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오늘의 태그 '올해의 책'을 보면서도 필이 오는 게 없었다. 마침 어머니독서회 모이는 날이라 토론이 끝나고 회원들한테 우리의 토론도서 중에서 '올해의 책'을 뽑으라 했더니 이렇게 나왔다.
저녁, 식탁에서 가족에게 물으니, 남편은 남한산성을, 큰딸은 해리포터, 둘째는 식객, 막내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꼽았고, 나는 구덩이를 뽑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시 말해도 되냐고 묻더니 셋 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치켜세웠다. 자신들의 10대와 온전히 동행한 친구라는 게 선정 이유였다. 큰딸이 초등 4학년이던 1999년에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이 나왔고, 6학년인 2001년에 해리포터를 사 달라고 해서 2001년의 초판 46쇄부터 사기 시작했다. 계속 나오는 대로 시리즈를 다 구입했고, 영화가 나오면 목을 빼고 기다리다 달려갔다. 고등학생이 된 큰딸은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원서를 보겠다고 해서 5권부터 7권까지 사들였다. 날마다 일정량을 읽고 동생들에게 중계했고, 학교가는 스쿨버스에서 친구들에게 들려줬단다. 또 모의고사 영어지문에 해리포터가 나오기도 해서 아이는 엄청 좋아했다. 이렇게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한 해리포터와 고등학교 3학년 수능까지 동행했다.
지난 주, 해리포터 완결판 4권까지 다 읽은 아이는 "엄마, 이제 무슨 재미로 살지? 해리포터를 대체하거나 능가할 책이 앞으로 없을 것 같아" 한숨 쉬듯 말했다. 자기의 10대를 온전히 차지한 해리포터, 10대의 마지막인 19살 고3까지 동행한 세월이 눈물겹도록 고맙다며, '아~ 이제 무슨 재미로 살지?' 여전히 넋두리하듯 날마다 중얼댄다.
큰딸이 초등 6학년부터 고등 3학년까지 동행했다면, 네 살 아래인 아들녀석은 초등2학년부터 시작했고, 여섯 살 아래인 막내는 언니 오빠 보는 것 부러워만 하다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엔 둘째와 막내는 무슨 말인지 몰라 묻는 것이 많았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질문도 줄었고, 저희들 셋이 뭉쳐 해리포터 책과 영화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간식을 먹으러 식탁에 모일 때마다 해리포터 하나씩 뽑아 들었고, 특히 시험기간이면 으레히 해리포터를 빼들었다. 아마도 시험이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가 마법의 세계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기말시험중인 중2 아들녀석은 오늘도 여전히 해리포터와 함께 한다. 이렇게 우리 삼남매는 해리포터와 동고동락 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훌쩍 큰 것과 비례하여 우리집의 해리포터는 반질반질 닳았고, 친구들에게 빌려주다가 없어져 몇 권은 다시 사기도 했다. 한때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인기를 끌었지만 20권으로 끝났고, 우리 집의 책꽂이를 채우고 있는 23권의 해리포터 시리즈와 원서 3권을 바라보는 내 눈에도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이리하여 우리 집의 '올해의 책'은 삼남매의 만장일치로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차지했음을 공포합니다. 꽝꽝꽝~~~~