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0
에밀 졸라 지음, 김치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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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는 여자에 대한 토 나오게 하는 이야기다.

아무리 세기말에 혁명과 혼란과 전쟁의 시기였다고 하지만, 위로 4대 조상까지 죄다 알콜중독에 정신병에 가까운 방종한 인물들이 조상이었다고 하지만, 나나는 결코 있을 법하지 않은 여자다. 나나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파멸하는, 작가로부터 나름대로 이름과 성격과 배경을 부여받은 거의 열 명이나 되는 남자들은 그런대로 있을 법해 보인다. 나나만큼 비현실적인 뮈라 백작 빼고. 하여튼 이 많은 남자들이 나나라는 오직 한 여자에게 꽂혀서, 그냥 패가망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거나 죽은 송장이 되어서야 나나에게서 놓여난다니. 모든 남자들이 한 여자에게 반해버리는 순정만화의 그로테스크 버전도 아니고.

거기다 마지막 장은 너무나 급히 마무리 된다. 마치 작가도 쓰다가 나나에게 질려버린 것처럼. 아무리 모든 육체는 죽고 썩는다지만 나나의 비참한 죽음은 무슨 권선징악인가.

그러니 이 토 나올 것 같은 데카당스를 정말 토 나올 것 같은 활력으로 세밀하고도 생생하게 묘사한 졸라에게 질리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졸라는 어떤 여자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궁금하다. 연표를 보면 서른에 결혼하고 쉰 여덟에 아내의 하녀인 스물 막은 아가씨와 눈이 맞아 딴살림을 차렸다는데.

목로주점에 나나까지 연달아 읽은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그러니 제르미날은 좀 쉬었다 읽겠다. 최고의 프랑스소설로 꼽힌다는 보바리 부인으로 가봐야지. 이것도 자연주의 소설이라는데 가차없이 냉정한 작가에게 기분이 나빠질까?

정작 많은 생각과 하나씩 갈라낼 수 없는 묵직한 감정의 실타래를 넘겨받은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선 한 줄도 못 썼는데.

ps) 위키를 찾아봤더니 나나는 18살에 죽었다! 열 다섯에 처음 거리로 나가서 그 난리를 피운 세월이 겨우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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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178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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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sommoir
Emile Zola (1877) / 유기환 역 / 열린책들 (2011)

2015-3-3

목로주점 상을 다 읽은 게 작년 5월. 1년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이틀 만에 하권을 다 읽었다. 하권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미적거린 이유는 남아있는 분량이 오로지 제르베즈의 급속하고 끔찍한 타락과 추락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고 때인지 대학 때인지 아니면 그 이후인지 아무튼 오래 전에 이 소설을 한 번 읽었었는데 그 때도 자기 인물들에게 손톱만큼의 연민도 보이지 않고 가차없기만 한 작가에게 질려버렸네 했던 기억이 난다.

왜 다시 읽었을꼬?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하는 멋진 노래 목로주점을 들을 때마다 흥얼흥얼 따라하면서도 제르베즈를 떠올렸으니 이 소설도 결코 좋아할 수 없으면서 잊을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여하튼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놈팽이 랑티에에게 버림받고 혼자 힘으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상권을 읽을 때도 정신없이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1년의 숨고르기 후 맞닥뜨린 제르베즈의 추락은 기억에서 희미해졌던 것 이상으로 경악스럽다.

아 왜 그러고 살아. 차라리 목을 매. 그렇다면 동정이라도 줄 수 있겠어. 그렇지만 이런 종말은 저금도 동정할 수 없다. 그냥 나에게는 오물이 튀지 않기를 바라며 펄쩍 물러서고 싶을 뿐. 제르베즈가 동시대 인물이었다면 나는 아마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을 것 같다.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타락해가는 인간이 있다는 걸 차마 볼 수 없었을 것이야. 그러나 그 때보다 과연 우리 문명이 진보한 걸까... 이런 생각은 애써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 제르베즈보다 더 어린 나이에 자진해서 타락으로 돌진한 딸 나나를 읽어야지.

