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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늘이다 ㅣ 푸른도서관 23
이윤희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7월
평점 :
저자도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지만, 우리 큰딸도 고등학생때 역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화가 나고 부끄럽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기에 딱히 설득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우리 역사를 부끄러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몇 마디 했었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일제에 의한 식민사관으로 우리 역사가 많이 왜곡되었고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똑같은 일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역사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 역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우리가 해야할 몫이지 않겠느냐는 정도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며 부끄럽고 화나는 이유는 바로 위정자로 대변되는, 임금과 중신들 혹은 지도자들의 잘못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진 않았지만 대부분 임금이나 중신들도 자신의 권력과 부를 쌓거나 자리 지키기기에 급급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오늘날의 지도자들도 한치 다름없이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해 부정과 비리도 서슴치 않는 것을 지켜보며 입맛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이런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한다는 게 화가 나고 부끄럽다. 우리 이제는 부끄러운 역사를 그만 써야 하지 않을까?
613쪽이나 되는 동학혁명을 다룬 역사소설 <네가 하늘이다>를 읽으며, 이젠 우리 역사를 그만 부끄러워하자고 생각했다. 그때의 위정자나 양반들과 지금 지도자들의 행태가 부끄러울 뿐이지, 우리 역사를 부끄러워 하지는 말자. 피지배계층으로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한 우리 민중의 삶은 결코 부끄럽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초등고학년만 되어도 역사를 배우며 국난이 닥칠때마다 민초들이 떨쳐 일어났음을 수없이 보아 왔다. 임금은 피난가기 바빠도 백성들은 적과 맞서 싸우며 죽어갔음을 우리는 안다. 오늘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들이 제 밥그릇 챙기느라 싸움질이고, 판검사들이 이권에 개입하고 권력의 시녀가 되는 꼬라지를 수없이 본다. 고소영 강부자 내각으로 불린 이명박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놓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삼척동자도 알 만큼 되었다.
양반인 지주와 관리들에게 착취만 당하던 백성들이 우리도 사람답게 살자고 떨쳐 일어났던 동학농민운동은 바로 전쟁이었고 혁명이었다. 전봉준을 훈장님으로 모셨던 몰락한 양반자제 열한 살 은강이를 필두로 머슴인 솔부엉이, 가난한 끝돌이네와 백정의 자식인 막동이, 전봉준의 휘하에서 역할을 담당했던 농민군 갑수등은 부끄럽지 않은 우리 백성이다. 그들은 비록 힘이 없었지만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 아는 '하늘같은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수없이 속고 속으면서도 양반네들이 하는 말을 믿었고 관리들의 말을 믿고 싶었던 순박한 백성이었다.
그러나, 양반네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외세를 끌여 들여 농민군을 막고자 했고, 결국은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고 말아먹었다. 그들은 그 속에서 자신의 안위를 꾀했을지라도 백성들은 그 나라를지키고자 수없이 목숨을 바쳤다. 승산없는 싸움에 끝도 없이 달려들며, 한 술 뜨신 밥을 원했던 소박한 농민의 꿈을 기꺼이 내놓았다. 우리 부끄러워 말자, 동학군으로 불린 민초들의 정신이 살아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이 있었고 4.19 혁명과 5월 광주로 이어졌으며, 60일이 넘도록 전국을 밝히는 촛불로 타오르고 있음을 우리는 알지 않는가!
"어째서 이 나라의 벼슬아치들은, 양반들은, 이렇게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하는 겁니까? 어째서요? 모두 미쳤나요? 한꺼번에?" 라는 은강이의 물음에 훈장이신 전봉준은 이렇게 답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 세상은 바뀌어야만 해, "
114년 전, 1894년에 있었던 이 질문과 답변은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왜 이렇게 세상은 더디게 발전하는 것일까? 사람답게 살고자 목숨을 바쳤던 그들의 꿈은 아직도 이루기엔 멀고 먼 것일까?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은강이가 자신에게 품었던 생각을 우리도 하면서, 스스로 하늘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르게 산다면 우리는 다른 역사를 써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 역사에 부끄럽고 화가 나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조금은 당당하고 떳떳해지지 않을까? 1999년에 출판되었던 책이지만, 두 권의 책을 하나로 묶어 푸른책들에서 재출간 했다. 613쪽이란 방대한 분량에 미리 겁낼 필요는 없다. 간결한 문체와 대화글이 많아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술술 잘 넘어간다. 마치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항거한 단순 농민운동으로 배웠거나 실패한 농민전쟁으로 알았다면, 전국을 휩쓸었던 동학농민전쟁의 의미를 새겨 '동학혁명'으로 자리매김하는 독서로 추천할 만하다. 또한 동학군의 잔당(?)이라 불렸던 그들이 일제강점기의 독립군으로 활동했음을 조정래의 '아리랑'에서도 증언하고 있다. 이 책도 아리랑 같은 대하소설로 쓴다면 많은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충분히 살아날 것이라 아쉬움이 남지만, 청소년이 동학혁명을 이해하는 역사소설로는 제몫을 해낸다. 우리 스스로 역사를 바로 알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