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머니 속의 귀뚜라미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6
레베카 커딜 지음, 에벌린 네스 그림, 이상희 옮김 / 사계절 / 2005년 1월
절판


나는 이런 그림책이 좋다. 색깔을 많이 쓰지 않고 시선을 잡아 끄는 그림과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편집, 독자가 상상의 울타리를 뛰어 넘어 다가설 수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1964년 칼데콧 아너북 선정도서로 처음 학교에 가는 아이의 두려움과 설렘, 자연과 더불어 배우는 지혜와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지 생각케 하는 매력적인 책이다.

주인공 제이는 부모님과 낡은 농가에 사는 여섯 살 소년이다. 제이의 집 어디서나 보이는 언덕은 숲이 우거져 있거나 옥수수가 자라고, 목초지에선 암소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다. 빵을 우물거리며 집을 나서면 부드럽고 따뜻한 흙이 발다닥에 닿는다. 거미와 나비를 관찰할 수도 있고, 길가의 히코리 나무를 가지로 쳐서 열매를 얻을 수도 있다.

언덕 아래로 오솔길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시냇물에서 발을 꼼지락거리며 놀수도 있고, 가재를 잡거나 매끄럽고 납작한 돌멩이를 건질 수도 있다. 너댓 장에 계속되는 제이네 마을 풍경은 평화롭다. 언덕 꼭대기에서 자라는 사과나무의 팥죽색 사과는 단맛이 나고, 빨간 사과는 신맛이 난다. 아~ 내 유년기 추억의 한 장면 같다.

제이는 팥죽색 사과도 한 입 먹고, 빨간색 사과도 한 잎 베어 먹으며 골짜기 끝에 있는 학교를 본다. 바로 제이가 가게 될 학교다.

제이는 암소를 따라 가다가, 폴짝 돌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귀뚜라미를 보았다. 조심조심 오므린 손에 귀뚜라미를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제이는 귀뚜라미에게 먹이도 주고 관찰하며 친구가 되었다. 전등을 끄면 귀뚜라미는 귀뚤귀뚤 노래를 불렀고, 손전등을 키면 노래를 멈춘다. 오후가 되면 창문을 닫고 철망집에서 귀뚜라미를 꺼내 폴짝 뛰면서 같이 놀았다.

그리고 월요일, 제이는 처음으로 학교에 가게 됐다. 엄마는 귀뚜라미를 두고 가라 했지만, 귀뚜라미를 호주머니에 넣어 갔다. 귀뚜라미는 제이의 컴컴한 호주머니 속에서 귀뚤귀뚤 노래를 불렀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선생님은 제이에게 다가와 귀뚜라미를 교실 밖에 내놓으라고 했지만, 제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선생님은 다른 귀뚜라미를 또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제이에게 다른 귀뚜라미는 의미가 없었다.
"제이야, 그 귀뚜라미가 네 친구니?"
제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선생님은 제이의 마음을 알아주셨다.

선생님은 일학년 수업에서는 날마다 '보여 주고 말하기' 수업을 하자며, 뭔가 특별한 걸 갖고 있는 사람은 그걸 학교에 가져와도 좋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아침엔 제이의 친구 귀뚜라미가 주인공이다.^^ 교실의 시계는 7시 30분이다.

선생님은 유리잔에 귀뚜라미를 넣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라고 말씀하셨다. 연필과 비교되는 귀뚜라미.^^ 선생님은 네 귀뚜라미에 대해 이야기 해주라며 어디서 잡았는지 물으셨다.
제이는 암소 목초지에서 어떻게 잡았는지 설명했고, 친구들의 온갖 질문에 하나씩 답했다.
-귀뚜라미하고 지낸지 얼마나 됐어?
-어디서 잠을 자니?
-얼마나 높이 뛰어 오르니?
-재주도 부릴 줄 아니?
-어떻게 하면 노래를 부르니?
-지금 연주하라고 해봐!
-제이, 널 위해 특별히 연주할 때도 있니?
-다음엔 뭘 가져 올거니, 제이야?

제이가 모든 답을 마쳤을 때, 교실의 시계는 아홉 시가 되었다.^^
수업에 방해된다고 귀뚜라미를 내다 놓으라고 윽박지르지 않고, 그걸 이용해 멋진 수업을 하시다니 정말 좋은 선생님이다.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선생님의 교수법은 훌륭하다. 자~ 다음 시간엔 어떤 걸 가져올까? 제이는 산책길에 주머니 속에 담았던 고사리무늬가 찍힌 돌, 잿빛 거위 털, 인디언 화살촉, 히코리 열매, 콩, 매미, 달콤 새콤한 사과도 떠올린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선생님을 만난다면... 성적 올리기에 급급한 우리 교육 현실에서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어린이를 위한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생각케 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배우는 지혜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교육이라는 걸 조용히 깨닫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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