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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쓰돈 돈쓰 돈돈돈쓰 돈돈쓰
박흥용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만화가 최규석에 필이 꽂혀 페이퍼를 줄창 써댈때, 마노아님이 박흥용 만화가를 추천했다. 검색해 보고 가장 최근에 나온 작품이라 구입했는데 이제야 책을 읽었다. 우리집에선 남편이 제일 먼저 읽었고 그 다음엔 아이들이 읽었다. 이 만화는 6~70년대 시골이 배경이라, 바로 내가 살았더 시대 이야기다. 마치 내 고향을 옮겨 온 듯한 풍경과 우리 동네서도 있었던 이야기 같다. 우리 세대는 추억을 더듬는 여행이지만 청소년들은 부모님 세대 이야기로 접수하면 좋을 듯하다.
이 만화 첫 장면이 인상적이다. 여러분은 빨간 잠자리가 왜 '고추잠자리'가 되었는지 아시나요?^^

하하하~~ 이건 맛보기일 뿐이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따로 나오는데, 위 그림이나 아래 그림을 보고 외설스러울거란 기대는 접어주시라. 학교에 입학하면 광목을 끊어다 책보자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시작된다. 난 책보를 허리에 묶고 다니다 3학년 때 아버지가 노오란 캔디(?) 같은 소녀가 그려진 가방을 사와서 어깨에 힘주고 다녔다. 애들은 그 가방 한번 들어볼려고 줄서서 비위 맞췄고...책보자기를 어깨에 걸쳐 맬 수 있는 6학년 소년의 야릇한 첫사랑을 떠올렸다면 역시 배신을 때린다. ㅋㅋㅋ

'쓰쓰돈 돈쓰 돈돈돈쓰 돈돈쓰' 는 소리를 모스 부호로 바꾼 제목이라고 한다. 뭔가 있을 듯 말듯하면서 끝내 기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로, 브레히트의 '낯설기 하기' 기법으로 독자가 관객임을 잊지 않게 환기시켜 준다는 해설이 들어있다. 하지만 소년의 추억여행을 통해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았다.
만화책이기에 그림부터 살펴보면 사진을 그대로 쓴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올 만큼, 디지털 붓으로 일일이 그린 것이라 밝힌다. 물론 부분 복사해서 합성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배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몇 번씩 그림 파일을 날려서 머리에서 전 작업이 사라질 때까지 며칠씩 놀다가 다시 했다니 그 수고를 짐작할 만하다. 사실적인 배경에 걸맞는 여주인공을 실사로 하고 싶었으나 배우 최아무개의 초상권 침해가 문제될 수 있어 바꾸었다지만 간간히 실사로 등장하고 있어 느낌이 새롭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1969년(이라고 기억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는 설명) 시골동네에 라디오를 스피커로 틀어주던 시대 이야기라 나보다 더 나이가 들었나 싶다. 나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촌에서 살았지만, 그래도 집집마다 라디오를 갖고 있었으니까.^^ 동네마다 있을 듯한 부자 영감의 젊은 첩이 등장해, 소년 화자의 싯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스피커가 비만 오면 말썽을 부리고, 어디에서 끊어졌는지를 알기 위해 자전거로 발전시켜 통신하는 법을 알려줘 소통을 즐기게 했단다. 전류를 이용한 통신의 원리를 설명하는 과학공부도 시켜주는 아주 유익한 만화다.ㅎㅎㅎ
담배가 피우고 싶어 빈집 같던 소년의 집에 불쑥 찾아든 빽구두 영감의 둘째 부인이라 일컬어지는 여자. 가난에 찌든 삶이 싫어서 적당히 편히 살기 위해 택했던 부자영감과 살지만 내면엔 갈등이 많다. 통신을 통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소리'였음을 깨닫고 인생을 되돌리는 이야기다. 그녀는 사흘을 피눈물로 통곡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녀가 동무가 되어 주었던 소년에게 모스 부호로 남긴 것은 " 내 의지가 내 눈을 가렸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다. 그때 소년은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훗날 추억 여행을 통해 진정한 의미를 발견했을 것이다.
타인의 삶을 통해 자아찾기의 성장통을 얘기하니까 청소년이 같이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만화다. 처음 만난 박흥용 만화가의 다른 작품도 봐야겠단 생각이 슬슬 올라온다. 이러다 만화에 중독될까 걱정스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