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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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On the Move
Oliver Sacks (2016) / 이민아 역 / 알마 (2015)

2016-4-23 ~ 4-25

매번 과식을 한 후면 속이 불편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잠까지 설치게 되어 정말 다시는 과식은 말아야지 하면서도 외식만 하면 또 과식을 하고. 그런데 밥 하기 싫어서 하는 외식은 또 얼마나 잦은지. 지금 또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 그냥 침대에 들어가서 눕고만 싶지만 기어코 이렇게 글을 찍어 보겠다고 앉았는데. 사실 내가 이런 의지력을 발휘하는 것은 정말 정말 오랜만의 일로서, 이게 다 올리버 색스 때문이다. 이 책이 너무나도 (즉 지나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고 뭉클했고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소설 일색인 내 인생의 책 리스트에 올릴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는 데다가 제목도 특히 책 표지도 맘에 들지 않아서 (책을 책 표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말이다...) 더 관심 두지 않았던 책인데 그 책이 대표작인 저자(그러니까 거의 알지 못 했던 저자)의 자서전을 왜 읽기로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의 열 권에 가까운 `읽고 있는 중`인 책들이 있고, 게다가 자서전 `따위`는 (마하트마 간디의 것을 제외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는데 말이다. 여하튼 언젠가(비교적 최근에) 사다가 책장에 꽂아놨던 것이 이틀 전 저녁 문득 눈에 들어왔고 뽑아서 한 문장 두 문장 읽어가다가 그만 홀딱 빠져버렸다. 어떤 책이 나에게 온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많은 시간과 공간의 우연이 겹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상이 순식간에 나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그런 흔하지 않은 만남처럼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먼저 올리버 색스라는 인간 자체에 반하게 된다. 세상에 대한 무한히 열린 마음과 호기심에 뛰어난 지적, 육체적 (모터바이크, 역도, 수영...) 능력에다가 글에 대한 열정과 재능까지. 한 마디로 그는 자기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일을 제대로 찾았고 그 일에 필요한 재능까지 (거의) 타고 난, 그래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고 즐겁게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게다가 여든이 되어 십대 후반부터 찬찬히 돌아보며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는 책 속표지에 실린 <로스엔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의 언급처럼 `너무나 솔직담백하고 적나라하고 과격`하면서도 결코 과시적이지도 그렇다고 겸손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진솔`한 것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독자를 주눅들게 하지 않는다. 아마 실제로 삶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그는 또한 어쩌면 그렇게 (읽는 나에게 신기할 정도로) 자신처럼 지적으로 뛰어나고 열정적인 사람들만 만나는지 부러웠는데 그것은 어쩌면 돼지 눈에는 돼지만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80년이나 되는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 속에서 소환해 낸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한 사람의 삶이 결국은 관계로 채워지는 것이라 볼 때, 그의 삶의 충실함이 어느 정도였을지를 알게 해준다. 그의 지인 중 한 사람인 시인 위스턴 휴 오든의 싯구 ˝삶의 마지막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고마운 생각이게 하라˝를 실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정말 내 인생을 흘깃이라도 (벌써부터 자세히 돌아보면 너무 일찍 좌절할 수도 있으니까)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쓰는 것`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나의 단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제대로 된 소설 하나를 쓰는 것이나, 모자라는 재능을 게으름이 덮쳐서 소망이 점점 로망, 동경, 이루어질 수 없을 꿈으로 밀려가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사람과 자신의 책들로 풀어내는 것을 보면서 문득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고 할 수 없는데 단 한 순간도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이지 못해서, 그러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결국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나의 삶이란 말인가. 그러다가 나는 그래도 나름 젊어서 내 존재를 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 이 사람은 일흔 다섯이 되어서야 소울메이트를 만났다지 않은가 하면서 속을 달래보았다. 좀 그런가?

가장 웃겼던 장면은 서른 셋에 루리야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읽고서 느꼈다는 것. 224쪽의 각주를 그대로 가져와 보면 이렇다. ˝그리고 공포도.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이 세계에서 내 자리가 남아 있겠어?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쓰거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루리야가 이미 다 보았고 말했고 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나는 너무 분해 그 책을 반으로 찢고 말았다(결국 도서관 반납용으로 한 부, 내 것으로 한 부 해서 새 책으로 두 권을 사야 했다).˝ 그가 이랬다면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찢고` 있겠는가(나는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깜냥을 알아서).

