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임신이다. 나는 하루 종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반복하며 아무 행동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갔다. 극단적으로 말해 나는 ‘아기 집‘, 그 이상도 이하도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 P145

그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곧 제주에 있는 나를만나러 오기로 한 이소호 시인이었다. 소호는 내게 줄 선물을사러 백화점에 갔다가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임신축하 선물로 아기 것은 많은데 엄마에게 주는 선물은 별로없었다는 것이었다. 아기 용품은 종류가 다양하지만 이제막 엄마가 된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는 것은 튼살 크림과오일 정도뿐이었다고. 임신이라는 것은 아기의 일이 아니라엄마의 일인데 정작 엄마가 받을 수 있는 축하는 한정되어있는 것 같아서 본인이 더 서운했다는 말이었다. - P148

생살을 찢고 나왔으니나와 너우리의 고향은 차가운 칼이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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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버지에게는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인차 워쩔라냐?"
오랜만인지 처음인지 종일 술을 마시지 않은 작은아버지가 물었다.
"백운산이든 지리산이든 저 혼자 다니면서 좋은 자리에 묻으려구요." - P255

"젊은 친구들 한 서이만 불러주소. 요거 쪼깨 옮겨야 쓰겄네."
물을 것도 없이 외양만 봐도 도시락이었다. - P245

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들을 걸 그랬다. - P268

"아부지가 벤소 푸다가 꽁초를 봤단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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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차이는 도대체 뭔가. 왜 규희와 너는 진짜 못하는 일을 나는종종, 자주, 제법 즐기며 하고 마는 걸까. 나는 규희가 사라지고나서야, 여기에 없고 나서야 규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너를이루는 조각과 내 조각들을 맞춰보고 비교한다. 화가나서 던지기도 하고 소중하게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기이한 모양의 성을 쌓는다. 그게 규희가 떠난 뒤 내가 유일하게 몰두하는 일이다. - P67

손동씨, 너무 마음에 들려고 하지 말고 - P133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저도 할 거예요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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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내도 할 만큼 했다! 대체 뭘더해야되는데? 그냥 자살하까?" - P53

"삼성? 가기 전까진 좋았제. 꼴통이 드디어 사람 구실하겠다구 가족끼리 잔치까지 벌였으야. 근디 막상 가보니깐 장난이 아니여. 하루죙일 여덟시부터 열시까지 라인서 빵이 치는데 죽겄드라. 연봉이라도 쎄믄 몰겄는디 초봉 3500 받고 할짓은 아니다 싶드라고. 연봉이 팍팍 오르는 것도 아니구. 게다가 구미 거기 주변에 뭐가 있느냐. 죄 논밭인데 돈 벌어봐야쓰잘데도 없고, 기숙사도 규정 허벌나게 빡세서 함부로 나가기도 힘들어부러. 게다가, 어휴. 선배라는 것들이 삼성 부심은또 오지게 부려요잉. 회사가 시키면 군말 없이 하는 게 삼성맨이라나. 누가 들으면 즈덜이 이병철 이건흰 줄 알겄어 기냥." - P57

"아부지, 꼭 나을 낍니더. 꼭."
그제야 아버지는 다 쉰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옹알댔다.
"내는 아직 못 죽는다………… 두 달 더 채워야 된다……."
부자간 대화는 거기서 끝. - P61

2021년 6월, 건설 근로자 공제회라는곳에서 문자가 왔다.
법이 바뀌면서 아버지의 퇴직금을 받아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일한 기간은 딱 십 개월. 제대로 된 일이라곤 안 해봤던 아버지는 노가다판에서라도 일 년을 꼭 채워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눈가가 매워졌다. - P64

그땐 도저히 이성의 줄자를 갖다댈 수가 없었다. - P72

"행님, 차만 비싼 게 더 싸게 먹힙니다. 차가 좋으면 나머진짜가리라도 다 믿어주거등. 요요 시계, 가방, 지갑, 구두, 벨트, 싹 다 짭퉁이라예. 메이드인 차이나! 일마들 정가 주면 오천 넘어갈걸?" - P79

그제야 동생이 그토록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이유를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화려하게 놀기 위해 노력한다. 그 나름 멋진 삶의 방식 아닌가. 헤어지는 길에 돈을 뽑아 동생에게 20만원을 건네주었다. 재밌는 경험 시켜줘서고맙다는 인사에 동생은 씩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은 짝퉁이 아니라 진퉁이었다. - P83

불행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옮겨가겠지. 그럴바에 살아남아 불행과 싸워 이기는 게 낫지 않을까.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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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교사 입장에서 핼러윈처럼 소품이 많이 필요한행사는 무척 번거롭습니다. 적어도 몇 주 전부터 밤잠을 설치며 행사를 준비해야 하죠. 물론 우리 유치원이 더 유난이긴 해요. 간판에 ‘프리미엄‘이 붙은 영어유치원이거든요. - P9

싶은저는 그날 집에서 엄마에게 악을 지르며 떼썼어요. 다음 날은 다른 티셔츠를 입었지만, 참담한 기분은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힘겹게 등교한 후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옛날 교실들은 뒷문 옆에 꼭 거울이달려 있었거든요. 문득 돌아본 거울 안에 제가 없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 P11

제 품에 남은 건 유령의 허물 같은 흰 천뿐이었어요. 그리고 천마저도 손안에서 미끄러져 바닥을 굴렀죠. 이게, 핼러윈 실종 사건의 전말입니다. - P15

옥주는 집에 들어오기 전 마주했던 낯선 눈을떠올렸다. 석류알처럼 붉은 눈과 쓰레기 더미를 뒤질 만큼의 허기를 상상했다. - P25

저걸 어떻게 한담. - P33

상처 치료는 금방 끝났다. 의사는 당분간 상처 부위에절대 물이 닿으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진통제와 소염제를처방해주었다. 그러면서 피곤한 목소리로 옥주를 문 개가광견병에 걸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옥주는사람이 광견병에 걸리면 죽을 때까지 갈증에 시달린다는사실을 처음 알았다. - P35

옥주는 자신이 언제든지 먹힐 수 있다는 걸알았다. 자신이 키우는 건 말 안 듣는 손주나, 길고양이 같은 게 아니었다. - P41

"관 짝이 메마른 걸 봐서는 물이 고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확인했으니 다시 덮을까요?"
옥주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 P47

냉동고 정리를 끝낸 후에, 옥주는 석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올라가자. 가서 과일이나 먹자."
석류가 옥주의 손을 붙잡았고, 둘은 함께 지하실 계단을 올랐다. 창문을 열었더니 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어왔다. 석류는 텔레비전 앞에 누워 꾸벅꾸벅 졸았다. 옥주는 늦여름의 습기를 느끼며 흉터가 남은 팔로 과일을 씻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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