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장난 마음이 자라는 나무 22
브리기테 블로벨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1월
절판


인생에는 자신이 직접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8쪽

동물들은 인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한지 알지 못한다. 까마귀는 다른 까마귀의 눈을 파내지 않는다. 어쩌면 까마귀가 사람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10쪽

"어디 출신인가요?"
독일인이라고 대답해도 계속해서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나고요. 러시아? 아니면 유고슬라비아?"
그럴 때마다 장벽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높다란 장벽이었다. 부딪히면 상처가 나 금세라도 피가 흐를 것 같은 장벽.-33쪽

"세상에. 아울렛 매장이라니. 아이고 창피해라."
단 네 마디 말에 온갖 경멸이 다 담겨 있는 듯했다.
그 아이는 머리를 뒤로 확 젖히고는 의기양양하게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나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무 화가 나서 몸을 떨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맹세코 창피해서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그건 아니었다.-70쪽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서로 잔혹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왜 그때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내게는 아주 사소한 일이 그 아이들에게는 아주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 아이들에게는 립스틱이나 마스카라 따위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73쪽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식탁마다 웃고 떠들며 부지런히 음식을 먹고 있었다. 모두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과 슬픈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였으니까.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왠지 좋아 보였다. 언젠가는 나도 저기에 끼게 될 거라고. 모든 일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80쪽

엄마에게는 미안했지만, 정말이지 나는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일어난 일을 이제 겨우 반쯤만 '소화'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 엄마를 위해서 말하기 싫었다.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엄마가 모르길 바랐다.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86쪽

우정이란 서서히 싹트는 것이다. 서로를 위해 옆에 있어 주면서 믿음과 함께 천천히 자라는 것이다. "우리 이제부터 친구야."라고 한다고 해서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97쪽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언어, 몸짓이나 시선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암호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휴대전화 문자와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더해졌다. 아이들은 각자의 매체를 통해 생각이나 의견을 교환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게임의 규칙을 정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98쪽

내가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 같았다. 물론 내 상상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106쪽

라비는 나에게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자기네 식탁에서 식사를 하라고 말했다. 정말 기뻤다. 적어도 식사 시간에는 냉대를 받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내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또다른 피난처를 찾았다는 사실을 알고 질투심에 불타올랐다. 부러워했거나 분노했거나.... 아이들 눈에 나는 추락한 게 아니었다. 그 애들은 나를 짓밟으려 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으니까. 나는 그런 상황을 즐겼다. 아이들이 이 일로 나에게 복수를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112쪽

"우린 모두 깨진 가정에서 왔어. 나도 마찬가지야.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기숙 학교에 버려지는 거야. 알겠어? 이곳 아이들은 누구의 부모님이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지. 누가 편지나 소포를 얼마나 자주 받는지. 그 소포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다 알아. 여기서는 비밀을 간직할 수 없어. 아주 단시간 내에 학교 전체에 소문이 퍼지니까.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해.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할 만한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야. 이런 생활이 싫다고 해도 도망칠 수 없어. 어디로 갈 수 있겠어? 집으로는 못 가. 여기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해. 그게 문제야. 우리는 마치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에 출연한 것처럼 살아. 쇼는 금방 끝나지만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니까 훨씬 더 끔찍하지."-118쪽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갈 때면 공연히 배와 가슴이 답답해졌다. 거의 매일 그랬다. 배 속에 소화시킬 수 없는 무거운 돌덩이가 들어 있는 듯했다. 아주 심하게 구토를 하고 난 뒤처럼 입에서 쓴맛이 났다. 나는 실제로 구토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면 배 속의 돌덩이와 가슴 답답함이 사라질지도 모르니까.-138쪽

우리 먼지털이.....속이 메슥거렸다. 그 아이는 쓰레기를 치워 주는 사람을 존중하라는 가정 교육을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엄마는 막시밀리안을 바라보고는 잠깐 미소를 지었다. 몸을 꼿꼿이 세우고 서 있는 엄마는 정말 자존심이 강해 보였다.
히죽거리는 소리가 곧 멎었다. 아이들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듯했다. 그 순간 엄마가 몹시 자랑스러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가서 봉투를 건네받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엄마."
그대 엄마 얼굴에 스치던 미소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그제야 엄마가 여기로 오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깨달았다. 혹시나 딸아이가 자기 때문에 창피해 하지는 않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터였다.-149쪽

