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이란 무엇인가 - 동서양 치유의 역사
파울 U. 운슐트 지음, 홍세영 옮김 / 궁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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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지를 정리하는 과정이 지루하기 짝이 없고, 전문번역가가 아닌 번역도 엉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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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펭귄클래식 38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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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르가소 바다는 서인도 제도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 흐름이 느리고,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지역인 데다 '사르가숨'이라는 해초 뭉치들이 떠다니는 곳으로 이 해초로 인해 많은 배들이 비극적 운명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책의 뒷표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오랫 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그러나 가슴은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울컥함으로 꽉 채우면서, 다른 책은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은, 더 오랫 동안 거기에만 잠겨 있고 싶은, 그런 책들이 있다. 이 책,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Wide Sargasso Sea>도 그랬다.

책 제목의 '광막한'이란 단어에 끌려서 클릭하였다가, <제인 에어>의 로체스터의 미치광이 첫번째 부인 버사와 로체스터의 이야기, 어쩌면 <제인 에어>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고 당장 받아서 읽었다. <제인 에어>는 나에게 있어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르가소>는 앙트와네트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의 과거이다. 그녀는 자메이카에서 대농장주이자 노예주인 영국인의 딸로 태어났지만, 자메이카인에게는 물론 (대부분 흑인 노예 출신이었으니까), 영국인에게도 (영국인들은 식민지의 백인들의 혈통에 원주민이나 흑인의 피가 섞였을 거라고 내심 단정적이었던 듯. 그리고 이것이 로체스터가 앙트와네트를 불신하게 된 배경의 한 이유이기도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크리올 여자이다. 어느 곳에도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그녀의 인종적 배경은 아버지가 일찍 죽고, 노예해방령 때문에 집안이 몰락하고,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백치인 상황 때문에 더욱 악화되며, 이는 어머니가 부유한 백인(이 사람이 메이슨)과 재혼한 후에도 나아지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원주민 흑인의 폭동으로 집이 불타고, 그 와중에 백치 남동생이 타서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어머니는 미쳐 버림으로써 그녀의 어린 시절은 (제인 에어 못지 않게) 상처로만 남게 된다. 이어서 그녀는 (제인의 로우드 학교를 연상시키는) 수녀원 학교에서 사춘기를 보내게 된다. 상처투성이인 어린 시절과 이어지는 학교 생활까지는 제인과 앙트와네트가 가는 길이 비슷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두 사람의 길은 엄청나게 달랐으니, 그 이유는 앙트와네트에게는 비록 '양부'이지만 애정을 가져주는 아버지와 오빠가 있었고, 제인은 그야말로 천애고아로서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앙트와네트는 그 시절 여자들이 그랬던 대로, 아버지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오빠가 골라준 사람과 결혼한다. 

이 남자가 마음이 넓고 자신감이 있는 행복한 남자였다면, 아름다운 앙트와네트를 사랑하고 둘은 행복했을 수도 있다. 앙트와네트가 기대한 것이 많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남자 또한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부터 자기 감정을 감추도록 강요 받으며 자랐고, 아버지와 형은 둘째 아들에게 재산을 한 푼도 물려주지 않으면서도 가난뱅이로 만들지 않으려고, 가계가 불안한 것을 알면서도 3만 파운드라는 지참금에 아들을 팔 듯 앙트와네트와 결혼시킨 사람들이다. 그는 춥고 해가 잘 비치지도 않는 영국에서 살다가 열대지방 숲의 현란한 원색들, 진한 꽃향기들, 햇빛에 압도당하며 곧 지쳐 버리는 사람이다. 요컨대, 상처투성이인 어린 시절을 지나면서 열대의 현란한 색과 향기의 자연에 마음을 열고 지내온 앙트와네트와 속물적인 아버지와 형 밑에서 감정을 숨기는 신사로 살아온 남자 (에드워드 로체스터이겠지만, 소설 중에는 한번도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앙트와네트의 배다른 오빠로 자처하는 남자가 뿌리는 앙트와네트에 대한 악의적인 중상을 로체스터가 아무런 의심 없이 그냥 인정해 버리고, 두 사람 사이에 유일하게 통하던 육체적 만남까지도 중단해 버림으로써, 관계를 확실히 좌초시킨다. 그리고 왜 로체스터가 자신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앙트와네트는 서서히 미쳐 간다.