˝사람들은 찬양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사람들은 칭찬했다. 격찬과 비난은 하나같이 격렬했다...... 그런 가운데 작품은 점점 위대해져 갔다.˝
- 졸라의 무덤 위에서 읽은 아나톨 프랑스의 조사(弔辭) 중. (역자 해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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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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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 Let Me Go
Kazuo Ishguro (2005) / 김남주 역 / 민음사 (2009)

이 소설이 SF로도 분류된다는 사실은 몰랐다. `클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클론`들의 이야기라는 걸 모르고 읽었으면 작가가 무심히 흘리듯 보여주는 것들에 처음에는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꽝 얻어맞은 듯한 카타르시스가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스럽게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했어도 `클론`들의 이야기란 걸 읽기 전에 모를 수가 없었다. 소설의 소개이건 영화의 소개이건 첫 단어부터 `클론` 또는 `복제 인간`이 어쩌고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책 뒷표지에도 그렇게 찍혀있다. 다 읽고 난 후 새삼 더 화가 난다. 참 엄청난 스포일러인데 마치 작품을 읽기 전 필요한 사전 지식처럼 까발리고 있는 것에 대해. 그러면서 나도 그들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추리소설, 진짜 SF, 스릴러를 읽은 후 장르소설이 아닌 소설을 읽어서 그런가. 다시 `그냥 소설`, 무엇보다 인간이 전면에 등장하는 소설을 읽어냈다는 일종의 성취감. 그리고 뭔가 아릿한 기분은.

2005년 맨부커 쇼트리스트에 있다는데 도대체 2005년 수상작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길래 싶어 검색해봤더니 2007년 번역본 출판, 현재는 역시(?) 품절. 중고책은 이 인간들이 두배도 넘는 가격을 매겨놨다. 쳇, 양심 없는 인간들. 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소유욕이 불끈. 알라딘 품절도서센터에 의뢰. 전에도 한 서너 번 시도해봤지만 성공한 적이 없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만.

다음 날 덧붙임.
1. 왜 이들은 도망치거나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진짜 SF, 산으로 올라가는 이야기가 되었을까? 헤일셤의 교육이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그런대로 체제에 순응하고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이건 그냥 수많은 클론들 중 캐시 H.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볼 수 없는 소설 속 세계 다른 곳에서는 시스템에서 도망치거나 심지어 반란을 꾀하는 클론들도 있겠지? 사실 말이 클론이지 클론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개체는 단 하나도 없다. 일란성 쌍동이가 동일인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2. 이들의 여정은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잊을 수 없는 안드로이드 로이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되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어떤 단계(?)에서 맞닥뜨리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영혼`이란 것이 역할이 그런 것인지. 그러게 캐시, 그 여자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나오지 그랬어.

3. 디스토피아 SF로서의 측면에 대한 질문. 이 소설에서 복제인간의 용도(!)는 장기제공(`기증` 아니라)용이다. 장기만 배양하는 기술 대신 인간 전체를 복제 생산해서 장기를 하나씩 꺼내는 기술이 발달했다는 건 전자가 기술적으로 더 어려운 일이어서 그런가? 기술보다 더 중요한 윤리적 측면에서 전자라면 충분히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만들지 않고 받아들여질 것 같은데. 최고 네 번까지의 제공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나밖에 없는 심장은 아마 가장 마지막에 떼어내게 되겠지. 그 전에 신장 하나, 간 일부, 췌장 일부(?)까지? 각막이나 뼈 같은 건 당장 복제인간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테니 최후의 단계가 아니면 떼내기 어렵겠지. 정말 디스토피아적 상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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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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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다양하게 대립되는 이상론들이 실제로 무엇인지 일일이 밝힐 필요는 없다. 이들이 보수주의자든 사회주의자이든, 반공주의자든 공산주의자든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이것이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인데), 소박하고 도덕적인 차원에서 이들 모두의 말이 서로 다 옳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에겐 각각 그렇게 믿을 만한 깊은 정신적, 물질적 이유들이 있고, 그들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가능한 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갈등이 이와 비슷한 모습은 아닌지 묻고 있다. 즉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 다섯 가지의 똑같이 진지한 진실들과 똑같이 관대한 이상론들 사이에서 이와 유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를 묻고 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고상한 진실과 사악하고 이기적인 잘못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하나의 진실이 그에 못지 않게 인간적인 다른 진실과 대립하는 것, 이상이 다른 이상과, 긍정적인 가치가 역시나 긍정적인 다른 가치와 대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 문명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라고 본다.˝

그렇다. 다 옳다. 다 옳은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모두 동시에 손을 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가장 덜 문제를 일으키는 길인지도 모른다. (이것도 아마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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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펨벌리로 오다 - 오만과 편견 살인 사건
P. D. 제임스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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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음. 확실히 추리소설적인 재미는 별로임. 그러나 오만과 편견을 다시 읽는 것 같은 느낌. 18세기말 영국, 우리나라 조선 중기 찜쪄먹을 정도로 예의와 위선이 분간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떤 권위든 (적어도 마음 속에서는) 약간의 냉소로 부숴버릴 수 있는 21세기의 나에게 따뜻하게 기억되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의 P D 제임스가 대단히 실례지만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건 몰랐다. 이 작품은 무려 91세에 쓰신 거라 하네요. 나는 아주 오래 전 분인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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