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 끝없는 투쟁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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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한 시간 동안 한 바닥 찍은 걸 한 순간 날림!!! orz.
전의 상실.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에 대한 생각.

이긴 전투는 별로 없지만 2차대전이라는 전쟁에서는 승리.
그러나 전후 세계 질서 구축이라는 궁극의 전쟁에는 실패. 그가 천재였고 격렬한 인간이었으며 그만큼 동시대 인간들을 자기가 이끌어내 할 대상으로만 봤기 때문이라는 생각.

히틀러에 대해서도 읽어봐야 할 것 같고. 처칠이 쓴 제 2차 세계대전도 찍어서 보관함에 넣었음.

세간에도 알려진 처칠의 재치있는 유머가 많이 나오지 않는 게 좀 아쉬웠다. 예를 들면, 매일 의회에 지각한다고 비난하는 상대에게 “그 의원님도 저처럼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면 알텐데요”라고 했다던가.


“정당에 대한 충성심이나 시민 의원의 절대적 • 이념적 원칙주의는 근본적으로 그에게는 낯설었다. “자신을 개선하려는 자는 변해야 하고, 완전해지려는 지난 매우 자주 변해야 한다”라는 것이, 그토록 여러 번이나 관점과 입지를 바꾼 것을 두고 비난하는 사람에게 그가 이따금 던진 답변이었다. “ p136.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윈스턴 처칠 개인에게는 지옥이었다. 장관을 지내는 동안에도 그는 한 번도, 아니면 거의 한 번도 제대로 자신의 일과 책임감으로 완전히 충족되지 못했다. 언제나 쉬지 않고, 불만스러워 하고 규율 없고, 언제나 자기에게 주어진 한계를 지나 다른 모든 것으로 넘어가 간섭하려는 경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p157.

“처칠은 타고난 전사임에도 매우 인간적이었고, 자주 다정한 사람이었다. 마치 정열적인 사냥꾼이 흔히 동물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인 것과 비슷하다. 더 약한 존재, 패배한 존재에 대한 잔인성을 그는 죄악처럼 싫어했다. 이런 종류의 잔인성은 히틀러의 성격 특성이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 안인희 역, <처칠, 끝없는 투쟁>, 돌배게.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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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리커버 에디션, 양장)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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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판 마르틴 베크 연작을 한 권으로 묶은 것 같다. 사건을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해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더 서늘한 것이 있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특히 홍콩의 상황이기도 하지만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서도 느끼듯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사람 사는 곳. 지금 우리 사회도 큰 무리 없이 겹쳐져 보인다. 이런 소설을 자꾸 읽으면 희망 같은 걸 잃지 않기가 어렵지 않을까. 소설보다 더 한 도람푸라는, 2차 대전 이후 세계사에서 민주주의의 최대 악당도 목도하고 있는 현실까지 있는데.

홍콩 경찰의 생소한 계급명과 중국어 이름들(보통어 이름과 광둥어 별명들? 아무튼 러시아 이름보다 더 입에 붙이기 힘들었다) 때문에 초반엔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관전둬 하나만 붙잡고 끝까지 잘 봤다. 마지막 단편 <빌려온 시간>이 가장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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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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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월 전 앞부분 몇십 페이지 읽고 그냥 책꽂이에 꽂아두었다가 <건강 격차>를 읽고 난 후 다시 꺼내어 처음부터 내리 읽었다. 요즘 우리나라 의사들도 병원에서 겪은 일들을 녹여 많은 에세이들을 쓰고 출판하는데 비슷한 일을 겪었고 겪는 사람을 가까이서 봤던 이로서 보기엔 뭔가 말랑하고 감상적이라 슬쩍 얼굴을 돌리게 되는 일이 많았다. 이 책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 흔한 ‘담담함’도 없다. 그러면서 쌀쌀한 글도 아니고. 부럽다.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게.

저자가 이 책을 쓴 지도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고 책을 쓸 당시 외과 레지던트 4년차이던 그는 (비교적 최근 난 책에 실린 약력을 보니) 이제 수련받던 병원의 스탭이자 의과대학생들의 교수가 되었다.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고 이 책이 전하려고 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의학의 불완전함-이 조금이라도 빛이 바랬을까? (그건 그렇고 4년차가 어떻게 이런 책을 쓰지? 나는 4년차 때 당직 서고 아랫년차들 백커버(?)하고 컨퍼런스 준비하고 막판 두 달은 전문의 시험 공부하느라 저자에 비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 같네. 정말 남는 시간은 자기 바빴다.)

