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곳의 포플러나무를 좋아합니다.
때로는 보랏빛으로 칭얼거리고때로는 선홍빛으로 얼굴을 붉히는 - P71

돌멩이가 넘어뜨린 것이 자신의 사랑이고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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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구멍 뚫린 생이 되어세상의 찬바람에 번쩍, 깨어버린아이가 되고 말았어요. - P239

남 탓은 중독이다. - P71

진정한 멋 멋사람은 자신만의어떤 사치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위해나머지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제대로 된 사치는 최고의 절약이고최고의 자기 절제니까 - P46

광야의 밤광야의 밤은어둠이 크다.
오늘 밤은야생화 요를 깔고별 이불을 덮고ECT바람의 노래로잠이 든다.
그대만 곁에 있으면좋은 밤이련만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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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나의 소설 E를 열어보는걸로 다시 시작하라고 했다. 그러면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날 돌아와 E를 열었다. 2020년 11월이었다. 다시 쓰기시작했다. 펼쳤다 덮었다, 아팠다 아프지 않았다 하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2021년 11월, 최종 원고 상태인 E를 출판사의 담당 편집자에게 보낼 수 있었다.
E는 2022년 3월 출간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아프지않다. - P207

4. 무대가 끝난 뒤보통 나는 좀 운다. 글 쓰는 사람들이 다들 그런지는 잘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글을 다 쓰고 나서 읽고, 운다. 내가쓴 모든 글을 읽고 우는 것은 아니고, 어떤 글은 읽고 나면가슴이 뻐렁치는 때도 있다.( 뻐렁치다‘ 라는 표현을 글에 써도되는지는 모르겠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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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눈여겨보지 않았으나 헛간 가로대는 끝 쪽이 삭아서 조금 흔들면 연결 부분이 쉽게 빠져나왔다. 그는쇠사슬을 빼내고 오른손을 푼 뒤에도 헛간 바깥으로 나가지않고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헛간 안에는 짚더미, 밧줄,
나무 막대, 여러 가지 농기구 등 그가 잘 알지 못하는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그런 물건들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그는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여자와 그 오빠 사이의 대화를 엿들었다.
99
"사람을 짐승처럼 헛간에 계속 가둬둘 수는 없잖아요."
여자가 말했다. 여자의 오빠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괴물한테서 도망친 놈이다. 이 집 안에 들여선 안 돼. 여기 오래 둘 수도 없고." - P213

그리고 그는 알아야 했다. 괴물이 대체 무엇인지, 어째서제물이 있어야 하는지,
자신이 누구이며 어째서 제물로 선택되었는지,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헛간의 문이 열렸다.
회색 눈의 여지가 소리 없이 들어왔다. - P214

그는 사슬을 쓰다듬으며 발없이 이자를 치다보있다.
"그러니까…. 복수하러 있다면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그리고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침묵했다. 잠시 기다리다가 여자가 불었다.
"거기 아직 있어요?"
그는 쇠사슬을 땅에 내던졌다. 그리고 여자의 하얀 얼굴을양손으로 감싸 안고 여자에게 입 맞추었다. - P218

‘그것‘은 발톱으로 그의 웃옷을 찢어 벗긴 뒤에 목을 누르고 부리를 갖다 댔다. 그는 잠시 어떻게 될지 긴장하며 눈을질끈 감았다. - P222

쇠사슬이 진부리 옆에는 새파란 눈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푸른색은 처음 마주 대하는 자에게 충격을 줄 정도로 깊고 맑고, 그리고 잔혹했다. - P223

‘요령‘이 없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런 요령‘
을 남들은 대체 어디서 배워오는 것인지, 그녀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돈을 최대한 빨리 많이 벌어서 더 넓은 집과 더 비싼 차를 사고 자식을 수업료 비싼 영어 유치원과 경쟁률 높은 사립 학교에 집어넣고 계절마다 온 가족이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남 보기에 번듯한 삶일 수는 있어도 그녀가원하는 인생은 아니었다. 그녀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원했고 이웃과 사이좋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동네 공동체를 찾고 있었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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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드라마에도 수많은 조연이 있다. 주인공의 가족이나 친구, 혹은 주인공이 다니는 일터의 누군가, 빌런의 수하와 그 수하의 수하. 이보다 더욱더 작은 역할도 많다. 극 중에 이들의 배경이나 삶의 궤적까지 상세히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이들에 대해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꽤 상세히 소개해놓은 글을 종종 만나볼 수 있다. 과연 누가 열어볼지 모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작가가 정성스레 꾸려놓은 개개인의 세계인 것이다. 가령 MBC 아침드라마 <이브의 사랑>에는 주인공 진송아의 집 입주도우미의 딸 강세나가 조연으로 나오는데, 조연인 세나보다도 훨씬 비중이 적은 그의 이모 오영자 씨에게도 아래와 같이 복잡다단한 세계가 깔려 있다. - P64

언젠가 페이스북에 가끔 뜨는 ‘남선우 님의 N년 전 오늘‘에 등장한 이십대 후반의 나는 낯부끄러운 실수담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은 뒤
"병신같이 왜 그랬을까"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그 후 장애인 친구를 여럿 사귄 나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병신‘이라는말이 그들을 얼마나 힘 빠지게 하는지 알고 있다. N년 전 글을 보면서 나는 그 실수를 저질렀을 때보다 훨씬 더 낯이 부끄러워졌다. 다시또 N년이 흐르고 또 언젠가 지금 나의 언어나 행동을 살펴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어쩌면 이 책도 남들이 읽지 못하도록 있는 대로 사 모아 없애버리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 P70

