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별곡 푸른도서관 26
박윤규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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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왕부루'로 만난 박윤규 작가의 천년별곡은 '시소설'로 분류된다. 표지의 주목나무가 멋지고 뭔가 굉장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펼쳤다. 아~~ 이런 형식의 소설은 처음이지만 단숨에 읽었다. 119쪽이란 얇은 두께라 읽기도 부담없고 술술 읽힌다. 천 년을 기다린 주목나무의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면서 천 년의 우리 역사가 담겨 마치 한 편의 서사시로도 읽힌다.

학창시절 만났던 가시리의 '위 증즐가 태평성대' 사모곡의 '아소 님하' 청산별곡의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정읍사의 '어긔야 어강됴리 아흐 다롱디리' 쌍화점의 '더러듕셩 다리러디러'  서경별곡의 '아즐가 위 두어령셩 다링디리 다링디리' 동동의 '아으 동동다리'등 후렴구의 음악적 여흥이 살아나 전통 시가문학을 맛볼 수 있다. 또한 우리 시가문학의 정서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신라로 짐작되는 천년왕국이 망하자 후궁의 딸이었던 공주는 어머니와 같이 호위무사의 도움으로 궁궐을 빠져 나와 태백산 골짜기로 간다. '아즐가, 그 때 내 나이는 열여섯 살, 내 가슴은 봄날 목련 봉오리처럼 부풀었고 그는 수줍게 움츠린 내 꽃술을 햇살처럼 톡 건드렸지요'로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결코 길지 못했다. 적에게 잡힌 아바마마를 구하려 가는 그를 잡지 못하고 '천 년을 살다가 죽어도 다시 천 년을 서 있는 장군봉의 주목나무처럼 기다린다'말에 그는 반드시 돌아오겠다 약속한다.

공주는 태백산 장군봉 산마루 가장 높은 곳에 주목나무가 되어 돌아올 낭군을 기다린다.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이정표가 되며 새들이 깃들이기도 한다. 이백년이 되었을 때 북쪽 오랑캐가 쳐들어오고, 일월검법을 익히려는 청년이 찾아와 검법을 완성하고 떠난다. 정채봉의 오세암에서 모티브를 취한 듯한 동자꽃 아이에게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할 열매도 떨구어 준다. 이렇듯 세월이 흐르는 대로 찾아오는 그들에게서 낭군의 모습을 찾으며 기다린다.

주목나무 나이 오백 살, 고려가 망하고 이젠 조선 개국이런가! 일편단심을 맹세했던 선비는 일편단심을 지키지 못한 늙은 목숨을 끊으러 온다. 칠백 살이 되었을 땐, 섬나라 장수가 태백산에 몰려 있는 정기를 끊어야 이 나라를 이길 수 있다고 베러 찾아온다. 주목나무는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정기를 끌어 모아 섬나라 장수를 굴복시킨다.

이렇듯 우리 역사의 굴곡을 온 몸으로 겪어낸 주목나무는 구백 년의 기다림에 지쳐 미움과 원망의 독을 품는다. 주목나무가 힘을 잃자 나라는 동쪽 섬나라가 삼켜버렸고, 그 후엔 두 동강이 난 전쟁으로 산과 들도 태워버린다. 겨레끼리 편을 갈라 싸우며 온통 미움과 원망으로 썩어 문드러진 주목나무와 운명을 같이 한다.

주목나무는 정신을 차리고 '사랑할 때는 천 년도 하루 같지만 미워하면 하루도 천 년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동안은 언제나 빛나는 청춘이지만 미움과 원망을 품으면 금세 늙고 만다' 는 것을 깨닫는다. 전쟁의 막바지에 쫒겨 숨어든 소년병사를 나무 둥치 동굴 속에 품으며 비로소 천 년 전 손을 흔들고 떠났던 사랑을 확인한다. 그날 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사라지고 주목나무와 소년병의 영혼은 몸에서 빠져나와 천 년의 기다림과 천 년의 그리움으로 한 마리 봉황이 되어 날아 오른다.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를 풀어낸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소설이었다면 이런 감동을 맛보긴 어려웠을 것 같다. 압축으로 긴장미를 살리고 빠른 전개로 천 년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기다림과 그리움을 완성한 결말은 애절하면서도 장엄하다. 우리 역사를 주목나무의 사랑으로 멋지게 풀어낸 수작이다. 청소년 이상 모두 읽어볼 만한 작품으로, 특별히 우리 시가문학을 공부하는 전공자들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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