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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기공주 ㅣ 웅진 세계그림책 36
파트리스 파발로 지음, 윤정임 옮김, 프랑수와 말라발 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이런 책이 좋다. 어린이 그림책이라고 무조건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것보다는, 세상의 문제를 바르게 가르쳐 주는 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가진 자가 억압하고 횡포를 부리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인류가 존재하면서 자행되었으니 어린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아야 한다.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국제앰네스티와 함께 만든 그림책으로, 아이들에게 인권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책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폭군과 그 아래서 고통 받는 백성들, 칠기 공주의 저항에서 시작된 낮은 목소리가 커다란 울림으로 변해가는 것을 그려냈다. 수십 년 간 독재 체제에 있는 미얀마 정부에 저항하여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아웅산 수지 여사를 빗댄 작품이라고 한다.
먼 옛날 미얀마의 어느 나라에 '칠기공주'로 불리는 아가씨가 있었다. 우탱이란 칠기쟁이 딸로 칠기를 장식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아버지가 접시나 항아리등을 빚으면 그 위에 그림을 새겨 칠기를 장식하는데, 칠기공주의 손길이 닿으면 그림이 살아났다.
그 나라는 '태양보다 더 빛나는 왕'이라는 거만한 왕이 다스렸는데, 칠기공주의 소문을 들은 왕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칠기를 만들라고 신하를 보냈다. 신하는 왕이 내린 돈을 쓱싹 먹어치우고, 칠기공주에겐 재주껏 멋진 칠기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돈을 먹어치우는 부패한 관리는 어디에나 있다.
아버지 우탱은 잘 자란 옻나무에서 진을 뽑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검은색을 얻었고, 칠기공주는 검은색으로 장식한 칠기를 시렁에 얹어 햇빛과 사람의 눈길도 닿지 않게 했다. 석 달이 지나 대신은 왕에게 가져갈 칠기를 싣고 궁궐로 갔고, 태양보다 더 빛나는 왕은 칠기를 꺼내 보고는 깜짝 놀랐다. 칠기의 문양은 가는 선으로 그려 넣었지만 고통받는 백성들의 모습이 검은 색과 강렬하게 대조되었다.
칠기공주는 오직 백성들의 처절한 삶을 칠기에 그렸고, 분개한 왕은 칠기 공주를 잡으러 왔다.
"네 그림들은 거짓말투성이야!"
"저는 제 눈으로 본 것들만 칠기에 그렸습니다."
칠기공주의 눈을 뽑아버리겠다는 왕에게 아버지 우탱은 대신 벌을 받겠노라고 애원했고, 왕은 우탱을 나라 밖으로 쫒아내고 칠기공주는 빛이 들어갈 틈도 없는 감옥에 가두었다. 음식을 넣어주는 여닫이 문 하나만 남기곤 칠기공주를 밀어넣은 틈새까지 모조리 막아 버렸다.
사람들의 세상에서 쫒겨나 어둠 속에 갖힌 칠기공주는 울부짖으며 손톱으로 벽을 긁었지만, 한 줄기 바람이 들어와 눈물을 말려주었다. 칠기공주는 바람이 들어온 틈으로 세상의 소리를 들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낙들의 노랫소리, 뱃사공의 외침까지...
칠기공주는 그 틈에 대고 칠기에 그려 넣을 수 없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밤낮없이 시간의 흐름도 잊고 배고프거나 목마른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칠기공주의 몸은 가벼워져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누구도 믿지 못한 왕은 백성이 무서워 궁궐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어느 날 첩자가 칠기공주가 그린 것과 똑같은 칠기를 가져왔다. 왕은 깜짝 놀라 가짜 공주를 잡아들이러 왔다. 하지만 이라와디 강가 마을의 수많은 칠기작업장에는 칠기공주가 그렸던 것과 똑같은 그림이 새겨진 칠기가 수없이 많았다. 그토록 많은 칠기가 나도는 것을 어느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이 책은 화려하지만 튀지 않는 색과 점묘법으로 이국적인 풍경을 잘 살려냈다. 뒤에 실린 작가의 글과 국제앰네스티에 대한 소개는 인권 문제를 처음으로 배워가는 아이들에게 좋은 자료가 된다.
촛불은 두려워하면서 신경민 앵커를 밀어낸 MBC와 방송 및 언론을 장악하려는 MB악법은 역시 닮은꼴인가? 우리 어린이들이 이런 책을 보면서 자란다는 걸 그들은 알까? 칠기공주를 빛이 없는 감옥에 가두었지만 그 정신이 퍼져나가 온 마을 사람들이 칠기공주의 그림과 똑같은 칠기를 만들었으니 그 얼마나 두려웠으랴! 어둠이 빛을 가릴 수없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지금 행해지는 온갖 불법이 수년만 지나도 드러난다는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