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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한강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2016-5-17
오랫만에 단숨에 읽어내린 소설.
1. 기벽[奇癖]
누구에게나, 들키기 전에 굳이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기벽이 있다(? 아무튼 나에겐 있다). 그 기벽은 일종의 숨구멍이다. 일상과 평범에 납작 찌그러져 종내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아를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날려버리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그 숨구멍은 어느 순간 일상과 평범의 세계를 폭파시켜 날려 버릴 불씨의 유입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기벽과 불씨가 꼭 공통점을 유추할 수 있는 어떤 짝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벽이 있다면 불씨도 있다. 자신은 그걸 인식할 수 없다. 그랬다면, 기벽을 고수할 리가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벽을 지닌 사람은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잠재적으로 위험한 사람이라고. 어떤 이의 기벽을 우연히 발견하면 움찔하게 되고.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여자에게 우선 움찔하였다. 모든 면에서 평범 그 자체인 여자에게 유일하게 언급할 만한 것이 이것이다. 아무튼 무엇이든 언급할 만한 것이 있다면 -물론 정말 어떤 것도 언급할 만한 것이 없다면 이야기도 없겠지. 아니, 정말이지 어떤 것도 언급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야깃거리일 수도 있고- 이미 `모든 면에서 평범`한 것은 아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평범한 삶을 원했다면 이 여자와 결혼해서는 안 되었다.
2. 연작 중 가장 강렬한 것은 욕망이 전면에 드러나는 <몽고 반점>이고 중단편으로서 압축된 서사는 <채식주의자>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속에 오래 남겨 데려가고픈 인물은 ˝성실의 관성으로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을 극복˝할 수도 있었을 여자 `인혜`이다. 이것은 소설 뒤에 붙은 해설에서 평론가가 말한 대로이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열정에 부딪쳐 깨져버린 이들이 숭고한 예술작품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인내의 근육을 가다듬으며 일상의 곡예를 아슬아슬하게 연마한 그녀의 삶을 감히, 예술작품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또 어디 있겠는가. 욕망을 감추는 데 들이는 에너지는 욕망의 나신을 드러내는 데 들이는 에너지보다 훨씬 더 막대할 것이다.˝
3. 그래도 여주인공, 영혜가 머리속에 더 깊이 각인된 바, 그 어떤 종류의 폭력으로부터도 벗어나기 위해 끝내 식물로 나아가는 그녀가 이렇게 묻기 때문이다. ˝죽는 게 왜 나빠?˝
4. 한강은 <검은 사슴>이 출간된 후 거의 곧 읽고 서너 해 전에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 <검은 사슴>을 읽을 때는 좋은 작가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 책들까지 읽게 되진 않았었다. 이십 년도 더 후의 <희랍어 시간>에서는 그녀가 산문에서 시로 넘어(? 옮겨?)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채식주의자>는 <검은 사슴>보다 앞으로 나아 온, 거기다 아직은 산문이다. 기억에서 떠올릴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먹먹하다.
5. 아마 맨부커 인터내셔널 쇼트 리스트 얘기가 없었다면 영영 사지 않았을 거고, 본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면 몇 달 뒤에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영역자인 데보라 스미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거기다 이 소설을 원래 쓰여진 언어로 읽었다는 것도 기쁘다!
스미스는 한국어를 책으로만 배워서 2년 만에 한국현대소설을 읽고 7년 만에 이런 성과를 올렸다는데 프랑스어를 책으로만 2년 공부한 나는 아직 <어린 왕자>의 첫 페이지도 멋 넘기고 있다. 각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