그런데 며칠 후 누군가가 내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
"감사합니당~~"
드라마에서 어머님이자 며느리인 경숙을 연기한 김혜리 배우였다. 김혜리 배우는 아마도 #어머님은내며느리 해시태그를 검색하다가내 계정을 발견하신 것 같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황급히 내가 쓴 글을 다시 살펴보았다. 칭찬이었다고 항변하는 것만으로는 이 부끄러움의 원인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 말걸, 제목으로는‘ 이라고 하지 말걸, 무엇보다도 ‘막장‘이라고 하지 말걸….‘
그럼에도 칭찬으로 여기고 감사하다는 댓글을 달아주신 너그러운 김혜리 배우님께 부끄럽고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가 드라마 〈질투>를 보며 첫눈에 사랑에 빠졌던, 주인공 하경이보다 좋아했던 체리 언니가 아니던가…. 335 주 전의 나는 용기를 내어 김혜리 배우님께 "어린 저에게 세상에서 우주에서 가장 예쁘셨던 배우님, 여전히 정말 너무할 정도로 아름다우십니다!!"라는 댓글을 다시 달았고, 배우님은 "우~~~~ 왕~~ 넘 넘치는 칭찬인디요 ???^^ 더더더!!! 열씨미 하게씀당~^^" 이라고 재차 답하셨다.
‘어린 저에게‘라고 한정하지 말걸, ‘여전히‘라는 말 붙이지 말걸, 외모 칭찬하지 말걸….‘ - P71

국어사전에서 ‘막장‘을 찾아보니, 다섯 가지 뜻이 나왔다. ‘선자 서까래의 마지막 서까래‘가 첫 번째 뜻이고 ‘갱도의 막다른 곳, 혹은 거기서 하는 일‘이 두 번째, 그리고 ‘끝장‘, ‘허드레로 먹기 위하여 간단하게 담근 된장‘, ‘마지막 장, 특정한 상황의 마지막 장에 다다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풀이가 이어졌다. 아마도 막장 드라마는 막다른 곳에 있는 드라마거나 드라마라는 장르가 갈 수 있는마지막 장에 다다른 드라마, 끝장난 드라마, 혹은 허드레로 방영하기 위하여 간단히 찍은 드라마라는 의미일 게다. 극단적인 설정, 조악한세트, 한정된 배경 등 아침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한계나 단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막장‘ 드라마가 그것이 막다랐다거나 (실제로 아침드라마의존립은 한참 전부터 막다른 길에 놓였다), 끝장났다거나(실제로 아침드라마는 2021년 9월에 끝장났다), 허드레라는 의미인지 알았더라면 그렇게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판을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뚜렷한 이유와 근거를 들어 성의 있게 써 내려간 비평과 ‘막장이네‘라는 손쉬운 평가의 무게는 엄연히 다르다는 말이다.
한편, 2009년 3월 3일 대한석탄공사의 조관일 사장은 언론사에 대대적인 보도자료를 냈다. 막장 드라마, 막장 국회 등 어떤 대상의 속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막장‘ 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달라는 간절하고 강력한 호소문이었다. - P72

널따랗게 드러누운 와불과 천불천탑이 있는 화순 운주사는 드라마 <추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고, 올려다보기 어려울 만큼 키가 큰 메타세쿼이아가 좁은 길 양쪽에 촘촘히 자라 있는 남이섬 산책로에는 그곳이 <겨울연가 촬영지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사인물이설치되어 있다. 남산의 ‘삼순이 계단 과 홍대의 ‘커피프린스 골목은 이제는 거의 지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드라마 속 촬영 장소는 드라마의 생명을 현실로, 그리고 오늘로 연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는 밥집 여천식당이 있는 용산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의 아저씨>가 전해준 추운 겨울의 먹먹한 감정이 떠오르고, 예전에도 즐겨 찾던 명지대 앞 이정희떡볶이가 멜로가 체질에 나온 이후 새삼 그곳에만 가면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일 테다.
그러나 매우 애석하게도, 아침드라마의 촬영 장소를 일상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은 탓도 있겠지만, 120부작이 일반적인 아침드라마가 주 배경이 되는 장소를 실제 공간으로 섭외해 촬영을 해나가기란 얼핏 상상해보아도 굉장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아침드라마의 장면 대부분은 세트장에서 만들어지는 듯하다. 회장님의 저택도 주인공의 단칸방도 늘 똑같은 각도에서만 촬영되기에, 우리는 회장님 소파의 맞은편을 본 적이 없다. 아침드라마가 비현실적이라는 일부 지적은 그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침드라마와 현실을 이어주는 실제 장소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종영하고 나면 쉽게 잊히는 원인도 얼마간은 그 때문이지 않을까?? - P72

당시 우리 가족은 아침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돈까스의 향연에 괴로워했다. 광주가 하루도 빠짐없이 시켜 먹는 저 돈까스는 대체 얼마나 맛있는 것일까, 해진이 개발한 저 소스는 과연 어떤 맛이길래 저리도 반응이 좋은 것일까. 정직하고 단정한 해진의 성격 탓에 좋은 재료와 깨끗한 기름을 쓸 테니 맛있을 수밖에 없겠지. 그러니까 저들은 기념일에도 돈까스를 튀겨 먹는 것이겠지.…. 우리는 오늘 점심에는반드시 돈까스를 먹겠다고 다짐하며 집을 나서지만 몇 시간 지나면 그것을 금방 잊어버렸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또 펼쳐지는 돈까스 삼매경에 괴로워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아침에 생각했던 메뉴를 점심이 되면 잊듯이, 나는 <맛 좀 보실래요)의 종영 후 이 드라마를 다시떠올린 적이 없었다. 물론 돈까스집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이름도 귀여운 드라마 속 돈까스집은몇 달 전 아침마다 우리를 깔깔 웃게 했던 드라마의 기억을 단숨에 불러일으킨 것이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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