자신의 앞길에 대해, 바로 내일의 일부터 단호하게 자신의 결정으로 밀어붙였던 제인 에어와, 아버지와 오빠 때문에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을 결혼에 밀린 앙트와네트는 같은 남자와의 관계에서 정반대의 선물을 받는다. 앙트와네트의 파멸이 그녀의 잘못인가? 그녀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태어난 땅의 원주민인 흑인으로부터도 배척당했고, 혈통을 물려준 영국인에게도 손가락질 당했으며, 그런 이들이 모여서 제 3의 정체성을 가진 집단을 만들 수도 없었던 데다가, 19세기 여자로서 남자에게 속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이다. 그에 비해, 제인도 비록 비슷한 시대를 타고 났지만, 제인은 달랐다. 제인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할 아버지나 오빠가 없었고, 무엇보다 제인은 본토에서 자라 교육을 받은 영국인이었다. 앙트와네트의 파멸에 로체스터는 어떤 책임이 있을까? 로체스터는 크리올 여자의 순결에 대한 그 시대의 편견에다가 아버지와 형에 대한 증오까지 무의식 속에 가지고 있던 남자이다. 그러니 오고 싶지 않은 곳에 와서 지참금 때문에 크리올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자기 무의식 속의 크리올 여자에게 딱 들어맞는 중상을 들으니 더는 이해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로체스터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식민지를 두고 원주민을 노예로 부리면 못된 제국주의 시대의 책임, 그러니까 인간 모두의 책임인 것이 아닐까. (비슷한 종류의 중상이 제인 에어에 대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로체스터가 그렇게 단번에 돌아섰을까? 제인은 정숙한 영국 여자이니까 질투심에 찬 비방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주지 않았을까?) 


 아름다왔던 앙트와네트가, 그녀의 시대가 덧씌운 이미지에 쓰러져 버사가 되고, 마음이 피폐해지면서 미쳐가고, 하는 과정이 사르가소 바다의 느린 물흐름처럼 처연하고 막막하다. 인간은 모두 시간이라는 거대한 팔 밑의 장기말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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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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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완독. 세권이 결국은 하나의 축을 따라가고 있으므로 책은 한권만 올리면 된다.
1권부터 따져보면 다 읽는데 반년 걸렸네. 작가가 중간에 쉰 탓도 물론 있지만.
이걸 다 읽으려고 3권 읽기 전에 조지 오웰의 1984년도 찾아서 읽었다. 뭔가 힌트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별로 없는 것 같다. 오웰의 1984년이나 하루키의 1Q84년이나 '말이 안 된다'는 공통점 외엔.

1. 그러니까,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기 위해서 리틀 피플과 공기 번데기가 달이 두 개인 세상을 만들었던 것이고, 두 사람의 사랑이 없었다면 그저 'honky-tonk parade'가 되었을 것을, 두 사람이 사랑이 있었기에 달이 두 개가 떠 있는 1Q84의 세상이 그저 'make-believe'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2. 3권에는 아오마메와 덴고 외에 두 개의 달을 바라보는 세번째 인물이 등장한다. 역시 아오마메와 덴고처럼 세상과 거리를 정해 놓고 홀로 존재하듯 하는 이인 우시카와. (다시 보니 1권의 표지는 아오마메, 2권의 표지는 덴고, 3권의 표지는 우시카와의 그림자인 것 같다.) 아오마메와 덴고보다, 나는 오히려 이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의 몸으로부터 새로운 공기번데기가 만들어지고, 그 번데기는 어떤 도터를 잉태하게 될까. 그의 영혼은 남아 도터로 아니면 아예 퍼시버로 돌아와 1Q85년이 열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상을 잠깐 해봤다.

3. 타이거가 왼쪽 옆얼굴을 보이고 있는, 덴고와 아오마메가 마침내 손을 잡고 함께 있을 수 있게 된 달이 한 개인 세계는, 1984년과 어떤 점이 다를까. 선구는 없고, 그렇다면 노부인과 다마루가 선구의 리더를 암살할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고, 후카에리는 애시당초 있을 필요가 없고. 우시카와는 아마도 변호사 자격을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덴고의 연상의 여자친구도 상실되지 않아서 금요일에 덴고와 아오마메가 함께 있는 덴고의 방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 이모든 세계는 동시에 존재하는 (혹은 할 수 있는) 패럴렐 유니버스의 각각의 모습일까. 아니면 그냥 우리가 아는 시간과 공간 만이 있고, 1Q84는 덴고와 아오마메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겐 그저 honky-tonk parade에 지나지 않는 걸까.