의학의 수많은 골아픈 점들 중 하나는 불완전한 지식이라도 모든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고 일단 적용해봐야 하는 상황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사람’에게. 많은 중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처치나 약물이 예견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 어떤 과정으로 발생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도’된다. 즉 ‘complication (합병증; 이 책의 원제)’의 위험을 알지만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래도 시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의사들은 수많은 무시무시한 얘기들이 써진 소위 ‘동의서’를 환자(와 보호자)에게 들이밀게 된다... 거기다 바쁘고 위중하고 의식이 없는(아파서이거나 치료과정 중 의도적으로 의식을 눌렀거나) 환자를 여러 명 한꺼번애 돌봐야 하면 ‘사람’, 그러니까 감정과 생각과 싫고 좋은 것과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은 잊고 질병, 교정해야만 하는 잘못된 상태 자체에 매몰되기도 쉽다.

종합병원을 떠나 동네 의원에서 일하면서 이 책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 처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아프고 그래서 걱정 속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똑같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나 또한 자잘한 걱정거리와 여러가지 기분에 좌우되는 ‘사람’이고.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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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격차 - 평등한 사회에서는 가난해도 병들지 않는다
마이클 마멋 지음, 김승진 옮김 / 동녘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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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꽂힌지 역시(흑ㅠ) 한참 된 책인데 이 시기에 끄집어내어 읽게 된 계기는, 좀 뜬금없는 것 같지만,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이다.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 방안의 하나로 제시한 의과대학생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의사들이 파업을 하고 의대생들이 의사국가고시 응시를 포기하는 등 정부와 의사 집단 간의 대치가 극에 달한 어느 날 뉴스에서 이분이, 지금은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정부의 입장을 브리핑하는 것을 보다가 문득 저분은 전문 분야가 뭐길래 저기서 저런 얘기를 하나 싶어 검색했다가 기사 하나를 찾았다 ( 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2595&replyAll=&reply_sc_order_by=I ). 기사에 소개된 바에 의하면, ‘부산의대 예방의학과 교수(그러니까 이분도 의사)로 부산지역 공공의료 기반 확충을 위해 노력해온 인물’로, 2018년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공모로 복지부로 입성하면서 전문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하셨다는 말씀은 ˝지난 10년간 정체돼 흔들리는 공공의료의 기반을 탄탄히 다지고 저변을 확대하는 일을 가장 하고 싶다.˝ 연구실에 있다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직접 현실로 뛰어든 분이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의대생 정원 확대에는 반대하면(했으면..?)서도 공공의료 강화라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분을 보니 내가 공공의료란 걸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다 책장에 이 책이 있다는 걸 떠올렸고, 그리고 이렇게(어떻게?!) 되었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쓰인 글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상과 비전을 제시하고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을 실제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적절한 재치를 섞어 정연한 논리로 풀어 보여준다(<팩트풀니스>의 저자와도 아주 죽이 잘 맞을 것 같다). 그래서 펼쳐 놓은 다른 책들보다 먼저 한번에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읽는 것이 마냥 쉬운 건 아니었다. 이 책은 무엇보다 ‘행동’을 독려하는 책이다. 행동하려면 먼저 생각에서 냉소와 무기력(이라고 쓰고 게으름이라고 읽는다)을 솎고 걷어내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골치아픈, 하기 어려운, (정직하게 말하면) 하기 싫은(=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의대생 때 정신과 실습 중 가난과 남편의 폭력으로 우울증을 앓게 된 환자에게 빨간 약은 그만 먹고 파란 약을 먹어보자, 라는 말밖에 해줄 것이 없다고 하는 선배 의사를 보며 ‘우리’는 누구이며 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저자. 나로 말하자면, 읽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성이야 열심히 했지만 여전히 내가 뭘 해야할지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간단하다(이건 간단한 문장으로 줄인다고 무슨 오해가 생기는 건 아니다!). 돈, 권력, 자원의 불평등의 경사면은 건강을 해친다는 것. 경사면의 아랫쪽은 계속 깎여나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경사면의 기울기는 더 가팔라질 것이고 결국 맨꼭대기에 있었던 것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병을 치료하기 전에 환경을 개선해서 병에 걸리지 않게 하려면 경사면이 더 깎이지 않도록, 나아가서 기울기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의 삶의 모든 단계- 영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 장년, 노년기-에서 효과적이면서도 아주 어렵지는 않은 실행 가능한 대책들이 있고, 사회적으로 봐도 마을, 지역 공동체, 국가, 그리고 국제사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 기술적인 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떤 질병이든 치료법이 있기만 하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받을 수 있다(물론 비용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그러나 제도나 정책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흠이(흠만?) 많다. 물론 미국처럼 의료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기대 수명은 낮은 지경은 아니겠지만. 나는 정부의 생색내기(건강보험료를 올리지 않기 위해 의료 수가를 낮게 유지)가 공급자와 수요자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공급자는 낮은 공급가 문제로, 수요자는 좁은 보장 범위 문제로) 열받아 싸우게 만드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미 글이 너무 길어져 나조차 지겨워지고(!) 있으니 그만 멈추겠다.

