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물은 밝은색과 어두운색으로 따로 모아 돌려야 한다’는 것부터 ‘좁은 욕실에서는 앉아서 샤워를 하면 사방에 물이 튀지 않는다‘는 것을 조심히 알려주던 나의 애인들. 내가 돈이 없고 제대로 된 직업이 없을 때도 한결같이나를 인정해주고 내 꿈을 응원해주었던 그들과 나는 함께 성장했다. 뛰어난 학벌도 대단한 배경도 없는 우리였지만, 우리는 서로를 그 자체로 존중했다. - P82

이것도 시간순으로 정리해서 그렇지 걸으면서 들은 언니의 이야기는 이리저리 마구 튀어 다녔다. 10년이라는세월은 또 그럴 만한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그럼에도 그‘그러다’와 ‘어쩌다’를 이해하고 싶어 계속 계속 물었다. 계속 묻다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P89

"응응,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나 보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럼에도 ‘그러다’와 ‘어쩌다‘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아버리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각지도 못했던 우연이,
순간의 강렬한 충동이, 평생의 꿈이,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니 착각이었던 것들이 ‘그러다’와 ‘어쩌다’를 만들었을것이므로, - P91

그러고 보면 걷기와 글쓰기는 닮았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걷다 보면,
쓰다 보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반성하게 되고 스스로 가야 할 방향을 잡게 된다. 타의가 아닌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고, 직접 문장을 만들어내면서 얻은 깨달음은 정말로힘이 세다. - P96

"영화 <벌새〉 있잖아. 거기에 그 한문 선생님"
"그 김새벽 배우?" - P100

싸우고, 미움받고, 손절당하고, 장문의 카톡을 받으며깨달은 바를 쓰다 보면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보였다. 덕분에 30대에 들어서서야 겨우, 내게 어떤 문제가 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 P110

물론 울고 싶을 땐, 우는 게 좋다. 사람이 계속 울다보면 놀랍게도 기뻐서 울게 되는 순간과도 만나게 된다. - P117

엄마는 같이 죽자고 했다가 미안하다며 시의 한 구절을 보냈다가 정신 차리고 결혼이나 하라고 했다가 너의꿈을 찾으라고 했다. 이 혼란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나는 점점 더 시니컬해졌다. 냉소적인 태도는어쩌면 나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엄마는 이런 나를 두고 아주 냉정하다고 자기밖에 모른다고또 비난했다. - P127

‘김얀 작가‘를 나에게 소개해준 이도 창간 때부터 한겨레 신문을 구독한 엄마였다. 나는 엄마로 인하여, 엄마 덕분에, 그리고 엄마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 선생님의조언이 무슨 의미였는지 이제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도같다. 나는 엄마 덕분에 예술을 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게되었고,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온전한 나만의 영역이다. - P129

우리는 이렇게 하나의 개인이 되어가고 있다. 모녀 사이라는 엄청나게 끈적끈적한, 애증으로 똘똘 뭉친 관계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단란하고 화합하는 모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충족하고 행복한 하나의 개인이되기 위해서. 그리고 각자 그런 인간이 된 그때에서야 비로소 우리 둘의 이야기가 새로 쓰일 것이다. 그때의 나는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고, 엄마도 그럴 것이니 우리의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 P133

"언니가 이러니까 어머니는 반야심경을 필사하지않고는 못 견디셨던 거야." - P137

엄마의 기도로 나는 이렇게 또 한 살을 먹는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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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나를 상상해본 적 없던 것처럼, 내가 월세를 받는 집주인이 되리라고는 단연코 상상해본 적이 없다. - P35

하지만 자꾸 본인들은 ‘젊은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는 명분을 강조했다. - P39

‘빨리 부자가 되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일단, 부자의 기준을 낮게 잡고, 돈이 모일수록 함께 솟아나는 욕심을 조금씩만 덜어낸다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인서울 아파트나 한강변 아파트를목표로 잡았다면, 나는 지금도 원치 않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을 것이다. - P40

"야야, 당장 이 닦아라."
누워 빈둥거리고 있는 내게 얀니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나와 매칭된 틴더남을 보더니 느낌이 온다며 빨리나가보라는 것이었다. - P45

각종 보수 연합 어르신들께 죄송하지만, 나는 섹스가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섹스란, 호기심의 한 조각이고 상대방을 더 알고 싶은 욕망이고 대화의 한 방식이다. "그래도 섹스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인데 어쩌고" 하며 나를 꾸짖으려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과연 어제 섹스를 한 사람들 중에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한 사람은 과연 몇 프로나 될까?‘ 나의 생각을 바꾸려 하시기보다는 길거리에 버젓이 나와있는 "러시아 미녀 항시 대기"라 적혀 있는 입간판과 강남역 근처 오피스텔 성매매 업소를 전수조사 하는 데 힘써주시길 바란다. - P57

백배와 또래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첫 경험에 관해서는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조금 놀랐다. 여자들은 좋아하는 대상과 섹스를 하고 있으면서도 늘 어딘지 모를두려움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 P61

