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키드 독자서평 쓰기 대회 7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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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주머니 이야기 ㅣ 옛이야기 그림책 까치호랑이 19
이억배 글.그림 / 보림 / 2008년 8월
평점 :
3년 전 광주지역 학부모독서회 초청으로 오신 서정오선생님은, 우리 옛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야 하는 당위성을 역설하셨다. 정서적으로 메마를 수밖에 없는 경쟁사회에서 부모조차 공부하라고 내몰아대니 아이들이 정서적인 허기를 느낀다고 하셨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우리 '이야기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할머니가 안 계시면 엄마의 무릎학교를 시작하자고 당부하시며, 고정된 이야기에 매이지 말고 아이들 반응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는 몇가지 원칙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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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하라> 친절하게 일일히 설명하지 않아야 상상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무책임하라> 옛이야기의 맛이 살아나게 '정말이예요? 진짜예요?" 라고 물어도 "나도 몰라" 하면서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라. <뻔뻔하라> 혹시 이야기를 잊어버렸을 때 당황하지 말고 지어내거나 다른 이야기를 붙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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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정오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야기 문화'를 되살리자는 취지에 꼭 맞는 이야기로, 옛이야기의 특징인 구전의 생명력을 잘 살려냈다. 책 속의 도령처럼 들은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들려주지 않는다면, 옛이야기의 목숨을 무질러 버리는 짓이다. 내가 들은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꼭 들려줘야 한다는 걸, 옛날이야기를 통해 깨닫게 하는 가치있는 그림책이다.
이 책은 구수하게 들려주는 입말로 된 문장이라, 조금만 감정을 살려 읽어도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맛이 난다. 하지만, 아무리 입말을 잘 살려낸 이야기라도 그림이 따라주지 않으면 독자의 호응을 받기 어렵다. 그러나 이억배 선생님 그림의 옛이야기 책은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억배님의 그림인 '반쪽이, 손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솔이의 추석이야기' 등을 본 독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우리 한국화의 특징을 잘 살린 해학적이며 정감있는 그림에 반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분명 다들 반할거라고 장담한다.^^
이야기를 들으면 행여 잊어버릴세라 글로 써서 주머니에 꽁꽁 싸매고 벽장에 넣어둔 도령은 현대에 태어났으면 작가가 되었겠지만, 글로 쓴 이야기를 벽장에 숨겨두었기 때문에 이야기 귀신들의 해코지를 받게 된다. 옛이야기 속에는 거들먹거리며 백성을 괴롭히는 양반도 나오지만, 인간성 좋고 지혜로운 머슴이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한다. 바로 이야기를 통해 양반을 조롱하고 시대를 풍자한 백성들의 속내를 보여 준다. 도령이 들은 이야기를 글로 써두고 전하지 않았다는 것은, 글만 읽으며 자기 것을 나누지 않는 양반의 행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글도 모르고 가진 것 없는 머슴이 귀신들의 해코지에서 도령을 구하고 갇힌 이야기들을 살려냈다는 것은, 바로 백성들이 나누고 살리는 역할을 담당했음을 보여 준다.
옛이야기에서 강조하거나 중요한 것은 삼세번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삼세번의 강조를 넘어 네 번이나 도령을 해코지 하는 귀신들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이야기를 가둬 둔 도령의 잘못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옹달샘, 산딸기, 청실배, 독뱀'으로 변신해 도령을 죽이려 했던 만큼, 이야기들은 주머니에서 풀려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었던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야 할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전하지 않는 죄가 얼마나 큰지 도령은 몰랐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
자~ 이제 들은 이야기를 꼭 전해야 하는 것을 알았다면 주머니에 갇힌 이야기를 풀어 준 머슴이 나중에 이름난 이야기꾼이 된 것처럼, 우리도 내 아이뿐 아니라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주제와 가치를 제대로 깨달았다면, 바로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부터 시작하자.^^
서정오선생님 말씀처럼 책에서 읽거나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지 않아도 좋다. 아이들 반응을 보며 이야기를 현대화하거나 살을 붙여 들려주면, 뻔뻔하고 무책임하며 불친절할지라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부추겨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댈 것이다. 바로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가 독자에게 들려주는 말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해서 이야기의 생명이 끝없이 이어지게 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