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아래 정차한 그 차에서 누군가 내려 서둘러 나무덱을 밟아 내려오는 것이 나는 눈송이들을 통과해 오는 그 얼굴을 더 정확히 보고 싶은 마음에 발을 들었고 그가 가까이 왔을 때 오래전처럼 또 손을 들어 인사했다. - P178

화려하게 빛나던 크리스마스트리 조명도 꺼졌을 즈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홉살의 내가 하바나 클럽 앞에서 우두커니 맞고 있었던 눈이, 그뒤로 수십번 맞닥뜨렸지만번도 시시하지 않았던 그 작고 특별한 것들이 집에 가야 - P178

소봄씨, 막상 아빠가 돌아가실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영영 이별이라고 생각하니까 두렵고 화가나지 않았어?"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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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저 핫……… 이 유명한 가수였어? - P41

-너, 전생에 쌓은 업이 엄청나게 많구나? - P42

나는 종종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랑을 하곤 한다. 어쨌든………… - P45

그날 밤부터 나는 열에 시달렸고 부모님은 여행 내내 방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 엄마는 입덧을 시작했다. 방안에서 헛구역질을 하는 엄마를 두고 나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았다. 왜 그날 본 티브이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그때의 기분만은 이렇게 생생한데. - P47

ㅡ삶에 절망을 느꼈던 사람은 스님이 될 수 없다는 거야?
외삼촌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지만 묘하게 자신은 없어 보였다.
나는 외삼촌을 더 괴롭히고 싶었다. - P51

외삼촌이 돈을 주고 꽃을 샀다.
-누나 이름 써야지. - P57

-아빠, 엄마는 아빠가 없어서 힘들어했어.
그래.
-그런데 아빠가 없는 엄마를 견디는 우리가 더 힘들었어. - P63

외할아버지 문학선씨가 죽기 직전에 미주는 친구들과 영화관에서 해외 인디 밴드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에코 콘셉트의 다큐멘터리여서 밴드가 연주하는 모든 악기에 전선이 꽂혀 있지 않았다. 멤버들은 무너져내린 성벽 앞이나 언덕 위, 심지어는빙하 위에서까지 연주했다. 그래서 미주는 영화를 보는 내내 촬영장비의 전선은 어디에 꽂혀 있었을지 궁금해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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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들어가본 교회에는 애들이 우글거렸다. - P143

"뭘 했는데?"
나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여태껏 말을 걸고는 막상내가 입을 떼자 남자애는 마치 동물이나 사물같은 것이말을 걸어온 양 흠칫 놀랐다.
새벽예배를 안 빠졌다." - P145

현지씨가 여러번 말한 소개팅에 나가기로 한 건 바로그 이름 때문이었다. 주찬성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동명이인이리라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 이 일렁였으니까.
만나기를 기대하는 건지 피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가운데에서도 그랬다. 살면서 같은 이름의 사람을 여러번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그 이름은 그렇게 흔하지도 않은데. 그 희박한 가능성을 실현해보는 것만으로도만남은 해볼 만하게 느껴졌다. - P151

그렇게 한 단어씩 더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의어느 날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 P157

우리에게 해변의 여름날처럼 늘 좋은 날들이 계속는 않았다. 중학교 졸업반이 되어 입시가 다가오자 주찬성은 곧 떨어질 낙엽처럼 예민하고 불안해했다. - P165

가로등 아래 정차한 그 차에서 누군가 내려 서둘러 나무덱을 밟아 내려오는 것이 나는 눈송이들을 통과해 오는 그 얼굴을 더 정확히 보고 싶은 마음에 발을 들었고 그가 가까이 왔을 때 오래전처럼 또 손을 들어 인사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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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받는 사람을 보면, 함께 울었다.
궁핍한 사람을 보면, 나도 함께 마음아파하였다.
내가 바라던 행복은 오지 않고 화가들이닥쳤구나.
빛을 바랐더니 어둠이 밀어닥쳤다. - P39

신은 그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히 입증하는 증거 앞에서 오히려 신이 발명되고야마는 역설. 가장 끔찍한 고통을 겪은 인간이 오히려 신 앞에 무릎을 꿇기를 선택하는 아이러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마음들이마나 많았을까.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아이를 잃은 부모가 갑자기독실한 신앙인이 된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무신론자에게 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란 곧 사유와 의지의 패배를 뜻할 뿐이지만, 고통의 무의미를 견딜 수 없어 신을 발명한 이들을 누가 감히 ‘패배한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신을 발명하기 전에먼저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 P44

내 삶은 폐쇄되기 전에 두번 닫혔다.
그러나 두고볼 일.
불멸이 나에게세번째 사건을 보여줄지는. - P46

디킨슨의 시를 읽으면 이 사람은 슬픔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슬픔의 어떤 깊은 곳까지 이 사람만은 걸어들어갔구나 싶어진다. "고통스러운 표정이 나는 좋다. 그게 진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언제나 진실한 것은오직 고통뿐이라는 것.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아니면 이런문장을 쓸 수 없을 것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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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는 휴대폰 너머로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얘, 나 여행 갈 동안 우리 뜨개방 좀 봐줘.
-내가 거길 어떻게 봐. - P10

그래서, 나는 휴먼고시원의 생활을 정리하고 뜨개방 일도 미리배울 겸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거였다. - P13

우리는 그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쇼호스트가 하는 말만 잠자코 들어야 했다. - P17

- 힘을 빼.
-아무리 빼도 안돼.
- 네가 힘을 빼야 실도 힘을 빼지.
-그게 내 맘대로 안 된다니까.
-실이 네 손에서 빠져나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쥐어. 그럼실에 자연스레 공간이 생겨나. 그 사이로 바늘을 통과시키면 돼. - P21

- 무섭지 않았어요? 돌아올 때.
나도 왠지 힘을 주어 말하게 되었다.
-돌아올 때 무서웠다기보다는…………그는 말을 골랐다.
- 돌아오지 못할까봐 그게 내내 무서웠던 것 같아요.
나는 핫도그를 우물거리며 그 말을 곱씹었다. 한낮의 청년몰은한산했다. - P27

b의 취업과 친구의 생일을 겸해 축하 파티를 한다고 했다. 나는둘에게 줄 선물로 102살롱에서 기도하는 손 모양의 향초와 늘봄가죽공방에서 갈색 카드지갑을 각각 두 개씩 샀다.
ㅡ핫도그는 선물을 못하네요.
라고 말하며 그에게 짧게 서울에 다녀온다고 하자 그는 내게 핫도그를 주며-선물.
이라고 말했다. - P32

나는 스웨터에 팬티 차림으로 깔깔 웃었다. 이모는 곧 먼 곳으로 떠날예정이었고, 나는 이미 떠나온 기분이었다.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네, 생각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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