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불타는 팔월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습지의 눅눅한 숨결은 안개가 되어 참나무와 전나무에 늘어져 있었다. 팔메토 야자나무 덤불은 이상하게 고요해서 못에서 날아오른 왜가리의 느릿한 날갯짓 소리만들렸다. - P17

엄마는 그날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 얘기는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특히 아버지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생선 비린내와 싸구려 술 냄새를 풍기고 들어와서 냄비 뚜껑을 쩔껑거리며 만지작거렸다. - P21

다음 날 아침에도 카야는 계단에 앉아 망을 보았다. 까만 눈으로 길바닥에 구멍을 뚫을 기세로 노려보았다. 저 멀리 습지는 안개를 베일처럼둘러쓰고 있었다. - P23

카야는 포치로 돌아와 한참을 기다렸다. 길 끝을 바라보면서도 절대울지 않았다. 눈으로는 계속 찾아도 얼굴은 무표정했고 입은 일자로 다물고 있었다. 엄마는 그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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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여자들은새로운 장소를 필요로 한다. - P113

한발 나아가 노동에 대한 대가를 금전으로도 지불할 수 있다면 더좋겠다. 1인분의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건 1인분의 가사노동이다. - P135

에디터로 오래 일하면서 가장 자주 받았던 질문은 이런 거다. "인터뷰했던 사람들 중에 누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기억에 남는가, 의 자리에 다른 표현―멋있나 똑똑한가 잘생겼나 달변인가 등등―이 들어갈 때도 있지만 사람들의 흥미는 대체로 올림픽적이다. 최고를 가리고 1등에게 메달을 수여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 P151

아끼는 에디터 후배들을 만나면 인스타그램을 잘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매체 공식 계정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질문은 아니다. 멋진 물건을 사고 근사한 장소에 갔다는 인증을자랑하라는 얘기도 아니다. 요즘 무슨 일을 했는지, 그달 가장 뿌듯한 업무 하나씩이라도 개인 계정에 꼭 올리라고 - P101

모든 계약 이전에는 생략되는 선행 단계가 있다는 점을기억하자. 바로 협상이다. 계약서에 적힌 내용은 돌에 새겨져 시나이 산에서 떨어진 십계명이 아니다. 하늘 아래 모든조건은 내가 협상하기 나름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협상을 하지 않고 상대편에서 제시하는 대로 계약서를 받아들였다면? 고칠 부분이 분명 있다는 뜻이다. - P83

어떤 도구를 언제 정확히 사용하느냐 혹은 덜 사용하느냐는좋은 결과물을 얻게도 하지만 우리의 수고를 덜어주기도 한다. 지금 써야 할 도구가 메일인가 전화인가 혹은 메신저인가를 잘 판단하고 활용하다 보면 어느새 능숙하게 업무를잘 요리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 P49

그는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말고!"가 누구나 그 상황에서라면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평범하고도 정확하게 필요했던 말이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은 걸우리 모두가 봤다. - P137

눈에 보인다는 것은 중요하다. 많이 보인다는 것은 더욱 의미 있다. 2021년을 목격하고 경험한 이후의 여성들은다를 것이며 점점 더 많이 서로의 눈에 보일 것이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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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자신의 재난지원금을 나에게 와서 썼다.
그리고 나는 자금수미를 만날 수 없다 - P51

수미는 왜 그때가 생각났을까.
"그때 내가 예뻤나?"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수미가 대답을 했다 - P79

여덟 시간 뒤 나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고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수미는 기정시 67번 확진자가 되었다. - P89

"근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따로 있어요."
강민서가 말했다.
"잠깐 내가 맞혀볼게. 아 나 알 거 같아."
백은호가 손을 휘젓다가 멈췄다. - P103

이 글은 내담자 강수영이 만들어간 모래상자에 대한 초기 기록이다. - P135

운내에 갈 때 나는 트럭을 타고 갔다. 유리 지게를 실은 크지 않은 포터 트럭이었다. 나를 운내까지 태우고 갔던 어른은 당시 이십팔 세로 코를 삼키는 분이었다. 유리가 실려 있지 않음에도 트럭을 천천히 운전하셨고 터널이 나오면 어깨를 오므리면서 코를끌어당겨 먹으셨다. 국도변으로 ‘원조‘ 간판을 단 식당들이 나타났을 땐 내게 갈비를 좋아하냐고 물으셨다. - P155

승미는 말했다. "피를 빼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생각해.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새삶을 얻었다."

술에 취하면 아무 말이나 다 하는 주사가 있는 수미가 어느 날술을 먹다 나한테 묻는다.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사는 건 어떤 기분이야? 어쩌면 이렇게 물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사는 남자를 계소 사랑한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 - P71

"뭐야, 하늘색이잖아." 내가 말했다.
"군청색보고 웬 하늘색." 승미가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등에 막 불이 켜지는 걸 함께 본다는 건 뭔가 마법 같고 선물 같은 데가 있었다. 그곳에 서서 같이 등을 보고 있자 경은 왠지 민과아주 가까워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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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 년 전 여름, 7월 중순, 탈은 잔디 깎는 기계의 굉음 속에서 내게 고함을 질러대고 있다. 죽음까지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았을 때다. 녀석은 입을 움직거리고 있지만 나는 녀석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탈은 열 살이고 잔디를 깎아서는 안 되는데, 그러나 그러고 있다. 탈의 부모님은 이글 호수로 낚시를 갔고, 탈의 형인 카일이 탈에게 50센트를 주며 뒷마당 일을 마무리하라고 했다. - P9

잠시 뒤 나는 녀석의 목소리를 듣는다. "여기 냄새 한번 진짜구리다!" 웃기도 하고 다른 말도 하는데, 나는 그 말은 알아들을수가 없다 - P13

"그런데 나는 어딘가로 움직여야 해." 어머니는 웃으며 말하곤 했다. "그리고 벌써 늦었어." - P25

"엄마에게 전해줘라."
1744 34나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텍사스에 계신 줄 알았어요."
"아직은 아니야. 시내에 머무르고 있었어. 처음에는 떠날 수가없었거든. 하지만 지금은 떠날 수 있어." 아버지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깨끗이 청산하려고 한다."

99
"하는 행동이 꼭 십대 같네."
"맞아." 그녀가 말한다. "굉장히 똑똑한 십대." - P55

"가자."형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가보자."
"싫어. 절대 안 가."
"가자, 동생. 저 여자가 너를 원하잖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좋아. 좋을 대로 해."형은 모로 눕듯 진흙투성이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여자들을 향해 헤엄쳐 갔다. - P139

식당으로 돌아와보니 뒤쪽으로 아이들이 잔뜩 모여들어 있었다. 그쪽으로 걸어갔더니 태너가 구경하고 있는 게 보였다. 태너는 혼자였다. - P177

방이 두 개인 로버트의 아파트는 캠퍼스 근처 한국 식당 위층에 있는, 천장이 경사진 조그만 집이었다. - P91

"하는 행동이 꼭 십대 같네.‘
"맞아." 그녀가 말한다. - P55

"믿지 못할길"그 것이 더그 형에게 말한다. - P149

저녁마다 내 말은 그러니까, 아버지가 집에 있는 시기의 저마다 나는 과제로 내준 읽기 책을 뒤적거리고, 발 아래쪽에서 편집 장비가 작동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부엌 식탁에 오래도록 앉아 있곤 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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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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