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 이해인 수녀의 사모곡
이해인 지음 / 샘터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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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0일, 이해인 수녀님의 어머니 김순옥 할머니의 장례 미사 강론에서 김신부님의 말씀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할머니의 삶은
한 장의 단풍잎 같았지요.
바람에 떨어졌어도
책갈피에 넣어 간직하고 싶은
단풍잎처럼 고운 삶을 사셨지요! "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분에게
슬픔 중에도 다 같이
축하를 드립시다!"

내가 꿈꾸는 장례식 풍경화를 이 책에서 만났다. 부모의 죽음을 맞이한 자식의 슬픔이야 말할 나위 없지만, 이렇게 멋지게 보내드릴 수 있다면 참 행복하단 생각을 해봤다. 어머니를 보내고 암투병중인 이해인수녀님의 절절한 사모곡에 눈물 콧물이 흘렀다. 내 어머니와 닮은 점이 많은 수녀님 어머니라 더 감정이입이 되었던 듯하다. 꽃향기가 날 것 같은 시집, 편지마다 마른 꽃잎을 붙여 보냈다는 수녀님 어머니의 향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오래된 책갈피에 꽂아 둔 마른 꽃잎들이 정겹다.



예쁜 헝겊을 모아 색색깔 골무를 만들어 나눠주고, 가방이나 밥상보를 만들었다는 수녀님 어머니처럼, 내어머니도 바느질 하고 남은 천을 조각보이불이나 밥상보와 속바지등을 만들어 주셨다. 엄마가 만들어 준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것들을 간직하고 쓸 때마다 참한 엄마 솜씨를 따라 가려면 멀었단 생각을 종종 한다. 우리 엄마가 바느질 할때만 해도 그리 몸 고생하진 않으셨는데 그 후 실질적인 가장으로 인고의 세월을 보냈기에 엄마 생각만 하면 언제나 눈물이 앞을 가린다.

수녀님 어머니는 남편이 납치되고 4남매를 키우며 51년을 혼자 사셨다니 그 자식들의 애절함은 말로 다 하지 못하리라 짐작된다. 그래도 우리 엄마처럼 생활전선에서 험한 고생은 안 하시고 곱게 세상을 사신 것 같아 다행스럽다. 생전 눈물을 보이지 않던 어머니가 해인 수녀가 집을 떠나 오기 전날 묵주를 들고 통곡했다고 한다.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딸을 드리는 그 모성이야 수녀님 어머니라고 다를 리 있겠나 싶어 눈시울이 또 뜨거워졌다. 강원도 양구에서 나고 자란 수녀님 어머니는 참 심성이 곱고 정갈하게 한 평생을 사셨다. 입에 험한 말 한번 없이 자신을 다스리며 사셨다니 존경심이 절로 생긴다. 이해인 수녀님도 엄마를 생각하며 자세를 고쳤다고 고백한다.

고통이 지극한 상황에서도
'죽겠다' '못 살겠다'
극단적인 막말로 푸념을 못 하시던 엄마

"내 몸이 안정적이질 못하네
속히 안정을 취해야 할 텐데!"
정도로 괴로움을 표현하곤 하셨지요

어쩌다 막말을 하고 싶을 적마다
엄마를 생각하며 자세를 고칩니다
( 엄마 흉내 내기 119쪽)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마음이 울컥울컥 뜨거워진다. 지난 주 심한 감기로 몸도 맘도 약해진 상태로 읽었기에 더 눈물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맘이 아파서 리뷰도 쓸 수 없었던 내 눈물의 원천인 엄마를 생각하며 자꾸만 싯구절만 읽어 댔다. 수녀님의 사모곡이 내 사모곡이란 감정이입에 뜨거움이 올라와 강팍하고 싸늘한 내 마음을 무장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를 부르는 동안은
나이 든 어른도
모두 어린이가 됩니다

밝게 웃다가도
섧게 울고

좋다고 했다가도
싫다고 투정이고

변덕을 부려도
용서가 되니
반갑고 고맙고
기쁘대요

엄마를 부르는 동안은
나쁜 생각도 멀리 가고
죄를 짓지 않아 좋대요

세상에 엄마가 있는 이도
엄마가 없는 이도
엄마를 부르며
마음이 착하고 맑아지는 행복
어린이가 되는 행복!
  (엄마를 부르는 동안 46~47쪽)

내 엄마가 항상 내 편이 되어 주었듯이, 나도 내 아들과 딸에게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과 응원을 하리라 맘 먹는다. 세상에 영원한 내 편 하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든든한가! 그런 엄마가 살아계실 때, 여고시절에 완성하지 못했던 내 마음의 시 한편을 바쳐야지 다시 맘을 추스린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엄마와 헤어질 때면 눈물이 난다
낙엽 타는 노모의 적막한 얼굴과
젖은 목소리를 뒤로 하고 기차를 타면
추수를 끝낸 가을 들판처럼
비어가는 내 마음
순례자인 어머니가
순례자인 딸을 낳은
아프지만 아름다운 세상

늘 함께 살고 싶어도
함께 살 수는 없는
엄마와 딸이

서로를 감싸 주며
꿈에서도 하나 되는
미역빛 그리움이여
(엄마와 딸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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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흙 2008-12-04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그래서이겠지만 리뷰도 절절합니다. 나이 먹어가는 딸에게 엄마가 어떤 느낌인지 순오기님도, 저도 잘 알지요. 그럴 때, 자는 내 딸 머리를 만져보고 앉아 있으면 가슴 가득 눈물이 차올라옵니다. 잘 읽었어요.

순오기 2008-12-05 03:53   좋아요 0 | URL
나이 먹어가는 딸에게 엄마가 어떤 느낌인지 아는 파란흙님은 잠자는 딸의 머리를 만져보는군요.^^

2008-12-04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5 0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12-04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인 수녀님의 그 맑고 단아한이 어머니께로부터 전해졌나봐요. 눈물콧물 장례식이 아닌 눈물 날지언정 축복해주는 잔치같은 장례식, 정말 사모하게 되네요. 하나하나 진심이 단긴 애틋한 리뷰가 마음을 울려요.

순오기 2008-12-05 03:54   좋아요 0 | URL
저런 장례식을 꿈꿔왔어요~~ 내가 죽은 후에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2008-12-04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5 0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5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6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7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