4. 나의 하늘에 연한 초록색 하드보드지로 만든 창백한 달 하나를 매달아 본다. 이것이 그저 make-believe에 지나는 것이 될 수는 없다고 믿어 줄 그대, 어디에 있는지.

5. NHK 수금원의 노크.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모르겠다. 몰라서 괴롭다. 소설 속의 어떤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괴롭다는 느낌까지 든 건 또.





It's only a papermoon

Say, its only a paper moon
Sailing over a cardboard sea
But it wouldn't be make-believe
If you believed in me

Yes, it's only a canvas sky
Hanging over a muslin tree
But it wouldn't be make-believe
If you believed in me

Without your love
It's a honky-tonk parade
Without your love
It's a melody played in a penny arcade

It's a Barnum and Bailey world
Just as phony as it can be
But it wouldn't be make-believe
If you believed 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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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패러독스 2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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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이라는, '책 읽기'에 대한 아주 훌륭한, 거의 성경처럼 여러 번 읽어서 체화하고 싶었던 (그렇지만 뭐 결국 그 이후로 다시 읽지는 않아서 Forgotten Book 속으로 점점 잠수해 가는 중이지만) 책의 저자인 피에르 바야르의 책들인 '패러독스' 시리즈가 계속 번역되어 나왔는지 몰랐다. 사실 그 책도 네이버의 오늘의 책에 소개되었던 것을, 제목에 혹해서 읽었기 때문에 작가에게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알라딘의 '책 추천 마법사'가 전에 읽었던 책의 저자의 다른 책들 중 한 권으로 이 책을 올려준 것이다. 잘 했어요, 알라딘~!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기보단(첫줄부터 꼼꼼히 읽어야 하고, 마지막 범인이 밝혀질 때까지 맘을 졸이면서 기다리기엔 내 심장은 너무 연약하다. 푸핫), 수퍼 히어로 취향으로 브라운 신부 전집과 셜록 홈즈를 읽고, 내친 김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중 베스트라는 10권을 반값에 사서 주욱 읽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충격이었다. 가장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을 멋지게 범인으로 만든 크리스티 여사. 가장 사소해 보였던 일을 실마리로 잡고서 휘몰아치는 추리력을 보여준 에르퀼 푸아로. 그리고 범인에게 하는 푸아로의 마지막 제안(이게 특히 소름끼쳤다. 크리스티 여사는 어쩌면 체온이 34도쯤 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 그런데 피에르 바야르는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를 묻고 있다. 이러니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그것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억에 생생한데 말이다.
책의 4분의 3 정도는 '왜 (독자에 의한) 수사가 재개될 수 있고, 재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증에 바쳐진다. 핵심은 이론 vs 망상, '적합성으로서의 진실' vs '드러남으로서의 진실'의 경계, 혹은 그 사이에 있는 세계와 그 해석에 있다.
그리고 마지막 4분의 1에서 그가 지목하는 범인은! 짠! 애거서 크리스티가 거의 대부분의 독자로 하여금 범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보다 더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며, 놀랍게도 그것이 정말이지 더 진실(!)에 가까울 것만 같다! (심지어는 이 사건이 에르퀼 푸아로 vs 제인 마플 대결이라고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저쪽 세상에서 이 글을 읽었다면, 흠, 그래도 누군가는 진실을 꿰뚫어 보는군 하면서 빙긋 웃을까, 아니면 자기가 내세운 범인을 완전히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한숨을 쉴까.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국어 교과서에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의 설명문(논설문?)이 있었다. 제목이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글은 지금 생각해 보면 구조주의 비평에 대한 글이었는데, 뭐 난 구조주의가 뭔지, 그 시절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로도 한 번도 공부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그냥 그 글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글의 마지막 단락이 그 이후 나의 독서 방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기억하기로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문학 작품이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하는 재미 없는 여로가 아니라, 모든 것이 갖추어서 있어서 이것저것 누려볼 수 있는 주택이다.'
그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아하! 했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겉에서 보기에 끌리는 어떤 집에 들어갔을 때, 겉모습과는 다른 허술한 내부에 왕 실망해서 그냥 나올 수도 있고, 정말 멋진 집이지만 어쩐지 편하지 않아서 불안하게 빙빙 둘러보기만 할 수도 있고, 모든 방이 다 꽝인데 딱 한 방만 나의 맘에 쏙 들어서 그 집을 좋은 집으로 기억하고 나설 수도 있는, 한마디로 내 멋대로 느끼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한길의 <여자의 남자>는 있을 수 없는 순수한 신파 러브스토리이지만, 그 책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애 편지와 자끄 프레베르의 시를 여러 편 담고 있다는 점 때문에 내게는 '명작에 근접한 책'이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같은 책은 명성이 자자하지만, 내가 보기엔 담도 너무나 높고, 지붕도 너무나 높아서 문턱을 넘어서는 것조차 꺼려지는 그런 집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진짜 '구조주의'란 것이 이런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인지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모른다. 나는 그 설명문조차 제멋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책읽기는 결국 '작품을 완성하는 이는 독자'라는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거기다가,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갖고 새로운 생각을 한다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읽는 그 당시의 독자'라고 할 수 있다.

