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누나 일순이> 서평단 알림
큰누나 일순이 파랑새 사과문고 48
이은강 지음, 이혜원 그림 / 파랑새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큰딸은 살림 밑천'이란 말이 통용되던 6~70년대의 가슴 아픈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형제들이 많은 집안에선 맏이의 짐이 무거울 것이다. 우리 집도 5남매 중에 큰언니가 일정 부분 희생을 했고, 그런 희생을 바탕으로 동생들이 학업을 이을 수 있었다. 부모님도 그런 큰딸에게 제일 고맙고 미안하게 여기신다. 어쩌면 가장 아픈 손가락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런 성장환경이었기 때문에 남의 얘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다가와 많이 울컥했다. 우리 큰언니도 일순이처럼 한없이 착하고 맑은 천사표 언니다. 그래도 우리 언니는 지금 잘 살기에 참 다행이고 고맙다.

책 속 화자인 '나' 미향이는 부잣집 딸로 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자라 어린시질 추억 속의 일순이를,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돈을 떼어 먹고 달아난 일순이를 찾는 구인광고를 보고 잊고 살던 일순이를 추억하는 것이다. 이런 관찰자 입장의 진술은 독자들이 내 얘기로 빠져들기엔 좀 무리한 전개가 아닐까 싶다. 특히 동화라는 장르에선 어린 독자들이 멀고 먼 남의 이야기로 생각되기 싶상이다. 책 속의 배경과는 너무나 다르게 잘 살고 영악한 세대를 사는 어린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몽실언니'를 읽은 어린 독자들의 반응처럼, '이렇게 바보처럼 사는 언니가 어딨어요?' 할까 봐 안타깝다. 대입을 앞두고 있는 내 큰딸도 밥 하나 할 줄 모르는 철부지요 공주일 뿐이다. '큰딸이 살림 밑천'이란 말과는 너무나 다르게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이, 불과 30년 전의 이야기인데도 공감할 수 없는 격세지감을 확인하게 될 것 같다.

일순이는 동생 이순이, 삼식이, 사순이, 오식이의 큰언니이고 큰누나다. 폐가 약한 부모님을 졸지에 여의고 그야말로 소녀가장이 되어 악착같이 동생을 돌본 전형적인 맏이의 모습이다. 올망졸망 매달린 동생들을 돌보는 큰누나 일순이는 많은 부분에서 내 눈물샘을 건드렸다. 늘 등에는 동생을 매달아야 했고, 어린 나이에도 암팡지게 일을 해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중학교를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독학으로 공부하겠다며 영어사전에 욕심을 내고 공부에 전념하는 당찬 아이였다. 정말 제대로 공부했다면 우리 시대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일꾼이 되었을 일순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뿔뿔이 흩어진 동생들을 찾아 제대로 키우고 가르친 자랑스런 큰누나였다. 자신의 삶을 오직 동생들을 위해서만 살다간 일순이가 안타깝다.

작중 화자인 나 '미향이'가 일순이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찾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알아낸  결말이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오직 희생만 하다 간 일순이지만, 동생들이 그런 누나를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이 결말을 보면서 상황을 알기 전엔 섯불리 누군가를 욕하거나 매도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큰누나 일순이는 소리없이 피었다 진 한떨기 꽃같은 그 시대의 큰누나였다. 이런 동화라도 있어야 요즘 아이들이 엄마세대 혹은 할머니 세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잊지 말자,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가 성장했고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을!!

2007년의 마지막인 12월 31일 밤이 깊어간다. 큰누나 일순이 같은 내 언니에게도 늘 감사와 사랑의 마음 변치 말고 살아야겠다 조용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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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8-01-01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마들의 얘기인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요즘 아이들은 '엄마가 어렸을 때는', '할머니가 젊었을 때는' ... 이런 얘기를 싫어한다지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풍요가 우리 엄마들의, 할머니들의 노력 위에 서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텐데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순오기 2008-01-01 09: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엄마 어렸을 때...이런 이야기 요새 애들은 구질구질(?)하다고 싫어할거예요. 이 풍요가 그분들의 노고로 이루어졌는데도 말이죠.
새해에도 그런 감사함을 잊지 말고 복 받으며 살아야죠, 용이랑슬이랑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