읽는 중에 그의 책을 두 권 더(물론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도) 주문했고, 또 두 권을 주문할 생각이다. 또 하나, 그가 일흔 다섯에 만났다는 소울메이트 빌 헤이스의 <해부학자 The Anatomist>는 내가 훨씬 더 오래 전에 사다놓고 읽지 않았던 책이었다. 2012년에 번역본이 나왔는데 오늘 검색해보니 벌써 절판되었더라. 그의 다른 책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그 책을 읽으면서 그를 계속 생각할 예정이다. 다시 한 번, 어떤 책이 인생으로 진짜 들어오게 되는 계기는 정말 다양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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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음 / 지식플러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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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 / EBS미디어 (2014)

2016-4-8

하드커버에 종이까지 반들반들 윤기가 나는 것이 `책`이란 물건으로서는 맘에 들지 않았지만, 제목까지 너무 뭐랄까 독자에게 아부하는 것 같았달까.

하지만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고 따라서 훌륭한 책이다. 이런 책을 고등학교 다닐 때 읽었어야 하는데. 그랬으면 대학에서 과학철학 동아리에서 모여다니던 사람들을 지적 겉멋이 단단히 든 사람들이라고 오해(사실은 질투)하지 않고 나 역시 끼어들어봤을 텐데. 그러나 이 책은 2014년에 나왔을 뿐이고. 아마 우리 사회의 여건 지금에서야 이런 책들이 출판될 수 있을 만큼 열렸다는 뜻이겠고 나 역시 지금 이만큼 나이 막고서야 이런 책을 끝까지 집중해서 읽을 만큼의 지적 능력이 된 것이겠지.

˝과학적˝이란 말의 의미를 내가 얼마나 단순하게 또 그만큼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라고 어느 정도는 그 단어의 의미에 무지한 만큼 교조적으로 ˝비과학적˝인 것들을 배척해 왔는지. 과학의 점진적 발전을 주장한 포퍼와 정상과학과 패러다임 변화를 통한 과학혁명을 주장한 쿤에 대해서. 과학에서의 (저자가 주장하는) 다원주의의 의미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물 끓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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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 - 역사적인 미국 연방대법원 사건들과 숨은 이야기
L. 레너크 캐스터.사이먼 정 지음 / 현암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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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레너드 캐스터, 사이먼 정 / 현암사 (2012)

2016-4-4

김영란의 <판결을 생각한다>를 읽다가 문득 이 책을 사다놓고 재밌게 좀 읽다가 버려놨다는 게 떠올라서 이 책부터 읽었다.

쉽게 읽히는 데다가, 정말 재밌기까지 하다. 그런데 좀 이상한 책이다. 저자는 두 명의 미국인(적어도 한 명은 이름으로 보아 한국계일 수도 있겠지만)인데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인 듯 역자가 없다. 아마도 영어로 씌였을 원서를 번역한 것 같지도 않다. 저작권 계약 표시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구글링에서도 L Leonard Kaster 라는 `저자`는 한국어로 된 이 책 외에는 나오는 것이 없다. 두 사람 다 한국인(또는 한국계)인가? 그래서 그냥 한국어로만 책을 썼나? 그렇다면 한국식 이름도 있을 텐데 왜 굳이 영어 이름을? `굳이`라고 물을 필요까지는 없는? 이런 걸 궁금해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을까? 물론 이런 궁금증은 `책 자체`와는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아무튼, 재미있게 쉽게 후다닥 읽었다. 그러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주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부러움이었던 것 같다.
내가 미국과 미국인에게 항상 부러워하는 점은 이런 거다. 기득권 꼰대들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일까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합의해서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 역사가 겨우 200년 남짓 되지만 `미합중국 헌법`이라는 게 무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헌법`이고, 구성원들 사이의 충돌은 법정에서 헌법을 토대로, 즉 미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세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자기들이 원했고 또 원하는 국가를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들에게는 자랑스런 선조도 없었지만 청산해야할 역사도 없었고, 다행히 현명한 대표자들을 뽑아 토론과 합의와 헌법이라는 첫 단추를 잘 끼웠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의 시공간에서 그럴 기회가 있었다. 무능의 극치였던 왕조는 망하고 왕조 대신 들어서서 더 심한 수탈을 일삼았던 일본은 패전국으로 꺼져버렸다. 거기다 임시정부도 있었다. 새로 헌법을 만들면 되었다.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 평등(기회), 박애(상조)가 바탕이 되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한다. 그런 나라를 위한 헌법을 쓰고 선포하면 되었다. 그렇지만 뭐 결과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적어도 속으로는) 알고 있는 바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에 밀리고 짓눌린 나머지. 아니, 어쩌면 우리 헌법도 미합중국의 헌법만큼 훌륭한 헌법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라는 선언이 단지 선언 이외의 어떤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냉소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결국은 그 법을 손에 들고도 제대로 행사하려고 들지 않는 나 포함 국민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과연 `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법`하면 생각나는 금언 내지는 격언으로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든가 소크라테스가 남겼다는 `악법도 법이다`가 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는 말도 금방 떠오른다. 요컨대 법을 `준법의 의무`라는 측면에서 특히 강조하는 교육을 받아왔고, 그러면서도 일상 생활에서 별 도움은 되지 않는, 힘(권력, 금력, 폭력 등)보다 못한 것이 법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힘보다 법이 못한 국가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이고, 그런 국가에서 `준법`을 강조하는 하는 것은 권력자가 시민을 겁주고 길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법을 악용하는 것이다. 특히 반정부 경향의 시위에 대해 공권력이 `불법`이라는 딱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라. 한편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 내지는 투쟁 환경을 조장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해소하지 못한, 혹은 해소하려 들지 않는 갈등은 점점 더 법보다 가까운 주먹을 먼저 소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에서 툭하면 터지는 `묻지 마` 총기 난사 사건이나, 늘어가는 증오 범죄(정말 이런 인간들은 고대로부터 답이 없다)를 보면, 이들도 법정에까지 오는 사건들에서나 `건국의 아버지들의 초심`을 생각할 뿐 실제로는 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도생各自圖生 중인 것 같다.

