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의 털 사계절 1318 문고 50
김해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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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계절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출판사마다 문학상이라는 공모제도로 우수한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는 건 좋다고 본다. 그러나 출판사가 추구하는 철학이나 문학상의 취지에 따른 차별성이 있으면 좋겠다. 청소년성장소설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올해 최고의 반응을 일으킨 '완득이'와 뭔가 비슷하다는 게 솔직한 느낌이다. 또한 머리카락을 소재로 하면서 '털'이라는 제목을 붙여, 일반적으로 '털'에서 연상할 선정성을 노린 거 아닌가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중3 아들녀석의 리뷰에 두발단속을 피하기 위해 학교 담장을 뛰어 넘었다기에 내게는 '아들의 재발견'을 준 책이다. 아들녀석은 '두발자유'를 꿈꾼다. 왜 학교가 학생들의 머리를 맘대로 못하게 하는지 따진다. 머리가 길다고 학업에 방해된다는 생각은 단지 규제하고 싶은 어른들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두발단속은 어디로 튈지 모를 십대들의 자의식이라는 불꽃에 반발과 거부라는 기름을 붓는 것이란다. 또한 두발규제라는 이유로 자유롭고 싶은 학생의 욕구를 억압한다는 것 자체가 인권유린이라고 말한다. 그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학부모 입장에선 학교가 약간의 규제를 하는 게 고맙기도 하다.  

어제 아이들 학교의 운영위에서 '학생 용의 복장 규정'을 심의했다. 학생들의 설문으로 결정된 남학생은 뒷머리를 옷깃 끝까지 앞머리는 귀끝 3분의 2지점까지 허용하고, 여학생은 귀끝 25센티부터는 묶는다고 정해져 올라왔다. 하지만 교감 교장선생님께서 좀 더 강화했으면 좋겠다며 재심의를 요청해, 결국 승인을 보류하고 다음 회기에 더 논의하기로 했다. 나야 기본적으로 자유를 찬성하지만, 규제가 있어도 녀석들이 원체 심란하게 하고 다니는 꼴을 보면 더 규제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제 두발단속 문제로 잠시 왈가왈부한 덕분에 리뷰를 쓰게 되었다.  

이 책이 열일곱 살 학생의 두발단속을 소재로 삼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옳지 않은 것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라고 이해했다. 오정고의 오삼삼 두발규제보다도 짧은 머리를 고수하던 송일호가 체육선생의 무자비한 행위(학생의 머리카락에 라이터 불을 붙이려는 것)를 보고 울분을 참지 못했고, 그 일을 계기로 두발자유를 위해 행동하게 된 것. 자녀 문제로 학교에 불려 온 부모라면 무조건 죄인으로 무릎 꿇어야 해결되는 상황을 거부하는 일호 아버지. 평생을 국가 시책이라면 국민을 위한 것으로 알던 할아버지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재개발 반대시위에 동참하는 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패는 침묵을 먹고 자란다'는 말은 우리가 절실히 공감하는 현실이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목소리를 높이고 촛불을 드는 일은, 침묵하지 않는 시민의식이고 용기다. 이 책이 이런 것을 주제로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학교 문제와 있는 자들의 편이 되어 돈없는 사람들이 내몰리는 현실을 짚어가는 게 좋았다. 일호가 두발자유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고, 학생들 머리를 바리깡으로 무자비하게 미는 현장을 목격한 할아버지는 충격을 받는다. 손자학교에서 벌어진 모든 상황을 이해한 할아버지가 교장을 찾아가 대안을 내놓고, 바리깡으로 밀린 학생들 머리를 깎아주며 별 하나씩 새겨놓은 건 정말 대단한 반전이었다.

아버지 없이 17년을 자란 일호가 갑자기 돌아온 아버지를 인정하고 소통하기 쉽지 않은 상황과, 처녀가 임신한 줄도 모르고 떠났다 17년만에 돌아온 일호아버지와 엄마의 미묘한 관계도 잘 그려냈다. 일제단발령으로 시작된 일호고조부의 이발사란 직업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할아버지와 다르게, 태성이발소에서 청춘을 썩힐 수 없었던 일호아버지의 가출은 할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어디를 여행하며 잘 살고 있는지 몰라 애면글면하는 할머니와 다르게, 철저하게 무반응이던 할아버지와 일호아버지의 화해는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부자 삼대는 순간의 화해와 소통으로 오랜 고통을 치유받는 장면은 눈물겨웠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하여 일제강점기 단발령을 거부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이발사가 되었다는 일호 고조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이발의 시작을 알게 해 주었다.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할아버지의 증언과 여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할머니의 말씀이 달라 어떤게 진실일까 가늠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또한 결혼하지 않고 일호를 갖게 한 아빠는 일호엄마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들의 조언을 구하고, 일호는 연애박사 친구에게 물어봐 아빠를 코치하는 풍경도 재밌다. 쉽게 읽히는 성장소설로 곳곳에서 만나는 뭉클함과 재미는 청소년들이 읽으며 공감하기에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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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12-30 15:54   좋아요 0 | URL
진즉 읽었는데 리뷰를 안 쓰고 있다가 어제 운영위에서 두발문제가 거론되는 바람에 쓰게 됐어요.^^
어린이 그림책까지 하면 여러편 쓰긴 했죠.ㅋㅋ

알맹이 2008-12-3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두발 단속이니 복장 단속이 다 터무니없는 규제라고 생각하고 비난했었는데, 학교 현장에 들어온 지 3년 만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 긴 머리와 짧은 교복과 뽀얀 화장부터 눈에 보이니..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 이 책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순오기 2008-12-30 15:5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자유롭고 싶은 영혼이야 백번 이해하지만...그래도 조금은 규제가 있어야겠죠.^^

쟈니 2008-12-30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전혀 치마/바지에 대한 규제가 없다가 갑자기 '치마'만 입어야 한다고 어느 선생님께서 주장하시며 몽둥이 들고 교문앞에서 감시하던게 생각납니다. 바지나 치마나.. 했지만, 갑자기 치마'만' 입으라니까 바지가 입고 싶어지더군요. ^^

순오기 2008-12-30 20:30   좋아요 0 | URL
우리 땐 여학생은 무조건 치마였지, 바지 입는 학교는 없었어요.ㅜㅜ
왜 못하게 하면 그게 그리 하고 싶은지. 청개구리들이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