엄마가 우리 교실에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그저 아이들에게 따돌림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치밀하게 희생양으로 몰렸다. 아이들은 수백 가지 방법으로 나를 끝장내려 했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아주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고 결코 자기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 했다.-151쪽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
왜 나를 그토록 미워하는 거야?
기어코 나를 무너뜨려야 속이 시원하겠어?
그래서 너희가 얻는 게 뭔데?-173쪽

나는 부모님을 창피해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나를 무시하듯이 우리 엄마 아빠를 경멸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182쪽

엄마 아빠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면, 나는 이런 옷은 단 일 초도 입을 수 없다고 반항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로 엄마 아빠의 마음을 또다시 아프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우리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 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빠가 사 온 옷을 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189쪽

라비는 무척 특별한 아이였다. 정말이었다. 비열한 행동을 보면 참지 못했고, 언제나 약자 편에 서 있었다. 그 어떤 아이들보다도 착하고 어른스러웠다.-196쪽

나는 밤에 일어나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건 마치 중독과도 같았다. 이런 행동이 결국엔 나를 망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거기서 도망칠 수 없었다. 이런 심리를 마조히즘이라고 하는 걸까? 어쨋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206쪽

'그래, 더 이상 희생양이 되지 말자.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키지 말고 당당히 내뱉자. 이젠 당하고만 있지 않겠어. 너희가 바라는 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209쪽

혹시 좋은 옷을 입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이런 부러움은 나의 이성을 완전히 갉아 먹고 판단력을 흐려 놓았다. 오로지 비싸고 멋진 옷을 입어야만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218쪽

도둑질은 정말 끔찍했다. 설령 내가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일지라도 물건을 훔쳐서 생계를 꾸려 갈 만큼 추락하지는 않기를 바란다.-223쪽

나는 잠을 잘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숙제를 한다거나 단어를 외울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욕망의 대상만을 좇았다. -226쪽

물건을 훔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어떤 물건으로 우리 반 아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을지 더욱더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는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227쪽

메스꺼운 문자 메시지 한 통쯤은 별 문제가 안 되지만, 지속적으로 굴욕적인 문자를 받는다면 자존감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더 심하게..... 이런 식의 정신적인 폭력은 소량의 독이 담긴 음식을 매일 먹는 것과 같다. 한두 번은 몸이 정화해 낼 수 있다. 그러나 독이 오랫동안 몸속에 쌓이면 나중에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
-242쪽

나는 허기를 느끼지 못했다. 내 위장에 마치 자물쇠가 채워진 것만 같았다. -257쪽

나에게 예쁘다고 말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말이 내 목숨을 부지하게 했다. 어처구니없게 들리겠지만 정말로 그랬다.-261쪽

헛간은 나에게 일종의 중간 세계였다. 현실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삶은 안전했다. 이따금 내가 동화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이런 피난처가 있었기에 나는 그다지도 오랫동안 학교생활을 견딜 수 있었으리라.-261쪽

무조건 자기편을 들어주는 사람, 우는 모습을 마음 놓고 보여 주어도 괜찮은 사람이 없다는 누구든 끝장이다.-267쪽

자녀의 학교생활에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는 부모님은 무척 훌륭하다.-269쪽

내가 정말 끔찍했던 것은. 그 아이들이 나의 마지막 은신처를 찾아내어 파괴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 아이들을 피해 달아날 곳은 이 세상에 한 군데도 없었다. 단 한 군데도......-276쪽

갑자기 복받쳐 오르는 감정의 물결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제 끝내야 했다. 드디어 끝을 낼 때가 왔다. 이 학교에 온 후로 반 아이들이 나에게 가한 모든 고문, 그리고 내가 스스로에게 가한 고문들을 끝내야 했다. 그동안 너무나 고통스러웠다.-289쪽

인생이란 '앞으로'만 살 수 있다고 했다.-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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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10-01-1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괜찮은가 봐요? 밑줄이 좍좍~~~~^^
순오기님~~ 날이 너무 차가워요. 건강 관리 잘 하셔요.^^

순오기 2010-01-14 23:46   좋아요 0 | URL
청소년들이 꼭 봐야 할 책, 우리도 이런 현실에서 비켜나지 않으니까요.
뽀송이님도 바쁘지만 건강하게~ 아셨죠!^^

2010-01-15 0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1-15 03:25   좋아요 0 | URL
참 잘했어요.^^

2010-01-15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