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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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우리 부모의 셋째딸이며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둔 엄마다. 내 큰딸은 책 속의 위녕이처럼 교대를 갔고, 아들은 둥빈보다 서너 살 많은 중3이다. 막내는 제제보다 훨씬 커서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우리 가정이 책 속의 가정처럼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했던 경험이 두번이나 있었다. 첫번째는 큰딸이 세 살 때, 두번째는 큰딸이 중3, 아들이 초등5학년, 막내가 초등3학년 때였다. 이때는 정말 이혼서류도 다 준비했고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건 우리는 이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살면서 이혼을 생각하지 않은 부부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정말 인내심이 없다면 홧김에라도 이혼할 수 있는 게 부부다. 내 인생만 생각한다면 이혼해서 생길 나쁜 것, 좋은 것 다 책임지고 살 수 있지만, "신이 내 행실을 적은 치부책을 펼치면서, 너는 아무래도 지옥으로 가야 하겠지? 물으면, 아니에요, 이건 이래서 그랬고, 저건 걔가 그래서 그랬던 거에요.......하면서 박박 우기려고 했는데, 신이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그럼 위녕은? 하면 엄마는 넵! 하고 바로 지옥으로 내려갈 거 같다" 고, 책 속의 위녕엄마처럼 나도 말할 것이다. 자녀에게 부모의 이혼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죄악이거나 상처일 수 있다. 나도 아이를 셋이나 두고 이혼한다는 게 미친 짓 같아서 멈추었지만, 아이들에게 '즐거운 나의집'이 되지 못한 상처는 끝까지 남을 것이다. 이제는 그 아픔의 시절이 지나 그런대로 살만하다.  어른들 말씀처럼 인내하면 또 좋은 시절이 오는 것이겠거니 믿는다.

  이 책을 읽은 2월 24일은 딸의 대학 입학을 마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느라 잠시 동생집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신경 쓸 일이 많아서였는지 계속되는 두통에 눈이 빠질 것 같아 쇼핑도 할 수 없어 두통약을 먹고 쉬는 중에 읽었다. 그 와중에 주체못할 눈물이 쏟아진 건 위녕에게 외할머니가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네 에미 원망하면 안 된다. 네 에미처럼 노력했던 사람은 없어. 할머니도 그만큼 노력하면서 살지는 않았다...... 너를 떠나보내고 난 후, 네 에미가 몹쓸 일을 겪을 때마다 외할아버지하고 나하고 밤새 번갈아 네 에미 방 앞을 지켰다.  
   

  위녕은, 밤새 방문 앞에 서있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숨죽임 때문에 엄마가 살았다고 느낀다. 부모의 사랑은 바로 이런 것, 어떤 고통과 좌절속에서도 자식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지켜내는 것처럼 신성한 일이 있을까? 우리가 이혼의 기로에 있을 때, 며느리의 방자함이 못마땅했을 시어머님도 내게 와선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고 가만히 손을 잡아 주셨고, 사위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넘쳤을 내 친정엄마도 전화로 "열심히 살라!"는 말씀만으로 침묵하셨기에 우리 부부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거라 생각된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세상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 부모의 사랑으로 우리는 또 제 자식을 그렇게 사랑하면서 살아나간다.

  가족은 세상이 모두 비난하고 손가락질할 때도 무조건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힘인가! "아빠는 내 딸이 세번이나 이혼한 여자가 되는 건 싫다...하지만, 네가 불행한 건 더 싫어. 건강만 챙겨라. 앞만 보고 가라. 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건 우리가 다 안다. 그러니 주눅들지 말고 당당해라.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 지금은 오직 너와 아이들만 생각해라." 라고 말했던 외할아버지의 응원은 위녕엄마가 세 아이들과 살아가는데 힘을 실어주셨다. 위녕이 새엄마에게 맺힌 맘을 전할때 잘못인 줄 알면서도, 위녕엄마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전적으로 동지가 되어준다. 이렇게 서로 믿고 의지하며, 힘이 되고 내편이 되어주는 유일한 사람들이 가족이다.

  이 책은 작가의 체험을 소설화한 성이 다른 세 아이와 살아가는 특별한 가족이야기다. 세번의 사랑과 상처 그로 인해 생겨나는 갈등과 사랑, 감정폭발이 열아홉 살 위녕의 시선으로 잡아 낸 톡톡 튀는 문장으로 다가온다. 우리네 삶과 별다를 것 없는 위녕가족의 일상이 섬세하게 그려지며 감동으로 눈시울을 젖게 한다. 그러면서도 유쾌 상큼한 대사와, 치열한 설전에서 오가는 대화에 우리도 저런 말을 했었지 공감할 수 있다. 자신의 삶과 자녀 문제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이혼을 했든 안했든 자기만의 무게를 감당하는 그 누구의 삶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상처를 감싸고 보듬어 안으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위녕엄마와, 오늘도 한부모 가정에서 버거운 삶을 살아갈 이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을 읽고 큰딸은 책과 비슷한 상황인 친구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 했다. 이 책은 이렇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읽으면, 불끈 힘이 솟아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힘이 들어도 행복을 찾아가는 인생역정을 잘 이겨내자고...

  위녕엄마는 아이들과 살아가면서 "밥을 먹는 일은 신성하다" 고 강조한다. 밥을 먹는 일이나 밥을 버는 일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가장 신성한 일이다. 오늘도 난 봄나물에 쓱쓱 비벼 신성한 일을 수행하면서, 기숙사에 있는 큰딸도 신성한 이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거듭 당부한다. 그리고, 넌 찬란한 청춘이니까 미모도 꼭 챙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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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8-03-10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공지영의 소설은 읽지 못했지만
리뷰에 섞여있는 순오기님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네요.

순오기 2008-03-10 08:27   좋아요 0 | URL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일거라는 생각에...부끄러운 내 얘기도 풀어봅니다. 화창한 봄날, 오늘도 열심히 삽시다!^^

마노아 2008-03-10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다가 코끝이 찡해졌어요. 작가의 마음도, 리뷰를 쓴 이의 마음도 진솔되게 전해져서 그런가봐요. 저도 이 책 읽을래요. 나중에요~

순오기 2008-03-10 21:27   좋아요 0 | URL
눈물이 많은 난, 이 책 읽으며 여러번 울었어요. 그러면서도 곧 유쾌하게 깔깔거릴 수 있어요. 절망의 순간에도 '미모는 꼭 챙겨야 해'라고 말하는 가족이 있어 삶을 지탱할 수 있었다 싶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