소한 일들과, 사소한 사람들의 기억인 것이다.˝(p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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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한강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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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2016-5-17

오랫만에 단숨에 읽어내린 소설.

1. 기벽[奇癖]
누구에게나, 들키기 전에 굳이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기벽이 있다(? 아무튼 나에겐 있다). 그 기벽은 일종의 숨구멍이다. 일상과 평범에 납작 찌그러져 종내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아를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날려버리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그 숨구멍은 어느 순간 일상과 평범의 세계를 폭파시켜 날려 버릴 불씨의 유입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기벽과 불씨가 꼭 공통점을 유추할 수 있는 어떤 짝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벽이 있다면 불씨도 있다. 자신은 그걸 인식할 수 없다. 그랬다면, 기벽을 고수할 리가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벽을 지닌 사람은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잠재적으로 위험한 사람이라고. 어떤 이의 기벽을 우연히 발견하면 움찔하게 되고.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여자에게 우선 움찔하였다. 모든 면에서 평범 그 자체인 여자에게 유일하게 언급할 만한 것이 이것이다. 아무튼 무엇이든 언급할 만한 것이 있다면 -물론 정말 어떤 것도 언급할 만한 것이 없다면 이야기도 없겠지. 아니, 정말이지 어떤 것도 언급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야깃거리일 수도 있고- 이미 `모든 면에서 평범`한 것은 아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평범한 삶을 원했다면 이 여자와 결혼해서는 안 되었다.

2. 연작 중 가장 강렬한 것은 욕망이 전면에 드러나는 <몽고 반점>이고 중단편으로서 압축된 서사는 <채식주의자>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속에 오래 남겨 데려가고픈 인물은 ˝성실의 관성으로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을 극복˝할 수도 있었을 여자 `인혜`이다. 이것은 소설 뒤에 붙은 해설에서 평론가가 말한 대로이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열정에 부딪쳐 깨져버린 이들이 숭고한 예술작품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인내의 근육을 가다듬으며 일상의 곡예를 아슬아슬하게 연마한 그녀의 삶을 감히, 예술작품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또 어디 있겠는가. 욕망을 감추는 데 들이는 에너지는 욕망의 나신을 드러내는 데 들이는 에너지보다 훨씬 더 막대할 것이다.˝

3. 그래도 여주인공, 영혜가 머리속에 더 깊이 각인된 바, 그 어떤 종류의 폭력으로부터도 벗어나기 위해 끝내 식물로 나아가는 그녀가 이렇게 묻기 때문이다. ˝죽는 게 왜 나빠?˝

4. 한강은 <검은 사슴>이 출간된 후 거의 곧 읽고 서너 해 전에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 <검은 사슴>을 읽을 때는 좋은 작가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 책들까지 읽게 되진 않았었다. 이십 년도 더 후의 <희랍어 시간>에서는 그녀가 산문에서 시로 넘어(? 옮겨?)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채식주의자>는 <검은 사슴>보다 앞으로 나아 온, 거기다 아직은 산문이다. 기억에서 떠올릴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먹먹하다.

5. 아마 맨부커 인터내셔널 쇼트 리스트 얘기가 없었다면 영영 사지 않았을 거고, 본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면 몇 달 뒤에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영역자인 데보라 스미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거기다 이 소설을 원래 쓰여진 언어로 읽었다는 것도 기쁘다!

스미스는 한국어를 책으로만 배워서 2년 만에 한국현대소설을 읽고 7년 만에 이런 성과를 올렸다는데 프랑스어를 책으로만 2년 공부한 나는 아직 <어린 왕자>의 첫 페이지도 멋 넘기고 있다. 각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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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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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한국 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
김영란 / 창비 (2015)

2016-4-3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을 재밌게 읽었던 차에 이 책을 발견. 그런데 재미는 그닥.

일단 저자는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하였다지만 그래도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와 문장과는 거리가 있다. 한자어로 된 법률 용어의 명확한 뜻이 금방 떠오르지 않기도 하고 비문은 아니지만 구어도 아니기에 쉽게 다가오지 않는 문장들도 많았다.

다음으로, 읽는 내내 삼권분립이 뭐고 도대체 우리나라에 대법원이 존재하는 이유가 뭐지 싶었다. 뭐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막연하 대법원이란 정권의 들러리지 하고 생각하긴 했는데 전직 대법관의 증언(!)을 보니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법이란 게 사회적, 사법적 약자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넘의 대법원은 논리를 계발해가면서까지 정권이 원하는 결론을 내려 준다. 다수 의견의 논리에 대한 소수 의견의 반박은 그저 반박으로 끝날 뿐. 다수 의견이 소수 의견을 재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시한다. ˝소수˝ 의견이니까. 각자 자기 의견 내고 찬성 몇 반대 몇, 이 쪽이 다수니 이걸로 결정, 끝. 이게 무슨 토론이야.

가장 속 뒤집히는 건 상지학원 사건이다. 도대체 자기들이 나름 여러 단계의 논리를 거쳐 도달한 결론이 결과적으로 누가 봐도 불합리한 -이 사건의 경우 비리 당사자에게 학교가 다시 돌아가는 것- 상황을 공고히 하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 법을 엄격히 적용한 결과가 정의 실현이 아닌 정의 파괴라면, 그 따위 법은 왜 있는 거란 말인가. 아니면 법은 멀쩡한데 그 따위로 휘어서 갖다대는 대법관은 어떤 존재들인가.

여하튼, 이 역시 저자의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현재 우리나라 사법계의 수준(?)에 매우 실망했다.