‘틴더 관상가‘라는 별명이 생기고 말았다. 틴더를 통해누군가를 만나려고 할 때 ‘이 친구 괜찮을까요?‘ 하고 물어오는 동생들이 제법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플을 통한만남을 선호하지 않지만, 코로나 4년 차를 맞는 청춘들에게 만남의 창구가 귀한 것도 사실이다. 과거, 연애/섹스칼럼을 쓴 나의 이력 때문인지 나에겐 유독 본인의 사생활을 술술 털어놓는 사람이 많다. 수많은 연애경험과 규칙 없던 삶이 이럴 때는 문턱 없는 고해소가 되나 보다. - P79

같은 수업을 듣던교실에서,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여행 중 버스 터미널에서 우연히. 작은 말풍선들로 시작되었던 나의 연인들. 우리는 서로의 이름과 나이, 직업을 몰랐기 때문에 수많은물음표와 함께 서로의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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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에서 왔다 우리의 벌어진 이름은삐약이라든가 야옹이라든가 은사시나무라든가엄마- 하고 입 벌리는 무덤 앞이라든가 - P44

그때 나는 골목에서 양팔벌려도양파 밭을 넘어서 하늘로 떠올라버렸다 - P46

그때 나는 빵을 물면밀밭을 보았고그때 나는 소금을 핥고 동해로 퍼졌고그때 나는 시를 읽고 미간이 뚫렸다그때부터 존재할 수 있었다 - P46

창밖에는 얼굴이북처럼 - P49

조등이 귤처럼 향기로울 때 친척들이 멱살을 쥐고 마당을 뒹군다 분명 장롱 속에 금두꺼비가 있었다니까 바로 그때 두꺼비집을 힘차게 내린다 할머니 가! 사랑해사랑해 바로 지금이야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믿고 달려가 관 틈으론 온갖유채색이 보이지 - P51

참 호쾌하지, 너희 할머니는 민들레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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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문학동네 시인선 184
고명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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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율밤 보는 사람에게만 쌓이는 눈처럼 환하고 아득하고 사라질까 조바심나는 안에서 부푼 말들 차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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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1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shram21 2023-01-1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넵 가능합니다
 

너를 태우고 녀석이 불을 핥으려 한다 아직 칼을 핥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리움이 심한 날엔 강변에 간다 두 시간쯤 녀석은 강을 핥다가 입이 헐어 내 곁에 가로눕는다 나는지친 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개들은 세상이 흑백으로 보인다던데 탄광 속에서 너는 우리를 빛처럼 봤구나 단청을 그려도 이제는 저녁만 보겠네 개의 눈속에 강물은 반짝거리고 칼춤을 추는 마음을 알 것도 같고 그렇게 개와 나와 승들은 저마다 뭘 좀 잊어보려고 함부로 눈이 다 타버렸네 - P21

가장 이른 첫눈을 눈에 담으며 내시는 품에서 도라지를꺼냈다 흙을 뚫고 입과 코가 트일 때까지 흰 다리를 빼곡하게 씹어 삼키며 면포를 펼치고 손끝으로 시를 썼다고 그리고 그는 궁을 넘어 다친 다리로 단풍나무 숲 속의 산소로 갔다고 - P23

맨가슴으로 가장 먼저 선을 넘는 것우리 모두의 안쪽엔 망아지가 있어서 - P23

올리브유: 올리버올리버올리버올리버당신의 이름을 연거푸 말하면 여름이 불타고해바라기유: 맥주를 따르며 웃는 걸 본다를 수개기름: 눈길만으로 불이 붙을 때 - P25

입술이 옴짝달싹 기름을 바르고 리듬을 입고 마음을 업고 무릎을 꿇고미강유: 아름다움에 대해 강하게 말하자쌀눈유처럼 사랑의 눈을 번쩍 뜬 채로몰라유: 전라도로 여행 갈래요 - P25

너희 집 앞에 치솟는 복숭아나무가 되리 - P28

우리가 함께 입을 벌린 순간들제철 음식을 한 번 되돌릴 시간을 - P31

도토리 속엔 도토리 줄기가 푸르게 자라고미더덕 속엔 짙푸른 고래가 웅크려 있고내 머릿속엔 수류탄 같은 기억의 다발이 있어서다디단 행복이 입속을 뒤집어놓을 때노란 침으로 베개가 흠뻑 젖었다당신을 떠올리면 세상이 좋아서나는 기어코 풍선을 터트려버렸다

나는 안쪽에서 부푸는 사랑만 봐요분쑥 떠오르는 얼굴에 전부를 걸어요 - P33

어둠은 어두운 마음을 알아서 어둠 속 어둑한 심장을 거두고어둠은 어두운 시간을 날아서 절룩이는 다리로 흰 떡을삼키네 - P38

둘만 걸을 수 있도록길이 칼이 되도록귤을 밟고 사랑이 칸칸이 불 밝히도록여섯 개의 발바닥이 흠뻑젖도록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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