추리 소설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독자의 개입이 가장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장르이다. 전지적인 작가가 사건의 전모를 계획하여 실행하고, 그것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마구 섞은 후 일종의 게임처럼 독자에게 맞춰 보라고 던져 준다. 조각들은 단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을 뿐 탐정과 독자에게 똑같이, 모두 드러나 있다(혹은 그런 것처럼 보인다). 이미 사건은 일어났고, 일어난 방식은 단 한 가지, 이미 작가가 첫 줄을 쓰는 순간부터 정해져 있었던 한 가지 방식 뿐이기에 독자가 이것저것 상상해 봤자이다. (이래서 내가 추리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 단 한 가지 정해진 결론, 정답이 있다고 생각히기 때문에. 게다가 독자가 탐정과 출발선은 비슷한 것 같지만, 결코 탐정을 이길 수 없는게, 탐정은 책에 서술되지 않은 어느 시간과 공간 귀퉁이에서 자기만 할 수 있는 중요한 수사를 하고 있지만, 독자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에.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에.)

그런데 피에르 바야르는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그는 우선 이 사건의 화자가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왜 믿을 수 없는지까지 말하면 스포일러가 된다!). 그리고 푸아로의 추리대로 실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에 대해 설명한다. 다음으로 푸아로가 범인으로 지목한 이는 아무 것도 진짜로 '자백'한 것은 없음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여러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푸아로의 성격과 행동으로부터, 우리가 푸아로의 설명을 전적으로 받아들어야 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리 하여, 결국 수사는 재개되고, 전혀 다른 이가 범인으로 지목되며, 이는 단순한 독자가 단순한 눈으로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색채를 이 작품에 부여하게 된다.

능동적인 책읽기, 작품의 숨은 의도를 찾거나 혹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작품을 완성시키는 독자'로서 책읽기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멋진 책.

다음은 '셜록 홈즈가 틀렸다'를 읽을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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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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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의사이고 포복절도할 이야기라고 해서 골랐다. 5년 반 동안 무려 147쇄나 찍힌 소설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이야기였고.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 쯤? 아르토 파실린나의 <자살여행>이나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와 같이 묶일 만한. 요컨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위악을 떨면서,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 생의 의지다! 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

이라부 같은 의사라면, 난 오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면 안된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이 자기에 대해 어떤 생각(첫인상이든 선입견이든)을 품게 될지에 대해 100% 무관심하며 자기 좋은대로, 그러니까 다섯 살 난 어린애처럼 당당한 것,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를 외치며 상대방을 포기시키는 유형의 인간들을 나는 싫어한다. 위악이 위선보다 나쁘다. 도대체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모두 굵은 바늘로 비타민 주사를 찔러대면서 눈이 반짝거리는 의사를, 소설이니까 봐주는 거지, 현실에서 어떻게 봐 준단 말인가. 그러면서 마음 속에서 억압되어 있으면서 몸의 병을 불러일으키는 의뢰인(환자)들의 고민을 배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라니. 이건 판타지 소설이다. 

불쾌하기까지 한 이라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그러나 연민이 든다.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본다. 물론 나는 그들처럼 고민도 화끈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일상 생활과 직업을 하지 못할 만큼의 강박증은 (아직까지는) 보이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어쩌면 일상 생활도 힘들게 하는 강박을 고치려면, 이라부같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적 인물을 만나야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의 책이 많이 출판되어 흥미가 있었는데, 매사가 이런 식이라면 더 읽지 않겠다. 그렇지만 문득 '이라부라면 내겐 어떤 처방을 내릴까'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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