사족. 저자의 이름이 붙은 김영란법. 이 법이 내수를 위축시킨다고들 하는데 뇌물로 굴러가는 경제가 그렇게 어마어마 했단 말인가. 남이 사주지 않으면 맛볼 수 없고, 가족이나 나를 위해서는 못 사면서 누군가에게 굽신거리며 바치기 위해서만 구매한다는 게, 그야말로 본말전도 아닌가. 지금까지 그래왔다면 그거야말로 비정상이고 우리 공주마마가 좋아하는 ˝정상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비정상˝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달려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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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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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Move
Oliver Sacks (2016) / 이민아 역 / 알마 (2015)

2016-4-23 ~ 4-25

매번 과식을 한 후면 속이 불편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잠까지 설치게 되어 정말 다시는 과식은 말아야지 하면서도 외식만 하면 또 과식을 하고. 그런데 밥 하기 싫어서 하는 외식은 또 얼마나 잦은지. 지금 또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 그냥 침대에 들어가서 눕고만 싶지만 기어코 이렇게 글을 찍어 보겠다고 앉았는데. 사실 내가 이런 의지력을 발휘하는 것은 정말 정말 오랜만의 일로서, 이게 다 올리버 색스 때문이다. 이 책이 너무나도 (즉 지나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고 뭉클했고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소설 일색인 내 인생의 책 리스트에 올릴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는 데다가 제목도 특히 책 표지도 맘에 들지 않아서 (책을 책 표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말이다...) 더 관심 두지 않았던 책인데 그 책이 대표작인 저자(그러니까 거의 알지 못 했던 저자)의 자서전을 왜 읽기로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의 열 권에 가까운 `읽고 있는 중`인 책들이 있고, 게다가 자서전 `따위`는 (마하트마 간디의 것을 제외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는데 말이다. 여하튼 언젠가(비교적 최근에) 사다가 책장에 꽂아놨던 것이 이틀 전 저녁 문득 눈에 들어왔고 뽑아서 한 문장 두 문장 읽어가다가 그만 홀딱 빠져버렸다. 어떤 책이 나에게 온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많은 시간과 공간의 우연이 겹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상이 순식간에 나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그런 흔하지 않은 만남처럼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먼저 올리버 색스라는 인간 자체에 반하게 된다. 세상에 대한 무한히 열린 마음과 호기심에 뛰어난 지적, 육체적 (모터바이크, 역도, 수영...) 능력에다가 글에 대한 열정과 재능까지. 한 마디로 그는 자기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일을 제대로 찾았고 그 일에 필요한 재능까지 (거의) 타고 난, 그래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고 즐겁게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게다가 여든이 되어 십대 후반부터 찬찬히 돌아보며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는 책 속표지에 실린 <로스엔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의 언급처럼 `너무나 솔직담백하고 적나라하고 과격`하면서도 결코 과시적이지도 그렇다고 겸손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진솔`한 것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독자를 주눅들게 하지 않는다. 아마 실제로 삶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그는 또한 어쩌면 그렇게 (읽는 나에게 신기할 정도로) 자신처럼 지적으로 뛰어나고 열정적인 사람들만 만나는지 부러웠는데 그것은 어쩌면 돼지 눈에는 돼지만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80년이나 되는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 속에서 소환해 낸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한 사람의 삶이 결국은 관계로 채워지는 것이라 볼 때, 그의 삶의 충실함이 어느 정도였을지를 알게 해준다. 그의 지인 중 한 사람인 시인 위스턴 휴 오든의 싯구 ˝삶의 마지막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고마운 생각이게 하라˝를 실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정말 내 인생을 흘깃이라도 (벌써부터 자세히 돌아보면 너무 일찍 좌절할 수도 있으니까)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쓰는 것`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나의 단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제대로 된 소설 하나를 쓰는 것이나, 모자라는 재능을 게으름이 덮쳐서 소망이 점점 로망, 동경, 이루어질 수 없을 꿈으로 밀려가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사람과 자신의 책들로 풀어내는 것을 보면서 문득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고 할 수 없는데 단 한 순간도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이지 못해서, 그러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결국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나의 삶이란 말인가. 그러다가 나는 그래도 나름 젊어서 내 존재를 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 이 사람은 일흔 다섯이 되어서야 소울메이트를 만났다지 않은가 하면서 속을 달래보았다. 좀 그런가?

가장 웃겼던 장면은 서른 셋에 루리야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읽고서 느꼈다는 것. 224쪽의 각주를 그대로 가져와 보면 이렇다. ˝그리고 공포도.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이 세계에서 내 자리가 남아 있겠어?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쓰거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루리야가 이미 다 보았고 말했고 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나는 너무 분해 그 책을 반으로 찢고 말았다(결국 도서관 반납용으로 한 부, 내 것으로 한 부 해서 새 책으로 두 권을 사야 했다).˝ 그가 이랬다면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찢고` 있겠는가(나는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깜냥을 알아서).

읽는 중에 그의 책을 두 권 더(물론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도) 주문했고, 또 두 권을 주문할 생각이다. 또 하나, 그가 일흔 다섯에 만났다는 소울메이트 빌 헤이스의 <해부학자 The Anatomist>는 내가 훨씬 더 오래 전에 사다놓고 읽지 않았던 책이었다. 2012년에 번역본이 나왔는데 오늘 검색해보니 벌써 절판되었더라. 그의 다른 책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그 책을 읽으면서 그를 계속 생각할 예정이다. 다시 한 번, 어떤 책이 인생으로 진짜 들어오게 되는 계기는 정말 다양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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