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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요 - 웅진 푸른교실 4 ㅣ 웅진 푸른교실 4
이상권 지음, 윤정주 그림 / 웅진주니어 / 2002년 7월
평점 :
'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요' 라는 제목에서 벌써 아이들의 호기심을 먹고 들어가는 책이다. 저학년 눈높이에 맞는 자폐친구 이해하기를 잘 보여준 책이다. 동화속 아이들이 대부분 착한 아이가 많은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듯하다. 우리반의 누구와 비슷하다며, 착하지 않은 친구의 변심이라 더 공감했다. 하루에 한 챕터씩만 읽어주기로 했는데 자꾸 더 읽어달래서 이틀만에 끝냈다. 집에도 안 가고 읽어 달래는데 어쩌겠는가!^^
이름에서 남녀 구별하지 않도록 지었다는 '한고재' 한고집으로도 불린다. 툭 튀어나온 이마에 어울리는 '대빵이마'란 별명에 걸맞게 축구도 헤딩을 잘하고 친구들과 싸워도 박치기 한방이면 다들 나가 떨어진다. 못된 아이를 보면 대뜸 '야 개새끼야, 나랑 한판 붙자!'라고 외치는 고재의 캐릭터는 여자애들이 엄청 좋아했다. '여자이면서 힘도 세고 축구도 잘한다'는 작가의 말투가 좀 거슬리긴 하지만, 요즘은 여자나 남자로 키우기보단 그냥 한사람의 인간이자 인격체로 대하는 가정도 많은데, 작가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고정관념적인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자폐아인 승준이는 양벌레로 불릴만큼 벌레를 좋아하고 벌레에 관한 거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 하지만 반 친구들은 잘 모르고, 승준이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승준이의 벌레 관찰에 따라갔던 고재만 승준이를 알아 준다. 벌레를 잘 그리는 승준이는 고재에게 벌레를 그려 준다. 승준이에겐 벌레가 최고의 친구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게 없는 줄 알았던 승준이가 벌레에 관해 척척박사고, 더구나 벌레의 특징에 어울리는 반 친구의 별명을 벌레에 붙였다는 것도 놀랍다. '자장면집 나무젓가락, 공포의 삼겹살, 노랑고슴도치'와 선생님의 별명인 '끄덕이'도 있다. 고재의 별명인 '한고집'이란 애벌레도 있다. 곳곳에 삽화가 있어 지루하지 않고 그림 보는 재미도 좋다. 승준이가 그렸다는 벌레 그림엔 아이들이 부러워했다.^^
자폐를 치료하느라 전국을 돌다 지쳐 시골 할머니께 보냈는데, 할머니를 따라 산과 들로 다니며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던 승준이는 할머니가 돌가시자 다시 마음의 문을 닫았다는 승준엄마의 설명에 살짝 눈물이 날 뻔했다. 고재를 좋아하는 힘찬이가 승준이를 질투하며 심술 부리는 설정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비겁하게 패악을 부리던 힘찬이가 자신의 수치를 눈감아 준 고재에게 사과하며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친구가 된다는 건, 그 친구가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하는 것 - 비록 그것이 애벌레일지라도 손으로 잡아보려고 애쓰는 고재에게 동감을 표시했다.
'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요'라는 제목은 승준이를 이해하는 키워드다. 애벌레를 관찰하면서 사실을 알게 된 고재와 승준이를 선생님은 절대 그럴수 없다고 무시해버린다. 선생님 뿐 아니라 어른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이다. 자신이 아는 지식이 틀릴수도 있다는 것, 아이의 말을 무시하지 말고 사실을 확인해보려는 노력은 교사와 어른들이 해야할 일이다. 다행히 벌레를 키우며 관찰한 힘찬이도 애벌레가 애벌레를 잡아 먹는 걸 봤기에 승준이를 인정한다. 진정한 친구가 되는 길을 먼저 찾은 것은 어쩌면 승준이를 괴롭히던 힘찬이였는지도... 고재는 승준이가 너무 가까이 하는 게 싫어서 냉정했던 행동을 부끄러워하며, 조금 다른 친구를 받아들이는 건 아이들도 힘들다는 걸 잘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