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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ㅣ 사거리의 거북이 6
로젤린느 모렐 지음, 김동찬 옮김, 장은경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8년 11월
평점 :
2009년 여름 책따세 추천도서로 초등 고학년이면 읽을 수 있겠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엄마를 암으로 잃은 열세 살 알리스가, 죽음에서 삶을 발견하는 철학이 묻어나는 얇지만 무거운 책이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통곡과 절규는 없어서 그리 무겁게 읽히지는 않는다.
세련되고 개성있는 완벽한 엄마는 암 진단을 받고도 밝게 생활하지만,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서서히 허물어져 간다. 그런 엄마를 지켜보는 알리스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다.
"알리스, 돌아올 때 오렌지 사 오는 것 잊지 마!" 알리스는 엄마를 떠나 보내며
"살아라, 내 딸아, 살아야 한다." 는 의미로 마법의 주문처럼 깨닫는다.
아이가 보면 안 된다는 이웃 아주머니의 만류도 물리치고, 엄마가 숨을 거둔 마지막 모습을 알리스에게 보여주는 아빠. 영영 떠나보내기 전 작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건 나도 동의한다. 최대한 절제한 채 진행되다가 슬픔이 극대화 된 이 장면에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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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 방의 문턱을 넘었다. 순간 온몸이 뻣뻣해졌다. 엄마가, 엄마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가 더 이상 숨 쉬지 않았다. 엄마의 입술 사이로 숨 한 가닥도 빠져나오지 않았다. 얼음장 같은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현실에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엄마를 붙들고 싶었다. 다시 살아나라고 떼를 쓰고 싶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니까, 그리고 엄마도 나를 사랑하니까. 엄마가 나늘 떠났다는 사실을, 정말로 떠나 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우리에게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를 안아 보았다. 한 자락의 생명도 남아 있지 않은 엄마의 몸을 바라보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훨씬 나중에 그 무서운 장면을 목도하도록 한 아빠의 뜻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죽음의 얼굴을 본 것이다. 죽음은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5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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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지막 말 '행복했어요' 는 알리스가 힘들 때마다 따라다니며 버티는 힘이 되었다. 아빠는 집안 일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속수무책인 채, 열세 살 알리스가 모든 걸 감당한다. 아직 열세 살인 알리스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도 아빠는 모른다. 알리스는 소소한 일상에서 엄마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낀다. 친구들과 노느라 장보기를 깜박했을 때 골을 낸 아빠에게 알리스는 소리친다.
"나를 아빠 마누라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빠 마누라가 할 일을 내가 대신하기를 바라는 거야. 내가 마누라 대신이냐고, 잘 봐, 아니야, 아니라고! 난 아빠 마누라가 아니야, 아빠 마누라는 죽었어. 알기나 해? 난 아빠 마누라가 아니라고."
"내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한 걸까, 네 말이 옳다. 백변 옳아. 그게 그러니까, 너무 힘들구나. 그리고......." '엄마가 보고 싶구나. 너도 엄마가 보고 싶고, 우리는 엄마가 보고 싶어. 둘 모두에게 엄마가 필요해.' 아빠가 잇지 못한 마음 속의 말까지 알리스는 알아 듣는다.
비로소 맞딱뜨리는 산자의 몫이 된 엄마의 죽음이다. 알리스와 아빠는 서로가 외롭고 힘들다는 걸 이해하고 의기투합하지만, 점차 둘이서만 앉는 식탁이 끔찍하고 무섭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어른도 쉽지 않다. 내 나이 마흔이 넘어 친정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암으로 가셨지만, 두 분을 보낼 때보다 보내고 나서 더 많이 힘들었다. 함께 했던 추억이 떠오를 때마다 몸살을 앓듯 했지만 6~7년이 지난 지금은 무덤덤해졌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고 잊어야 살 수 있듯이, 엄마가 떠난 지 6개월이 지나 아빠의 외로움을 채워 줄 사랑이 시작된다. 알리스는 아빠의 사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엄마를 배신하는 건 아닐까 고민한다. 알리스와 아빠는 모순된 감정으로 혼란스럽지만, 엄마도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확신한다. 엄마를 배반하거나 추억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렌지 1킬로를 잊지 않고 사오는 것처럼 산사람의 삶은 계속돼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 들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듯 엄마가 없이 살아가는 삶도 힘겹다. 아빠와 알리스 두 사람에게 필요했던 엄마의 존재, 죽은 엄마가 할 수없는 그 자리를 산자가 대신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금술 좋게 살았던 사람일수록 배우자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하고 재혼하는 걸 주변에서 흔히 본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이 아내와 사별하고 금세 재혼했다고 많은 이들이 배신감 운운했지만, 그렇게 애틋한 아내를 보내고 혼자 살 수 없었던 시인을 나는 이해할 것 같았다.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홀로 남겨졌을 때, 새 사람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 하는 게 절대 배신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