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Never Let Me Go
Kazuo Ishguro (2005) / 김남주 역 / 민음사 (2009)

이 소설이 SF로도 분류된다는 사실은 몰랐다. `클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클론`들의 이야기라는 걸 모르고 읽었으면 작가가 무심히 흘리듯 보여주는 것들에 처음에는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꽝 얻어맞은 듯한 카타르시스가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스럽게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했어도 `클론`들의 이야기란 걸 읽기 전에 모를 수가 없었다. 소설의 소개이건 영화의 소개이건 첫 단어부터 `클론` 또는 `복제 인간`이 어쩌고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책 뒷표지에도 그렇게 찍혀있다. 다 읽고 난 후 새삼 더 화가 난다. 참 엄청난 스포일러인데 마치 작품을 읽기 전 필요한 사전 지식처럼 까발리고 있는 것에 대해. 그러면서 나도 그들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추리소설, 진짜 SF, 스릴러를 읽은 후 장르소설이 아닌 소설을 읽어서 그런가. 다시 `그냥 소설`, 무엇보다 인간이 전면에 등장하는 소설을 읽어냈다는 일종의 성취감. 그리고 뭔가 아릿한 기분은.

2005년 맨부커 쇼트리스트에 있다는데 도대체 2005년 수상작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길래 싶어 검색해봤더니 2007년 번역본 출판, 현재는 역시(?) 품절. 중고책은 이 인간들이 두배도 넘는 가격을 매겨놨다. 쳇, 양심 없는 인간들. 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소유욕이 불끈. 알라딘 품절도서센터에 의뢰. 전에도 한 서너 번 시도해봤지만 성공한 적이 없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만.

다음 날 덧붙임.
1. 왜 이들은 도망치거나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진짜 SF, 산으로 올라가는 이야기가 되었을까? 헤일셤의 교육이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그런대로 체제에 순응하고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이건 그냥 수많은 클론들 중 캐시 H.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볼 수 없는 소설 속 세계 다른 곳에서는 시스템에서 도망치거나 심지어 반란을 꾀하는 클론들도 있겠지? 사실 말이 클론이지 클론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개체는 단 하나도 없다. 일란성 쌍동이가 동일인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2. 이들의 여정은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잊을 수 없는 안드로이드 로이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되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어떤 단계(?)에서 맞닥뜨리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영혼`이란 것이 역할이 그런 것인지. 그러게 캐시, 그 여자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나오지 그랬어.

3. 디스토피아 SF로서의 측면에 대한 질문. 이 소설에서 복제인간의 용도(!)는 장기제공(`기증` 아니라)용이다. 장기만 배양하는 기술 대신 인간 전체를 복제 생산해서 장기를 하나씩 꺼내는 기술이 발달했다는 건 전자가 기술적으로 더 어려운 일이어서 그런가? 기술보다 더 중요한 윤리적 측면에서 전자라면 충분히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만들지 않고 받아들여질 것 같은데. 최고 네 번까지의 제공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나밖에 없는 심장은 아마 가장 마지막에 떼어내게 되겠지. 그 전에 신장 하나, 간 일부, 췌장 일부(?)까지? 각막이나 뼈 같은 건 당장 복제인간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테니 최후의 단계가 아니면 떼내기 어렵겠지. 정말 디스토피아적 상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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