아무튼 이 책이 의대생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때 읽지 않으면, 일단 환자들을 대하게 되면, 의사는 ‘질병’ 자체에 쉽게 압도되고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경험에 비추어 보면).

다음은 사족:
1. 저자가 말하는 건강한 생활습관 - 가공육을 적게 먹고, 인스턴트 음식과 설탕이 과다하게 들어간 음료수를 피하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고, 금연하고,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하는 등등- 중 대부분을 나는 싫어한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선 나쁜 결과가 올 것을 알고 감수하기로 하면서 그 반대를 선택할 수 있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겠지.
2.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제외한 아시아의 이야기는 거의 앖고 제시된 많은 통계자료(주로 OECD 국가의 자료)에도 일본만 간혹 보일 뿐 우리나라 이야기는 거의 없는데 딱 하나 우리나라 자료가 있다. 엄청나게 높은 노인 빈곤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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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9-11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나게 높은 노인 빈곤율... 우리나라 보건은 기술에 비해 넘 떨어진 거지. 아울러 노인에 대한 관심은 제로에 수렴.
 
배를 엮다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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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일본적인 ‘힐링’이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외에 많이 읽은 일본 작가는 없지만 오쿠다 히데요의 <공중그네>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책들도 떠오르고. 태풍이 도시를 지나가던 날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중에 제법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면서 중간중간 혼자 낄낄대기도 하고 나중에는 흐뭇하기도 했다.

1. 외골수라는 것. 어떤 분야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겠다는 야망 따위 없이, 단지 좋아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해서 당연히 헌신할 수밖에 없다는 듯 하나만 물고 늘어지는, 그 밖의 세상일에는 그만큼 서투른, 그렇게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경원시되지만 나중에는 중심좌표로 인정되는 사람. 이 사람이 주인공 마지메. 한편 이건 이것대로 재밌고 저건 저것대로 재밌어서 또는 무언가에 지나치게 빠진다는 것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그저 주어진 만큼 피해가 안 갈 정도로 일을 하며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끼면서 사는 그 외 평범한 사람. 이 사람은 주변 인물 중 하나인 니시오카. 세상에는 니시오카는 흔하디 흔하고 마지메는 드물다. 외골수의 관심 분야만 놓고 보면 마지메 들이 니시오카 들보다 빛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니시오카 들이죄다 마지메 들을 부러워할까? 이 소설 속의 니시오카는 그랬다. 나는 그게 맘에 들지 않고, 이 소설도 얼마간은 뻔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사전 만들기에서 마지메의 외골수는 훌륭하다. 존경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부러워할 것까지야. ‘부러워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내가 잘못 알고 있을까봐 사전(!)을 찾아봤는데, 이 단어는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어하다’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외골수의 정열을 잠깐은 부러워할지언정 그 부러움은 5분을 못 넘길 거다. 왜냐하면 우리(!) 니시오카 류의 사람들은 마지메 들이 모르는 즐거움도 많이 알고 있고 얕을지언정 다양한 관심사를 기웃거리며 나름대로 인생의 만족과 균형을 찾기 때문이다.

2. 말과 사전에 대해. 이 책은 대학 선배의 페북에서 보고 알게 되었는데 읽어보겠다 싶을 만큼 흥미가 동한 것은 ‘사전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라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자기 생각을 전하고 남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그러니까 요즘 말로 ‘소통’하기 위해 말을 만들어 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가 처음에 전하고자 하던 진실을 부옇게 하고 거기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나는 그 이유를 사람마다 마음 속에 각자의 사전을 품고 미묘하게 다른 뜻으로 단어들을 골라서 쓰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말만 봐도, 백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는 사랑이 다 다르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데 너는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속 터지는 상황이 도처에서 수시로 터진다. 이런 상황에 대해 나는 사실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었다. 표정으로, 행동으로 보여줘서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말은 오해만 덧붙일 뿐이라고도 생각한다. 아니 애초에, 아예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것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로서의 사전, 마음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말과 그 거울의 일그러짐을 최소화하려는 사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사람이 문자화되고 표준화된 사전에 등재된 뜻으로만 단어를 사용한다면 말이 정말 괜찮은 이해의 도구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도, 애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고 말로만 표현하려고 하다 보면, 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냐 왜 그렇게 말을 하냐 하는 오해는 해결될 수 없을 거다. 결국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할 것.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말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 잘 구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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