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사계절 1318 문고 8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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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쓰는 방학일기'와 '내 고추는 천연기념물'이란 동화로 만났던 박상률 작가는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이란 5.18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소설로 새롭게 인식되었다. 진도가 고향이라 이 책에서 그려낸 섬소년 훈필이는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했을거라 짐작해본다. 사계절출판사의 1318문고로 초등 6학년 이상 청소년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열세 살 소년 훈필이는 스스로 웃자랐다고 생각한다. 철없는 친구들에 비해 감수성이 풍부하지만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내면의 생각을 키우는 소년이다. 이웃집 은주를 좋아하며 훗날 푸른목장을 갖고 알콩달콩 살리라 다짐하며 첫사랑을 키운다. 은주도 그 마음을 아는지 옥수수도 삶아오고 고구마도 쪄오지만 더 이상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제 자리 걸음만 한다. 들꽃을 엮어 은주네 집에 걸어두지만, 은주는 아는지 모르는지 꽃다발은 시들어만 간다.  

훈필이가 남다르게 생각한 꽃동냥아치 꽃치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일년 내내 솜옷을 입고 씻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지만 항상 망태기에 한아름 꽃을 꽂고 마을로 온다. 이집 저집에서 밥을 얻어 먹고 헛간에서 잠을 자며 가끔은 일도 돕는다.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노래는 잘한다. 특히 그가 풀어내는 소리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았음직한 내용이다. 훈필이는 꽃치를 보면서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란 걸 터득해 버린다. 이 수수께끼의 인물이 뭔가 반전을 일으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상황은 오지 않고 흐지부지 떠나버려 아쉬움을 남긴 인물이다. 그리고 항상 정신교육을 강조하는 담임선생님을 보면서, 우리 때 선생님들이 정말 이랬다는 공감에 절로 웃음이 났다.

중학교 학비를 위해 정성 들여 키우는 염소가 죽고, 자기 마음도 몰라주는 은주도 야속한 소년은 더 큰 꿈을 키우기 위해 가출을 행한다. '사랑 추억 희망 성공'이란 낱말을 책상에 칼로 새기고, 부모님께 성공해서 돌아오리라 편지를 남기고 비장하게 떠난 가출이었지만, 집에서 들고 나온 500원을 목포에서 도둑맞고 집으로 돌아온다. 비록 사흘로 끝난 가출이지만 소년은 세상의 쓴맛도 알고 내면의 성숙을 가져왔다. 목포 나그네 식당 아주머니의 친절은, 세상 아이들이 다 내 자식이려니 생각하는 사람이면 할 수 있는 도리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꾸중하지 않고 말없이 받아 준 엄마와, '그래 성공했냐?' 한마디 툭 던지고 마는 아버지의 찐한 사랑도 소년은 깨달았으리라.

시골소년의 순박함과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녹아 있어,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케 된다. 도시로 떠나고 싶은 섬 머시마와 가시나들의 마음이 휘둘리는 건 다 봄바람 때문이라고... 성장기에 부는 봄바람은 내면의 성숙을 가져온다. 청소년기에 가출을 꿈꾸지 않은 사람도 없겠지만, 가출을 실행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내면의 성장을 가져올 가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돼, 우리 애들에게 가출할 생각 안드냐고 물어보면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절대 가출 안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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