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석연휴에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를 읽었는데 리뷰를 안써서 뒤늦게 끄적인다.

나는 주로 JTBC 뉴스를 본다. 특별히 손앵커님 나오는 월욜부터 목욜까지는 본방사수 한다. 혹 일 마무리가 안돼 퇴근이 늦어져도 jtbc 뉴스룸을 볼 수 없으면, 컴퓨터를 꺼버리고 그냥 퇴근한다. 이런 나에게 jtbc를 안 본다는 소설 제목은 반칙으로 느껴져 대체 어떤 인간 군상들이기에 jtbc를 안 보는지 궁금했다.

탄핵정국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과 태극기를 든 사람들로 나뉘었듯이, 우리 사회는 둘로 나누어지는 게 참 많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와 용이 날 수 없는 시대로 나뉘고, 소설 제목처럼 jtbc를 보는 사람과 안 보는 사람들로 나눈 세계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박생강 작가는 2015년부터 1년여 소설을 쓰지 않고 생계를 위해 일했다고 한다. 작가 경력 10년이 넘어도 전업작가로는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뜻이다. 근로 조건은 글과 관계되지 않을 것, 추가 근무가 없을 것, 월급은 적어도 상관없으나 지극히 게으르고 덧없이 나른한 망상에 빠지는 성정을 거스리지 않을 것 세 가지였다. 요건에 맞춰 대한민국 상위 1%만 이용한다는 신도시 피트니스 사우나에서 매니저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작가의 말에서 사우나 회원들의 대사 중 70%는 실제로 들은 것이며, 어느 것이 허구이고 현실의 복사판인지 추리해보는 것도 재밌을거라고 밝혔다.

일단 내가 모르는 남자 사우나에서 알몸의 군상들이 뭘 하는지 엿보는 재미와 가독성이 좋아 단숨에 읽었다. 상위 1퍼센트 인간들도 벌거벗으니 별 거 없구만, 가볍게 무시하며 조롱 할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갑질하는 인간이나 을도 못되고 병이 되는 사우나 매니저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확인은 작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비록 어떤 모양이 될지 모르는 호떡 반죽같은 인생일지라도 웃을 수 있는 삶이면 좋지 않은가...

‘웃는 건 중요하다. 단단한 세계의 벽은 웃음 덕에 구멍이 나면서 조금씩 허물어진다. 그 벽에 구멍이 뚫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우리가 사는 관념의 세계는 아주 단단하고 대단해 보이지만 웃음 때문에 작은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으로 빈틈이 보이면서 무너진다.‘(245~6쪽)

공교롭게도 주인공 태권이 사우나 매니저를 그만 둔 날이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이다. 사우나 이름을 ‘헬라홀‘이라 한 것은, 작은 구멍이 뚫려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나고 갑과 을의 관계가 깨지며 양극화된 경제구조가 허물어질 것을 상징한 듯하다.

‘그들은 아랫것인 국민들의 항의에 중간관리자인 국회의원들이 표결로 1퍼센트의 권력자를 밀어내는 현실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세상이 바뀐 거니까.‘(237쪽)

이 소설은 세계문학상에 응모할 때의 제목은 ‘살기 좋은 나라‘였다고 한다. 과연 누구에게 살기 좋은 나라인지 반어적 의미는 있지만, 최순실의 태블릿pc로 국정농단의 실체를 보도해온 ‘jtbc를 안 본다‘처럼 확실하게 치고 들어오는 제목이 좋다. 나도 이 책 제목이 ‘살기 좋은 나라‘였다면 끌리지 않았을지도. 역시 출판사 편집부의 감은 작가보다 한 수 위다.^^

박생강이란 필명으로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로 제13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박진규라는 본명으로 쓴 ‘보광동 안개소년‘이 우리집에 있는데도 안 읽었다. 이 책을 읽은 후 작가에게 끌려 바로 보광동 안개소년도 읽어보았다. 박생강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할 만큼 두 작품이 다 좋았다.

※옥의 티: 249쪽 위 둘째 줄 오타
‘발화와 사건은 같은 ‘가‘기에=>‘시‘기에로 수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