또한,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고 할 때,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들만 법으로 금지를 하여야 하지, 법의 오지랖이 너무 넓으면 오히려 사람들의 삶을 답답하고 숨막히게 하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면 `고속도로 뿐 아니라 시내 도로에서 전좌석 안전띠 의무화` 같은 것. 고속도로에서는 이해해줄 수 있다. 하지만 크게 속력을 낼 수 없는 시내도로에서까지 전좌석 안전띠라니. 그런 걸 꼭 법으로 강제해야 하나?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 사망할 확률이 높으니 매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정도의 캠페인으로 끝나면 안되나? 안전띠를 매지 않는 것은 사고의 순간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이다. 이걸 안 하면 벌금이라고 법을 강제하는 건 법의 오지랖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사람이 있고 그 사이에 관계가 있고 그 때문에 법이 있는 것이다. 관계를 망치는 법, 인간을 망치는 법은 법일 수 없고, 법을 만들거나 적용하거나 해석할 때도 사람과 관계를 살리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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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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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십 년도 더 전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 권 읽고 는 그저 ˝신 선생님˝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언뜻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정신이 번쩍 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혹은 그래서 읽어봐야겠다 생각한 책.

단정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책 띠의 저자 사진만큼.
읽는데 오래 걸렸는데 한 자리에 앉아서 후루룩 마시듯 읽을 수는 없는 책이었다.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다. 이런 이야기라면 하루종일 듣고만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저자는 듣고만 있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시겠지만.

나로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혹은 그동안 들으려 하지 않아서 못 들었던) ˝나˝ 아닌, ˝관계`를 중심에 놓고 변화와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책을 읽고 자신에게 변화가 없다면 그 책은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슷한 글을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내 삶에, 최소한 삶과 사람에 대한 자세에 변화가 없다면. 막막해지려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야 하는데.

이 세상에 계실 때 읽을 걸 그랬다. 사표師表를 잃었다는 허전함이 크다. 책이라도 남아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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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그림으로 읽는 세상 '근대편'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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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때문에 읽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읽기 싫은 걸 억지로 읽은 게 얼마만인가 싶다. 그나마 종이책은 절판 상태라 e-book으로 읽었는데. 종이책 절판된 게 하나도 아쉽지 않다.

책 내용은 인문학자가 그림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혹은 그 역을 읽어 보여준다는 것인데.

일단 잘 쓴 글이 아니다. 책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무슨 말인가 싶을까봐 쉽게 설명하자면˝이라는 의도에 충실하느라 그랬는지 ˝비어卑語˝는 없어도 진부한 속어俗語 표현이 난무한다.
그런데 쉽게 설명하자는 사람이 또 툭하면 러스킨이니 루카치니 보들레르니 언급하면서 그들이 말했던 게 이런 뜻이다, 라거나 ˝내 생각에는˝ 그게 아니다, 라고 쓴다. 그들을 성실하게 인용하는 것도 아니다. ˝루카치가 어쩌구저쩌구˝, 정말 이렇게 쓰고 있다. 뭐 어쩌자고. 미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독자를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니라고? 그러기엔 서문과 `말투`는 좀 아닌 것 같은데?
`문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에서, 책 몇 개 읽어서 좀 알게 된 형이 동생들 모아놓고 되고말고 떠든 것을 묶어낸 거 같다. 그 형은 또한 `나 잘난 좌파`임을 드러내지 않으려해도 어쩔 수 없이 배어나오는 그런 사람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는` 책이다. 달을 가리키는 데 손가락만 본 것이면 나만 안 된 것이겠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논지에 신선한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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