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들의 주머니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최정인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검은 그림자를 앞세운 녀석들의 심상치 않은 표지 그림에 어떤 분위기일지 궁금했다. 악동들이라니~ 문제아 이야기일까 기대하고 펼쳤는데, 뭔지 모르게 하이타니 선생의 기존 작품과는 다른 맛이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간결한 상황묘사로 사건을 들이민다.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여덟 명의 악동에 휩쓸린 느낌이다. 녀석들의 마음과 환경도 한두 마디 대화로 짐작케 한다. 한 챕터가 3~4쪽으로 길지 않고, 소 제목을 이해할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하고 넘어간다. 그래서인지 하이타니 선생의 글맛이 낯설었지만, 간결한 문장과 빠른 전개로 끌어 당겼다.

6학년이지만 성장이 늦은 어벙이가 경비원에게 붙잡혀 얻어터지는 것보다, 친구들한테 왕따당하는 게 더 싫을 거라는 걸 이해하는 아이들, 훔쳐낸 왕구슬의 노을 냄새가 행복한 녀석들이지만, 노래를 부를 만큼 좋은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아는 악동들이다. 싹수가 노란 녀석들은 일찌감치 잘라 버리는 게 상책이라는 선생을 ’사나이는 절대 변명하지 않는다’며 적으로 여기고, 공부는 못해도 쓸모 없지 않다는 자의식을 갖고 있다.

악동들의 대장격인 세이조는 모자란 어벙이를 잘 챙긴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수수깡은 공부를 못하지만 다른 것으로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먹을 것이 생기면 반은 가져가는 효녀다. 경마에 빠져 호강시켜 줄 수 없는 아버지 때문에 뚜비루바와 애고애고라는 별명이 붙은 형제. 다보와 오타양까지 여섯 명의 사내녀석에 도메코와 수수깡은 여자 아이로 모두 여덟 명이 악동 멤버다. 이 녀석들이 비록 돈이 없어 도둑질하지만, 나름대로 의리 있고 따뜻한 마음씨의 녀석들이다.

학교에서는 녀석들의 비행을 막기 위해 다른 반으로 분산시키려는데, 가바시마 선생은 끝까지 아이들을 맡겠단다. 전근 오자마자 문제아를 맡았으나 아이들에게 해준 게 없어 미안하다. 선생중엔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던 녀석들은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악동들의 행보가 뻔할거라 예상하다가 외톨이 할머니를 돕는 녀석들에게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더구나 오해와 누명을 쓰면서까지 할머니의 비밀을 지켜준 찐한 의리에 감동의 파도가 출렁였다.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가바시마 선생님 때문에 녀석들은 고민하고, 눈물 흘리는 선생님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지만 끝까지 침묵한다. 그때 어벙이가 침을 줄줄 흘리며 온몸으로 말하는 "아아아아아, 아아앙, 아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앙, 아아아아아, 아 아앙 아 아아, 이 이이. 응. 아아아아아아앙......." 소리를 알아 들으려고 애쓰던 선생님은, 땀과 침으로 번들거리는 어벙이를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은 듯하다. 이 책에서 선생님의 역할이 크지는 않지만 상당히 비중있다.

처음으로 상냥한 선생님을 경험한 녀석들은 가바시마 선생님이 좋아질 것 같다. 선생님 이야기는 눈꼽만큼도 하지 않던 녀석들이 자꾸만 선생님 이야기를 하고,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열린 결말로 독자의 마음도 훈훈해진다. 선생님이 개입해 해결하는 뻔한 이야기가 아닌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마무리 된다. 초등 고학년이면 녀석들의 마음과 우정에 충분히 공감할 것 같다.

문제아나 비행청소년이라 불리는 악동들의 주머니엔 전리품보다, 따뜻한 인간애가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한다. 그들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배려하는 선생님의 사랑에, 악동들도 마음의 빗장이 열린다. 편견의 거울로 들여다보며 문제아로 매도하지 않는 선생님이 그리운 현실이지만, 이런 선생님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분도 분명 있을거라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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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8-07-22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이 1학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공부에 대해 묻지 않고,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어주어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그 말씀이 더 감사했고요 ^^
우리 주변에도 아이들의 마음을 챙기고 보듬어주려고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많을 거에요, 그쵸? 그렇게 믿고 싶어요~

순오기 2008-07-22 16:30   좋아요 0 | URL
예~ 알고 보면 또 그런 선생님도 많이 있지요~~ 공부보다 친구들 관계에 관심갖는 엄마나 선생님은 좀 짱이지요.^^

바람돌이 2008-07-2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아이들이라면 비행청소년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될것같은데요.
무조건 아이들을 믿어주고 보듬어주는 것, 생각보다 정말 어려워요. 현실의 아이들은 정말 너무 너무 다양하고 어떤 유형으로 일반화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걸 늘 느낍니다. 그래서 너무 어려워요.

순오기 2008-07-22 16:32   좋아요 0 | URL
하지만 녀석들은 여러 차례 도둑질을 해요~~ 하지만 의리 있어요.^^
현실에선 무조건 믿어주고 보듬어주기가 어렵다는 걸 저도 인정해요. 사실은 어려워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